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29) 씨가 치료감호소로 이동하기 위해 22일 오전 서울 양천구 양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29) 씨가 치료감호소로 이동하기 위해 22일 오전 서울 양천구 양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29) 씨가 정신 감정을 받기 위해 공주 치료감호소로 이송됐다. 김씨는 앞으로 한 달간 전문가들의 면밀한 검사를 통해 심신미약 여부가 결정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김씨의 경우 심신미약으로 인정받기도, 또는 인정을 받더라도 감형사유로 인정되긴 어렵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전문가들 “우울증 약 복용? 감형사유 아냐”

22일 신상공개 결정에 따라 이름과 나이, 얼굴이 공개된 김씨는 치료감호소로 이송 전 기자들의 질문에 “죗값을 치르겠다”면서도 심신미약 주장과 관련해서는 “집에서 (진단서를)보낸 것”이라고 답했다. 김씨는 어눌한 말투를 보였지만, 동생이 공범이냐는 질문에도 “그렇지 않다”고 답하기도 했다.

지난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강서구 피시방 살인사건. 또 심신미약 피의자입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은 이날 오전 85만명의 동의를 기록했다. 이미 청와대 또는 정부기관의 답변 기준(20만명)을 넘겼음에도 사건 자체에 대한 공분과 심신미약 감형에 대한 반대여론이 더해지면서 청원글에 대한 관심은 날로 더 높아지고 있다.

우리 형법에 따르면 심신장애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고 있다. 심신상실까진 아닌 심신미약의 경우는 감형 사유로 규정돼 있다. 문제는 실제 심신미약 사례의 대부분이 만취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라는 것이다. 때문에 비슷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심신미약 감형 규정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아울러 만취 범죄의 경우 오히려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수년 전부터 논의돼 왔다.

김씨의 경우, 만취 상태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잔혹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다. 다만 전문가 사이에는 실제 김씨가 심신미약을 인정받기엔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단순히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거나, 약을 복용했다는 것과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법원에서는 심신미약으로 감형을 받기 위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 외 해당 질환이 범행의 원인이었다든가,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는지 등을 따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정신질환으로 인한 심신미약은 인정이 어려워, 실제 심신미약이 인정된 사례는 만취 범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검찰 출신인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이 인정이 되려면 환각이나 환청 같은 게 들려서 자기가 하는 일이 뭔지 모르거나 혹은 알기는 하는데 어떤 충동 장애에 의해 행동이 조절이 안 될 때 인정된다”면서 김씨가 심신미약을 인정받긴 어려울 것으로 봤다.

또한 피해자와 말다툼 후 경찰이 출동하자 집으로 가서 칼을 챙겨와 수십차례 휘두른 김씨의 행동이 고의적, 계획적으로 판단될 수 있어 역시 심신미약 상태를 인정받긴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주취 범죄의 경우 최근 감형사유로 작용되지 않는 추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신질환의 경우 세밀한 검증이 요구되는 만큼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주취 범죄의 경우 최근 감형사유로 작용되지 않는 추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신질환의 경우 세밀한 검증이 요구되는 만큼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 “‘주취 감형’ 사실상 사라져... 정신질환도 엄격히 판단”

최근 법원에서는 심신미약을 엄격히 인정하는 추세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술을 마셨다는 사실이 매우 당연한 감형사유처럼 다뤄지기도 했다. 특히 2008년 ‘조두순 사건’ 이후에도 이 같은 경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조두순은 범행 당시 만취상태였던 점이 인정돼 징역 12년으로 감형됐다.

이외에도 술에 취해 흉기로 아내를 협박하고 성폭행한 40대 남성에게 집행유예와 함께 각각 40시간씩 성폭력과 알코올 치료 수강이 내려진 바 있다. 가해자는 가정폭력으로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진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지만 재판부는 술을 마시고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른 점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또 사실혼 배우자의 얼굴과 배 등을 무차별 폭행해 살해한 중국 국적의 40대 남성도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 가해자도 피해자에 대한 폭행으로 한국에서 추방당할 위기였지만 범행을 막지 못했다. 검찰은 18년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범행하고 범행 직후 119에 신고한 점을 이유로 감형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5세 여아를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갔던 50대 남성도, 회식 후 회사 후배를 강제로 차에 태워 성폭행하려했던 30대 남성도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모두 2015년에 나온 판결들이다.
 
그러나 주취 범죄의 경우 최근 감형사유로 작용되지 않는 추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종문 썬앤파트너스 변호사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정말 많이 달라진 것이 요즘엔 재판에서 술 마셨다는 얘기는 못하는 분위기”라며 “사실상 주취 범죄로 인한 심신미약 감형은 폐지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선 변호사는 다만 “정신질환의 경우 실제 자신의 행동이 무슨 행동인지 모르고 범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면서도 “이 역시도 법원에서 쉽게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판사의 재량에 따라 좌우되는 만큼 좀 더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거나 법 개정 등의 작업은 오랜 시간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씨 사건이 자칫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범죄자 낙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20일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는 입장문을 내고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과 심신미약 상태는 전혀 다른 것으로, 심신미약이란 형법상의 개념이지 정신의학상 개념이 아니다”라며 “정신질환자들이 잘못된 편견과 낙인에 노출되지 않도록 신중하고 사실관계에 입각한 보도를 당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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