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당시 국회에 출석했던 주요 대기업 총수들 /뉴시스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당시 국회에 출석했던 주요 대기업 총수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이 국정감사 증인에서 빠졌다. 남북경협 관련 자유한국당의 증인신청이 있었지만, 간사협의 과정에서 민주당의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재벌총수들을 증인으로 세우기 위해 국정감사 때마다 강공을 취했던 야당시절 민주당의 모습에서 180도 바뀐 셈이다.

◇ 민주당 “묻지마 총수 증인채택 자제”

물론 민주당은 여당이 됐다고 태도가 바뀐 것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5일 기자들과 만난 홍영표 원내대표는 “개별사안에 대해 총수를 전부 부르는 것을 지양하자는데 공감대가 마련돼왔고 이것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개별사안에 대해서는 해당 임원을 부르는 것으로 정착돼 간다고 보고 있다. 우리가 여당이 됐기 때문에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뛰는 기업 관계자들은 민주당의 달라진 기류를 피부로 느낀다. 대관업무를 맡고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전에는 증인신청 문제를 꺼내기만 해도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지금은 기업 입장을 많이 고려해주는 것 같다”며 “납득이 될 경우 이번 국감 증인에서 빼주는 일도 흔치 않게 있었다”고 털어놨다.

여기에는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독려하는 정부의 기류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전날 SK하이닉스 청주공장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저와 정부는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고 중소기업과 상생하여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기업에 대해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여권 고위 관계자는 “디테일한 사건까지 총수들을 부르는 건 기업에 피해를 줄 수 있으니 될 수 있으면 자제하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 피감기관장의 ‘국감증인’ 공포증

국감장 밖 복도에서는 감사자료를 준비하는 피감기관 관계자들로 북적인다. 캠핑 의자와 테이블까지 준비해 눈길을 끈다. /뉴시스
국감장 밖 복도에서는 감사자료를 준비하는 피감기관 관계자들로 북적인다. 캠핑 의자와 테이블까지 준비해 눈길을 끈다. /뉴시스

사실 국감 증인석에 앉는 것을 반기는 기업인은 없다. 해명의 기회가 주어지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국회의원의 호통 섞인 질의에 혼나는 것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망신주기’다. 이에 기업 관계자들은 국감 시기가 오면 증인채택을 막기 위해 문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의원실 문을 드나든다. 증인에서 완전히 빠지는 게 최선이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대표나 오너가 아닌 임원급으로 바꾸는 게 플랜B다.

이는 공공기관 등 피감기관도 마찬가지다. 다만 민간기업과 달리 공공기관은 국회의 감시대상이라는 점에서 피할 길이 없다. 따라서 증인채택 보다는 질문지를 사전에 받아 해명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쪽에 집중한다. 기관장의 증언을 지원하기 위해 직원들이 프린터와 팩스를 들고 상임위 밖에서 진을 치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는 때가 이 때다.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철저하게 준비해서 임하지만, 기관장이 당황하거나 떨기 시작하면 암담해진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올해 국감은 오는 10일부터 29일까지 약 20일 간 진행된다. 지난 1년간 정부의 국정운영 실태를 확인하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현안들을 살펴볼 예정이다. 특히 ▲편의점 사업 공정거래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사건 ▲항공사 갑질 논란 ▲한국GM 법인분리 ▲최저임금인상 영향 ▲포털 댓글조작 사건 등이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다만 국민적 관심을 집중시킬 대형 이슈가 없다는 점에서 관심도는 여느 때보다 작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민주당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보통 국정감사는 의원 임기 2년차와 4년차 때 빡빡하고, 1년차와 3년차는 다소 느슨하게 진행하는 측면이 있다”며 “지난해 국정감사가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혼재돼 있어 초점이 잘 맞춰지지 않았다면, 올해는 국감을 뜨겁게 만들 현안이 없는 것 같다. 의원실 마다 철저히 준비하겠지만 4년 차 마지막 국감 보다는 열기가 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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