‘진격의 회계’에 가려진 빈부격차의 그림자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이 진부하기 그지없는 클리셰가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회계제도 개혁에도 적용되는 모양새다. 오는 2020년 일정 기간 국가에서 지정한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도록 하는 ‘지정감사제’와 상장사의 감사 자격을 제한하는 ‘감사인 등록제’ 시행을 앞두고 상대적으로 규모가 열세한 기업과 회계법인 양쪽에서 아우성이 들려오고 있다. [편집자 주]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올해 초 증권시장은 회계감사 문제로 일대 혼란이 일었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로 회계사들이 실형을 받는 초유의 사태를 목격한 회계법인들이 기업 심사를 깐깐하게 보면서 감사의견 ‘비적정’ 사례가 속출한 것이다. 파티게임즈·디에스케이 등 유망 코스닥 종목들이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하는 ‘거절’을 받았고, 삼광글라스·행남자기 등 일반 대중에게 익숙한 생활밀착형 업체들이 ‘한정’ 사유를 받으면서 거래정지 상태를 맞았다.

실제 외부 감사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상장기업들은 최근 증가 추세다. 금융감독원의 ‘2017 회계연도 상장법인 감사보고서 분석 및 시사점’에 따르면 지난해 2,155개 국내 상장법인 가운데 32개사(1.5%)가 감사의견 ‘적정’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기(21사) 대비 52.4% 늘어난 수치다. 7월 말 기준 ‘의견거절’을 받은 25개사 중 6개사가 이미 상장폐지 됐다. 나머지 19개사는 상장폐지심사가 진행 중에 있어 향후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을 남기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위치한 '한국공인회계사회' 건물에 '회계가 바로 서야 경제가 바로 섭니다'라는 슬로건이 기재돼 있다. <시사위크>

◇ 깐깐해진 회계법인, 감사 문턱 못 넘는 기업들

이처럼 회계법인 감사가 깐깐해진 데에는 다음과 같은 원인이 자리 잡고 있다.

우선 앞서 언급한 대로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회계사들에게 일종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는 분석이다. 지난 2015년 5조원대 분식회계가 발생한 대우조선해양의 감사를 맡았던 딜로이트안진 소속 전‧현직 회계사들에게 징역형이 선고되자 일선 회계사들이 받은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회계법인들이 너나할 것 없이 보수적인 감사 분위기로 돌아섰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다음으로 ‘지정감사제’ 도입도 이 같은 분위기를 부채질했다는 평가다. 정부는 회계투명성 강화를 목적으로 회계법인 지정을 상장기업 자율에 맡기던 기존 방식(자유수임제)에서 벗어나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한 감사인으로부터 외부감사를 받는 지정감사제를 오는 2020년부터 도입키로 했다. 2년 뒤 상장사들은 6년간 자유수임제 시행한 뒤, 향후 3년간은 지정감사제를 적용을 받게 된다. 이른바 ‘6+3’ 지정감사제라 불리는 혼합감사제의 핵심이다.

지정감사제 도입은 곧 회계법인이 감사 수주에 목을 맬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 이상 기업 눈치를 보지 않고 진정한 독립된 감사가 실현될 것이란 기대가 일고 있는 것이다. 또 기존 제도 하에서 기업과 돈독한 관계에 있던 회계법인이 금융위원회에서 지정한 차기 감사인의 감사에서 잘못이 드러나는 불상사를 우려해 감사를 까다롭게 할 수 밖에 없다는 이유도 자리 잡고 있다.

◇ ‘비적정’ 65% 이상이 코스닥… 중기‧벤처만 된서리

하지만 일각에서는 회계투명성 강화라는 선의의 목적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상대적으로 회계 인력 등 회사의 여력이 충분하지 못한 중소, 벤처기업들이 무방비 상태로 새로운 회계제도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비적정 판정을 받은 법인의 65% 이상이 코스닥 기업이었다는 사실은 이 같은 우려를 뒷받침 한다.

기업의 존폐가 걸린 ‘상폐(상장폐지)’로 직결될 수 있는 문제인 만큼 회계 전문성을 강화해야 하지만 여의치 않다. 자금 여력이 충분한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비해 비용절감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하루아침에 재정 관련 인원을 확충하기란 쉽지 않다는 게 공통된 반응이다. 또 자율이 아닌 지정된 회계법인의 비용이 크게 뛸 가능성도 문제로 남고 있다. 이에 예외범위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법개정 취지 훼손을 근거로 반대 의견을 내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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