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장민제 기자] 고대 그리스 작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트로이 목마’는 그리스가 트로이 지역을 함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기록에 따르면 그리스군은 10여 년간 이어진 전쟁을 끝내기 위해 퇴각하는 척하면서 거대한 목마를 남겼다. 트로이는 목마를 승리의 상징으로 여기며 성에 들여왔고, 종전을 기념하는 축제를 벌였다. 이후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 목마 속에 숨어있던 그리스 병사들은 트로이의 성문을 열어 아군을 맞이했고, 트로이는 결국 함락됐다.

최근 카카오모빌리티(이하 카카오)와 택시업계 간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문득 떠오른 트로이목마 이야기다. 애초부터 카카오의 의도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택시기사들에게 환영받던 ‘카카오T택시’(이하 카카오택시)가 기사들을 압박하는 카드로 활용됐기 때문이다.

◇ 카카오택시로 쌓인 ‘경험’ ‘데이터’ 택시기사 정조준

실제 2015년 서비스를 시작한 카카오택시는 이후 급격한 속도로 시장을 장악했다. 고객들은 무료 콜비와 편리함 등을 이유로 사용했고, 사용자들 증가는 택시기사들의 빠른 유입으로 이어졌다.

올해 9월 기준 전국 택시기사 중 카카오택시를 사용하는 비중은 83%에 달한다. 물론 ‘콜 취소’ ‘손님 골라 태우기’ 등 부작용도 있지만, 사용자들에게 기존보다 더 나은 편익을 제공한 건 사실이다. 택시기사들도 ‘공차시간을 줄일 수 있어 좋다’는 등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카카오택시의 운행으로 쌓인 빅데이터와 사용자 경험은 택시업계가 반대하는 ‘카풀 도입’에 힘을 실었다.

카카오가 이달 15일 발간한 ‘2018 카카오모빌리티 보고서’를 살펴보면 ‘진짜 필요할 때 왜 택시가 안 잡힐까’라는 주제의 항목이 포함됐다. 총 11페이지로 구성된 이 항목은 일정기간 카카오택시에서 발생한 콜과 응답수 및 발생시점의 날씨 등 다양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화룡점정은 수도권 지역의 시간대별 택시의 호출건수와 수신기사 수를 나타낸 부분이다.

카카오는 그래프와 함께 “분석결과 출근시간인 7~10시, 퇴근시간인 18~20시, 심야시간인 22~2시에 택시의 공급부족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택시의 수급불일치가 전 시간대에 걸쳐 나타나는 것이 아닌 만큼, 특정 시간대에 한해 카풀 서비스를 시행해 공급을 확대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후 카카오는 ‘카풀도입’을 발표하면서 택시업계의 반발에 직면했지만, 여론은 의외로 카카오에 우호적이다.

최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조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카카오 카풀이 '시민 편익 증진에 도움이 되므로 찬성한다'는 응답은 56%로 집계됐다. 반면 ‘택시기사의 생존권 보호를 위해 반대한다’는 응답은 28.7%에 불과했다.(전국 성인 500명,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

여기엔 무엇보다 대중앱으로 자리잡은 ‘카카오택시’를 사용하면서 출퇴근·심야 시간대 택시 잡기의 어려움을 고객들이 직접 느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카카오택시로 쌓인 고객경험과 빅데이터가 택시기사들의 목줄을 죄는 결과로 돌아온 셈이다.

다만 현대의 갈등과 투쟁은 과거 적군을 섬멸시켜 승리하는 트로이전쟁과 다르다. 마지막 칼자루 역시 여론이 쥐고 있다. 카카오의 ‘카풀도입’이 택시업계의 침체 또는 몰락으로 이어진다면, 카카오도 집중포화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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