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범찬희 기자] 흔히 회계를 ‘기업의 언어’라 일컫는다. 당장 이틀 뒤 국가 경제의 근간이 되는 기업들의 언어에 대대적인 변화가 생긴다. 지난 23일 신 외감법(외부감사에 관한 법류 개정안)에 따른 시행령 전부개정령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새로운 기업 언어의 시대가 도래 하는 것이다.

이번 외감법 개정은 ‘회계 개혁’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이내믹한 변화를 담고 있다. 우선 회계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유한회사가 외감 대상에 포함된다. 이로써 국내에서 막대한 수익을 거두면서도 불투명한 정보 공개로 일관해온 글로벌 기업들의 경영 투명성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이는 회계 투명성 강화라는 외감법 개정 취지와도 가장 잘 부합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감사인 선임 권한을 기존 경영진에서 감사위원회로 이관하는 등 낙제 수준에 머물러있는 국내 회계 투명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다양한 조치가 이뤄진다.

기업 살림은 물론 국가경제까지 좀먹는 현 외감 체제의 문제를 뜯어고치는 것은 필수 불가결한 대수술이다. 다만 이런 가운데 선뜻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우려스럽다.

바로 감사인 등록제 기준(2019년 말 시행)에 관한 일이다. 금융위원회는 40인 이상 공인회계사를 보유한 회계법인에만 상장사 외부감사를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겠다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는 규모의 논리에 매몰된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으로, 진정한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정책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회계 품질과 법인 규모의 상관관계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63개 국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회계투명성 순위에서 한국이 ‘63등’을 차지하는 데 일조한 대형사고 대부분이 소위 ‘빅4’라 불리는 대형 회계 법인에서 발생했다. 이번 회계개혁의 배경에 된 대우조선해양 사태의 주범 역시 회계법인의 김앤장 격인 딜로이트 안진이라는 건 불문가지다. 또 일각에서는 대형 법인일수록 피감사인과의 이해관계가 깊은 경우가 있어 개별 회계사들의 독립성이 보장받기 어렵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숙련도에 있어서도 중소 회계법인이 앞선다는 평가다. 대형 법인에서는 CPA를 통과해 회계사 명함을 판지 3년 전후인 젊은 회계사들이 즐비한 반면, 중소 회계법인에는 풍부한 경험을 가진 중견 회계사들이 주로 포진해 있다는 게 기자가 만난 다수 회계사의 얘기다. 이처럼 회계사 수에만 집착해 전체 회계법인의 82%를 아예 상장사 감사를 볼 수 있는 자격에서 제외시킨다는 건 ‘을’이 살 맛 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철학과도 대치된다.

말로는 상생을 외치면서도 ‘대기업 제품은 믿을 수 있지만, 중소기업 제품은 믿을 수 없다’는 사고방식이 정책 입안자들의 마음속에서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닌지 염려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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