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가을일세. 지난주에는 경북 청송에 있는 주왕산과 영덕 바다에 다녀왔네. 아직 단풍은 붉게 물들지 않았지만, 높고 푸른 하늘과 창공을 가르는 쌀쌀한 바람이 가을임을 일깨워주더군. 이런 가을을 앞으로 몇 번이나 맞이할 수 있을지혼자 다니니 외로워서 우울한 순간도 있었지만 자신과 이야기하는 시간들이 많아서 좋았네. 다시 한 번 내 자신을 돌아보고 채찍질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유익한 여행이었다고나 할까.

가을이면 자주 떠올리는 윤동주 시인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를 읽고 이야기를 계속하세.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 위해/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얼른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냐고 물을 것입니다.// 나는 그때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꿔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놓은/ 좋은 말과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 하겠습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피식 웃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내 인생이 초가을로 접어들었네. 왜 웃었냐고? 시인이 말하는 것처럼 살려면 성인(聖人)’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에게 가능한 일이겠냐는 냉소적인 반응이었어. 다른 사람들을 무조건 사랑하고,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 해 열심히 살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주지 않고, 사는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고,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리고 좋은 말과 행동으로 열매를 키워 수확하는 삶이 언강생심 우리 같은 범인이 꿈꿀 수나 있는 일이냐는 반감이었지.

 

그런데 웬 조화인지 당돌하게도 60살이 넘으면서 시인의 가을이 그렇게 어려운 삶의 목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 우리보다 먼저 살다간 이른바성인들의 가르침을 따라가다 보면, 성인은 못될지라도 남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으로 늙지는 않을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생긴 거야. 그래서 이 가을에 다시 한 번 그분들의 가르침을 되새김질해보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해보는 걸세.

 

무엇보다 먼저, 공자의 가르침대로 수기(修己)에 힘써야 하네. 나를 닦고, 지키고, 더럽히지 않는 노력이 필요해. 그러면서 남을 편하게 해주는 안인(安人)과 애인(愛人)에도 힘써야 하네. 그래야 나도 편안해지거든. 인의(仁義)의 실마리인 측은지심과 수오지심도 잃지 않아야 하고. 그 다음은 장자의 말대로 무기(無己)해야 하네. 언제나 홀가분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쓸데없는 욕망이 몸과 마음을 구속하고 병들게 하니까. 게다가 그런 욕망에서 벗어날 때만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하네. 불가에서 가르치는 대로 탐진치(貪瞋癡)는 우리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3가지 독일 뿐이야. 욕망, 분노, 어리석음 때문에 생긴 번뇌의 강을 건너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 그런 경지에 이르면 삼라만상을 하나로 품고 있는 자연처럼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껴안고 살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바로 고타마 싯다르타가 말한 해탈이고 열반이며, 노자가 말한 포일(抱一)의 경지이네.

 

꿈이 너무 크다고?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고 했네. 인생의 남은 가을 한 번 크게 미쳐보면 어떨까? 이순(耳順)의 나이을 넘기니 성인들의 소중한 가르침들이 귀에 속속 잘 들어오더군. 이미 때가 늦었는지도 모르지만, 새로운 생을 시작하는 청년의 마음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 보면 그 꿈의 반의반이라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내 뜻대로 행해도 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종심(從心)의 나이를 웃으면서 맞이할 수 있을 텐데

 

풀잎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삶을 생각한다.// 이슬을 바라보며/ 깨끗한 삶을 생각한다.// 풀잎처럼/ 맑은 눈빛으로 삶을 마치고 싶다.// 물방울처럼/ 울림의 삶으로 흐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이성선 시인의 <풀잎을 바라보며>라는 시일세. 지금까지는 그렇게 살지 못했지만,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사람, 깨끗한 사람, 맑은 눈빛을 가진 사람, 울림을 지닌 사람으로 오래오래 기억되고 싶어. 물론 이 나이에 쉽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런 꿈을 꾸면서 하루하루 알차게 살다가 가고 싶네. 친구야! 천상병 시인처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에 우리 가을날의 삶이 오색단풍처럼 "아름다웠더라고" 당당하게 말하면서 하늘로 돌아가는 날을 위해 우리 이 가을을 마음껏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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