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로 한국에도 ‘#미투’(MeToo)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여성들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미투를 함께하며 여성운동의 반경을 넓혀갔다. 미투는 ‘나도 고발한다’는 주체적 의미지, ‘나도 당했다’는 피동적 의미의 운동이 아니다. 미투 이후의 사회는 달라져야만 한다. 우리 사회는 미투를 어떻게 바라보고, 여성들의 ‘비명’에 어떤 식으로 답해야 할까. <편집자 주>

과거 여성운동에 나섰던 이른바 ‘시니어’ 여성운동가와 여성정치인들은 여권신장 필요성에 대해 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사진은 지난 18일 서울역사박물관 일대에서 열린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성폭력 성차별 끝장집회 현장. <뉴시스>

[시사위크=김민우·최영훈 기자]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추문 사건 등을 계기로 여성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가장 상징적인 여성운동 중 하나로 불법촬영 및 유포행위를 규탄하는 ‘혜화역 시위’가 꼽힌다. 정치권에서도 혜화역 시위를 지지하는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일부 과격화 양상을 보이는 현재의 여성운동에 대해 경계심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차별받아온 여성의 권리회복이라는 본연의 목적이 아니라 남녀 갈등을 조장해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과거 여성운동에 나섰던 이른바 ‘시니어’ 여성운동가와 여성정치인들은  젊은 여성들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여성운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 여성운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개인적으로 남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앞으로 한국 여성운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묻는 질문에 정현주 역사·여성·미래 상임대표는 이 같이 답했다. 일부 여성운동 단체에서 남성을 배척하거나 혐오하는 분위기가 나타난 데 대한 우려다.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에 살던 여성들이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한국 최초 여권선언문으로 평가받는 ‘여권통문’이 발표된 지 120년이 지난 2018년 현재, ‘시니어’ 여성운동가들은 한 목소리로 ‘남성 배제’ 현상에 대해 우려했다.

정현주 역사·여성·미래 상임대표도 3일 <시사위크>와의 만남에서 현재 한국여성운동 일각에서 나타나는 극단적인 성향에 대해 “다양화 되는 과정 중 하나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하나의 행동’이라고 보고 비난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고치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현주 상임대표는 한국 여성운동의 지향점에 대해 남성들의 참여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두 가지 생물학적 차이가 있는 인간이 (사회에서) 같이 살도록 돼 있는 것이지, 한쪽을 완전히 배제하는 (일부 여성운동에 대해)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정 상임대표는 120년전 발표된 여권통문에 대해 남성 개화파 지식인들도 반가워하며 지원해줬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그는 “120년전 서울 북촌에 살던 여성들이 여성교육권을 주장할 당시 남성들도 다수 지지했다”면서 당시 개화파 독립협회 지식인인 윤치호 선생도 여성교육운동단체 찬양회에 참여해 자문역할도 했다는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 “한국 페미니즘 운동, 휴머니즘 정신 필요”

“3년간 (메갈리아에서 시작한) 페미니즘 운동이 우리 사회에 남긴 남녀 갈등, 남녀 분리주의의 심화는 심각한 정도다. 진정한 사회적 약자 계층이 외면받는 결과로 이어지게 됐다.”

오늘날 대한민국 여성운동에 대해 여성운동가이자 사회연대노동포럼 공동대표인 오세라비(60·본명 이영희) 작가는 최근 문제가 되는 극단적 페미니즘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오 작가는 ‘여성만의 운동’이 되어버린 페미니즘 운동으로 인해 흙수저 여성이나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 계층이 오히려 외면받게 됐다고도 지적했다.

오 작가는 3일 <시사위크>와의 만남에서 “사회운동은 여성과 남성이 상호 협력하는 동반자적 관계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며 “페미니스트들은 오직 여성만을 위한 운동을 한다. 여성-남성 연대 정신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다.

아울러 “한국 페미니즘, 여성운동은 혁신해야 한다”라며 “빈곤 여성, 빈곤 남성 모두 함께 아우르는 협력과 연대 정신이 절실하다. 그것이 바로 휴머니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 정치권도 ‘여성운동’ 열풍 동참

정치권에서도 ‘여성운동’ 동참 분위기가 감지된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여성 국회의원들은 최근 이슈로 떠오른 ‘미투 운동’을 두고 성차별적 제도 개선과 이를 실현할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정춘숙 의원은 지난달 25일 서울 역사박물관 앞에서 시민단체 '헌법 앞 성평등'이 주최한 집회에서 서면을 통해 “여성들이 오랜 기간 심각한 폭력에 시달려 왔지만 가해자에 대한 신속한 수사와 엄중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아 '편파 수사'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라며 “젠더폭력에 대한 강력한 처벌로 정의와 인권이 살아있음을 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여성들이 거리에 나온 이유는 여성과 남성이 대립하는 성별 갈등을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가부장적 사회 구조와 성차별적 제도에 반대하고 평등·정의의 새 가치를 요구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 역시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통문 발표 120년 기념행사 기념 축사에서 “최근 여성운동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결국 ‘남성들에게 당연한 것을 여성은 주장하고 외쳐야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그렇게 하기 위해 여성들이 여야 정치권과 이념을 떠나 (여성이 쟁취해야 하는 이슈에 대해)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정책을) 결정하거나 실현할 수 있는 지위에 여성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길도 열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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