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 전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지난 2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로 성추행 관련 기자회견을 위해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극단 단원들을 상습적으로 추행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이윤택(66) 전 연희단거래패 예술감독이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이 감독은 올해 1월 서지현 검사의 고발로 촉발된 ‘미투 운동’을 통해 재판에 넘겨진 첫 연극계 인사이자 첫 실형 선고자가 됐다. 안희정 전 지사의 경우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그 이외 미투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유명인사들은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감독의 1심 선고는 미투 사건 최대 관심사였던 안 전 지사의 선고 결과와 비교되며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두 사건의 법적 쟁점은 다르지만 이 감독의 1심 선고가 안 전 지사의 항소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무죄 주장했던 이윤택, 6년 실형 선고받은 이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황병헌 부장판사)는 19일 오후 2시 이 전 감독의 유사강간치상 및 상습 추행 혐의 1심 재판에서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또한 80시간의 성폭력프로그램 이수와 10년간 아동청소년기관 취업제한 등도 함께 명했다.

연희단거리패 창단자이자 실질적인 운영자였던 이 전 감독은 1999년부터 2016년 12월까지 여성 배우 17명을 상습 추행한 혐의를 받았다. 또한 여성 배우의 신체 부위에 손을 대고 연기 연습을 시켜 우울증 등 상해를 가한 혐의도 받고 있다. 다만 공소시효 만료 등의 문제로 실제 공소장에는 2010년부터 7월부터 2016년 12월까지의 행위가 적용, 피해자는 8명으로 줄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던 피해자들의 처지를 악용해 범행을 저질렀다”면서 “피해자들은 깊은 고통과 좌절감을 안게 됐지만, 연기 완성도를 위한 것이라거나 피해자가 거부하지 않아 몰랐다는 등의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다”고 질타했다.

이날 재판부는 이 전 감독이 각각의 피해자들에게 저질렀던 행위들을 일일이 언급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이 전 감독은 안마를 해 달라고 하면서 자신의 성기를 주무르게 하거나 발성 연습을 이유로 속옷 안으로 가슴을 만지는 등의 행위를 반복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행위가 연기 지도라는 이 전 감독의 주장에 대해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명백한 추행”이라며 “피해자들이 참고 계속 안마를 했다고 해서 무죄로 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지난 8월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안희정 성폭력 사건 1심 무죄 선고에 대한 여성단체 기자회견'에서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이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안희정-이윤택, 쟁점 다르지만 ‘권력관계’ 같아”

일각에선 범행 일체를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이 전 감독의 태도가 양형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전 감독의 유죄 판결은 예견된 결과였다는 분석이다. 이 전 감독은 경찰 조사 당시만 해도 일부 혐의를 인정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실제 재판에서는 내내 무죄 취지의 주장을 이어갔다. 이는 권력관계에 의한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가 성인일 경우 범죄 입증이 쉽지 않은 점을 공략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안 전 지사의 1심 재판부 역시 김지은 씨의 주장 대부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안 전 지사와 이 전 감독의 사건은 혐의도 다르고, 주요 쟁점도 다르다. 안 전 지사의 경우 김지은 씨의 일관된 진술에도 불구하고, 위력이 행사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다. 다만 위력의 여부가 쟁점이 아닌 추행 1회와 기습추행 5회에 대해서도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해 더욱 논란이 됐다.

이에 이 전 감독의 1심 선고가 향후 안 전 지사의 항소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체적으로 증거가 없는 추행(기습추행) 범죄는 피해자의 진술이 유무죄를 가르는 판단 기준이 된다. 통상 재판부는 진술의 일관성이 있고, 범행 전후 당사자의 태도, 둘 사이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피해자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유죄를 인정한다.

이번 이 전 감독의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이 같은 법리를 적용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자신의 신변까지 공개하면서 폭로를 하고 피고인 역시 기자회견을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면서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보면 피해자들이 자신들이 당한 피해를 늦게나마 밝힌 것으로 보이고, 고소의 진정성을 의심할 만한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CCTV와 같은 명백한 증거는 없지만 피해자들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또 이 전 감독이 피해자들에게 위력을 행사할 만한 위치에 있었다는 점도 고려했다. 단순히 거부하지 않았다거나 가만히 있었다는 점이 무죄의 이유가 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이날 선고가 끝난 후 서울중앙지법 동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던 여성단체들은 성범죄 피해에 따른 우울증을 상해로 본 점도 이번 재판의 의미라고 밝혔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이윤택 감독과 안희정 지사의 사건은 범죄 혐의는 다르지만 피고인과 피해자가 권력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은 같다”면서 “재판부가 이 전 감독의 무죄 주장을 배척한 것은 피해자들이 어쩔 수 없이 이 전 감독을 따를 수밖에 없던 위력관계를 고려한 것이다. 안 전 지사의 항소심에서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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