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북한이 국제무대에서 불법적인 무기거래를 시도하는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 체제가 화해무드를 조성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비밀리에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핵과 미사일 도발을 일삼던 지난해와 그 이전은 물론 대화 분위기로 돌아선 올해 들어서도 재래식 무기의 수출에 주력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유엔과 국제사회가 대북제재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대북감시의 눈길을 보내온 상황이라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북한이 예멘 후티 반군 측에 탱크·미사일 등을 판매하는 불법 거래를 한 사실은 지난 9월 외신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월 15일자 보도에서 대북제재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임무를 맡은 유엔 전문가패널의 비공개 보고서를 인용해 북한의 불법 무기 거래와 연료 위장수송, 금융거래 같은 새 증거들이 파악됐다고 전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이 시리아와 예멘·리비아를 비롯한 국제적인 분쟁지역에 무기를 판매한 사례를 적시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조직적이고 불법적인 무기 수출에 나선 건 1990년대 말부터로 파악된다. 국제사회의 의심과 우려를 낳았고 구체적인 정황이나 증거나 드러났지만 북한은 막무가내로 부인하면서 무기거래를 통한 외화벌이에 주력했다. 2011년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권력을 거머쥔 김정은 체제에서는 더욱 은밀하게 거래가 이뤄진다는 게 대북 정보 당국의 판단이다.

2013년 7월 쿠바에서 미그-21 전투기 등을 싣고 가던 청천강호가 파나마 당국에 적발된 경우는 대표적이다. 억류된 북한 화물선에는 작전 투입이 가능한 상황은 전투기 2대와 함께 부품 수리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15개의 비행기 엔진도 실려 있어 파나마 관계기관 뿐 아니라 국제사회를 놀라게 했다.

이런 적발 사례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불법 무기거래를 멈추지 않았다. 2015년에는 싱가포르 법원이 현지 업체인 진포해운 측이 북한과 불법 거래를 한 혐의로 재판을 벌이기도 했다. 4년 간 북한 관련 기업 및 기관과 605회에 걸쳐 4,000만달러가 넘는 자금을 주고받은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미 재무부는 북한의 불법 무기거래를 도운 혐의로 싱가포르 소재 선박회사 세나트(SSC)와 네오나르도 라이 회장을 대북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싱가포르에서 무역·보험 사업을 벌이다 탈북·망명한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싱가포르가 동남아 선박 운영의 중심지란 점에서 북한 군부와 육해운성, 보험부문 등 많은 회사가 진출해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란과 이라크 간의 8년 전쟁(1980~88년)을 틈타 미사일 판매로 큰돈을 벌어들이면서 무기 밀매에 본격적으로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무기거래에 제동을 걸고 나선 계기가 된 건 2006년 10월 첫 북핵 실험이다. 유엔 안보리는 대북제재 결의 1718호를 채택해 전차나 전투기·헬기·전함·미사일 등의 부품이나 기술을 북한에 제공하지 못하도록 했다. 물론 북한은 집요하게 그 빈틈을 파고들었다. 이 때문에 대북 제재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불법적인 무기 수출을 통해 북한 당국이 어느 정도 규모의 달러를 벌어들이는지는 구체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대북 정보 당국자는 “바다가 없는 몽골에 선박을 편의치적 형태로 등록해놓고 운항하는 방식으로 철저한 위장을 하는데다 워낙 은밀하게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실태 파악이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은 2000년 7월 북·미 미사일 협상 때 수출 중단 대가로 매년 10억 달러를 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 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연간 2억~5억 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추산한 바 있다.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일이던 지난 9.9절 때 북한은 군사 퍼레이드를 벌였다. 2월 북한군 창건 기념일에도 대대적인 열병행사를 했다. 이처럼 주기적으로 선보이는 북한의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두고 불법적인 무기 수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북한산 무기에 눈독을 들이는 해외 국가와 무장단체 등 잠재적인 고객을 의식해 김정은까지 직접 나서 마케팅을 벌이는 것이란 얘기다.

특히 신형무기를 선보이면서 미국과 국제기구의 이목을 끄는 행동을 하는 대목을 대북 정보 당국은 주시한다. 지난 2015년 10월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에 개량형 KN-08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신형 300mm 방사포 등 30종이 넘는 무기 300여점이 선보인 것도 무기거래 시장을 겨냥한 측면이 있다는 게 군 정보당국의 분석이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북한산 무기 수출 차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무엇보다 아프리카 및 중동의 분쟁지역 반군과 무기 거래를 시도하고 특히 이슬람국가(IS)를 비롯한 테러집단에 북한산 무기가 흘러들어갈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을 상정해놓은 상황에서도 불법 무기거래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다.

유엔 보고서는 “북한과 시리아 측의 금지된 거래가 계속돼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탄도미사일 수출과 기술이전 등에 관여하는 북한 기술자들이 2011년과 2016년, 2017년에 시리아를 방문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제시하고 있다. 유엔 측은 북한이 무기금수 제재를 위반한 행위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를 벌여나간다는 입장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서울과 워싱턴을 향해 대화의 제스처를 보내며 ‘완전한 비핵화’를 공언하고 있다. 그는 6월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서명하는 자리에서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북한 체제의 변신을 예고했다. 비핵화 약속 이행 뿐 아니라 개혁·개방과 인권증진, 민생 문제 등 북한 체제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의 조치들이 취해질 것이란 기대까지 나왔다.

그렇지만 유엔의 패널 보고서는 북한이 여전히 불법적인 무기거래 같은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은 최근 펴낸 저서 「파시즘」에서 “DPRK(북한)는 세속적인 ISIS(극단 무장조직 ‘이슬람국가’)”라면서 “북한의 존재는 권력이 극소수에게 너무나 오랫동안 집중됐을 때 발생하는 비극의 추가적인 증거”라고 지적했다. 대북 제재망을 피해 재래식 무기의 밀수출과 이를 통한 외화획득 등을 시도하는 북한에게 개과천선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