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상대의 행동을 바탕으로 최적 선택을 도출하는 과정을 연구하는 '게임이론'은 그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언스플래쉬>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노벨경제학상은 그 해의 뛰어난 업적보다는 시대상에 맞는 연구를 진행했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경향이 있다. 달러의 금 태환이 중지되고 오일쇼크가 터졌던 1974년에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것,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의 수상이 줄어든 것 등이 대표적인 예다. 때문에 노벨상 위원회의 선택은 수상자들의 업적에 대한 존중뿐 아니라 그 해에 중요시된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미국의 데이터조사‧분석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는 20일(현지시각) 201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예상을 발표했다.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는 지난 2002년부터 매년 노벨상 수상자 예상을 발표하고 있으며, 경제학상의 경우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 연속 수상자 예측에 성공한 경력이 있다. 이번에 발표된 ‘유력 후보자’들은 외부 변수에 대한 경제주체의 반응을 연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 정책의 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방법

스페인은행 통화금융연구센터(CEMFI)의 마누엘 알레라노 교수와 스테판 본드 옥스퍼드대학 교수는 패널데이터(여러 변수들을 복수의 시간에 걸쳐 추적해 얻는 데이터) 분석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인물들이다. 특히 두 교수가 지난 1991년 발표한 ‘알레라노·본드 추정법칙’은 기존에 사용되던 추정기법보다 더 많은 정보를 분석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학계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알레라노·본드 추정법칙의 또 다른 장점은 연구자들이 관측하지 못하는 ‘숨은 혼란요인’들을 효과적으로 컨트롤하면서 상관관계 분석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수한 변수들을 상대해야 하는 실증연구들, 특히 정책변화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반응을 추정하는데 알레라노·본드 추정법칙이 자주 사용되는 이유다. 실제로 알레라노·본드 추정법칙은 경제학계뿐 아니라 정치학계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2018년 경제계에 큰 충격을 가져온 정책변화라고 한다면 두말 할 것 없이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여기에 영국과 유럽연합의 브렉시트 협상과 터키·이탈리아·베네수엘라 등 국내 정세가 불안한 국가들의 경제위기도 정치이슈가 경제에 영향을 미친 사례들이다. 만약 알레라노 교수와 본드 교수가 201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다면, 이는 올해 경제계가 이들 정치적 이슈에 크게 흔들렸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홍콩 금융관리국은 지난 17년 4월, 당시 막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발생한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주변국들에게 전이되는 현상을 연구한 보고서에서 알레라노·본드 추정법칙을 사용했다. 개별 신흥국별로 미국의 인플레이션에 다른 반응을 보인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올해 6월에는 싱가포르경영대학에서 주요국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수출과 복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는데, 연구자들은 알레라노·본드 추정법칙을 통해 ‘조지.W.부시 효과’·‘트럼프 효과’·‘브렉시트 효과’ 등의 경제적 영향력을 평가했다.

◇ 흡수역량과 게임이론도 유력 후보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제시한 또 다른 노벨경제학상 후보자는 웨슬리 코헨 듀크대학 교수와 다니엘 레빈탈 펜실베이니아대학 교수다. 새로운 정보의 가치를 이해하고 상품화하는 기업의 능력을 뜻하는 ‘흡수역량’ 개념을 처음 도입하고 발전시킨 것이 이들의 업적이다. 정보변수에 대한 반응능력으로 해석될 수 있는 흡수역량은 기업이 성장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손꼽히는 ‘혁신’과 밀접하게 연관돼있다. 코헨·레빈탈 교수가 1990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기업의 흡수역량을 발전시키는 것은 지식과 다양성, 그리고 기술개발연구(R&D)에 대한 투자다.

비록 정보·기술과 정치·정책으로 분야는 다르지만, 새로운 변수에 대한 경제주체의 반응을 연구했다는 점에서 ‘흡수역량’은 알레라노·본드 교수의 연구와 닮았다. 2018년은 정치적 혼란이 가중된 해일 뿐 아니라 산업계에서 각종 신기술 연구가 궤도에 오른 해이기도 하다. 인공지능·빅데이터와 블록체인 등 신기술들을 얼마나 빠르게 흡수하느냐가 기업의 사업성을 결정하는 변수라면 코헨·레빈탈 교수의 연구가 갖는 가치는 더 높아진다.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마지막 후보자로 데이비드 크랩스 스탠퍼드대학 교수를 선택한 것은 보다 노골적이다. 그의 주된 연구 분야는 비협조적 게임이론과 ‘축차균형(비(非)완비 정보게임의 해답)’이다. 게임이론이 경쟁상대의 행동을 바탕으로 최적 선택을 도출하는 과정에 대한 이론임을 고려하면 ‘외부 변수에 대한 반응’이라는 주제가 얼마나 중요하게 다뤄졌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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