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시사위크=은진 기자청와대가 12일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국민청원에 대한 답변을 내놨다. 청원답변 기준인 20만 명 서명을 넘긴 51번째 청원이었다. 강제추행 혐의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남편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으로 33만 명 이상이 동의했다. 해당 사안은 피고인이 항소장을 제출했고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청와대로선 “2심 재판이 진행되는 사건에 대해 청와대가 언급하는 것은 삼권분립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는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철학에 맞춰 국민청원 게시판을 도입했다. 하지만 누구든 자유롭게 청원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국민청원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기도 한다. 이번 곰탕집 성추행청원처럼 사법부의 사안을 행정부에 청원한 것은 삼권분립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청원 담당 정혜승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이날 청원 내용을 설명하면서 피고인은 무죄를 주장중이고, 피고인 아내가 남편이 억울함을 호소한다면서 청원을 올렸다. 또한 피해를 당하셨다는 분도 억울함을 주장하고 피해를 당했다고 표명하셨다“2심 재판이 진행되는 사건에 대해 청와대가 언급하는 것은 삼권분립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양해해주시면 좋겠다고 밝혔다.

정 센터장은 온라인 공론장인 청원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으나, 사법부나 입법부 관련 사안은 청와대가 답변하기 어렵다앞으로도 청원에 참여할 때 이 부분은 감안해주기 바란다고도 덧붙였다. 김선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실 행정관은 오늘 청원 답변은 답변보다는 양해 말씀정도라고 하기도 했다. ‘20만 명 이상 동의라는 청원답변 기준은 충족했으나, 청원의 내용 상 청와대가 공식 답변을 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설명이다.

식당 성추행 남성 구속과 관련한 국민청원에 청와대가 이날 "재판 중 사안에 대해 답변할 수 없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 / 청와대 라이브 화면 갈무리
식당 성추행 남성 구속과 관련한 국민청원에 청와대가 이날 "재판 중 사안에 대해 답변할 수 없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 / 청와대 라이브 화면 갈무리

현재까지 청와대가 답변한 청원 중 청와대를 답변의 주체로 볼 수 없는 청원은 이외에도 많았다. ‘조두순 출소 반대’(615,354) 청원은 아동 성폭행범인 조두순 사건을 재심에 맡겨 무기징역에 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현행법상 재심은 유죄 선고를 받은 범죄자가 무죄라는 증거가 발견된 경우와 같이 처벌 받은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만 가능하다. 청와대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출신인 조국 민정수석을 통해 관련법과 판결에 대해 설명하는 식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입법부인 국회의원의 임금을 최저임금으로 책정해 달라는 청원도 20만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이에 청와대는 국회의원 급여와 수당은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규칙으로 결정된다. 정부가 관여할 수 없는 입법부의 권한이라며 입법부에서 스스로 월급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는 현행법상 입법부의 몫이다. 정부가 더 드릴 말씀이 없다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 국회에서도 이번 청원을 계기로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더 노력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수준의 답변을 내놨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부장판사를 특별감사대상으로 지정해 감사를 받게 해야 한다는 명백한 삼권분립 위반 청원도 있었다.

청원이 주로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을 위주로 제기되기 때문에 야당 소속 특정 의원을 규탄하는 내용도 적지 않다.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의 조직위원회 위원 자격을 박탈해달라는 청원이 대표적이다. 당시 같은 당 장제원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왕정국가의 입법, 사법, 행정권 모두를 쥐고 있는 왕인 줄 아는가 보다라며 요즘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쇼들 때문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헷갈리고 있다고 비판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청원이든 일단 20만 명의 동의를 얻게 되면 의제로서 중요성이 부여되고 뉴스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약자인 일반국민 입장에서는 국민청원 게시판을 적극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의 답변대상인 청원은 언론에 자주 노출되며 이에 따라 여론도 이목을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동일한 내용을 반복해서 올릴 수 있는 등 운영에 허점이 있는 부분은 청와대가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도 결국은 국민의 자정능력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동시에 제기된다.

<한국이 싫어서>의 작가 장강명씨는 국민청원 열풍과 한국사회에 대해 사실 자기 동네 기초의원이 몇 명인지, 내 동네 광역의원이 무슨 정당인지도 모르는 분들이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시민의식의) 역량을 아래에서 좀 끌어올리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이건 청와대가 할 일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할 일이라며 지금 (국민청원은) 일단 말하는 창구고, (청원을) 올려서 답변 받고, (과한 열기도) 조금 가라앉고 하다보면 어떤 종류의 질서가 만들어지지 않을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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