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가 유가를 반등시키는데 애를 먹고 있다. 사진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칼리드 알 팔리 에너지부 장관. /뉴시스‧AP
사우디아라비아가 최근 유가 하락세를 방어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OPEC을 이끌며 감산 합의를 주도해왔던 이제까지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사진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칼리드 알 팔리 에너지부 장관.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12일 국제 두바이유 시장은 배럴당 69.81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지난 10월 3일 배럴당 84.12달러로 약 4년 만에 최고가를 기록한 지 40일 만에 약 15달러가 떨어진 셈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11일(현지시각) 일일 석유생산량을 50만배럴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유가 하락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 사우디 감산 요구에 러시아 반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발표에도 유가 하락이 멈추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비 OPEC 석유생산국인 러시아에 있다. 주요 산유국의 석유정책담당자들이 11일(현지시각) 아부다비에서 공동감산점검위원회(JMMC) 회의를 열고 추가 감산 가능성을 밝히자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에너지부 장관은 CNBC와의 인터뷰에서 “석유 시장의 변동성이 너무 크다”며 OPEC에 ‘성급한 정책 변화’를 자제할 것을 요구했다.

OPEC의 석유 증·감산 결정을 주도하는 것은 사실상의 의장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다. 지난 9월 미국의 압박에 증산을 선언했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유가가 예상보다 빠르게 하락하자 합의를 깨고 감산 전략을 택했다. 칼리드 알 팔리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부 장관은 11일(현지시각) 회의에서 적정 유가를 유지하기 위해선 일평균 100만배럴의 감산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인용하기도 했다. 당초 미국의 이란 제재로 국제 석유공급량이 자연스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로 줄어든 공급량이 생각보다 적어 추가적인 감산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지난 수년간 OPEC과 보조를 맞춰왔던 러시아가 난색을 표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두 나라의 입장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석유산업을 지배하는 중동 산유국에 비해 가즈프롬·로즈네프트·루크오일 등 세계 수위의 민영 석유기업들을 보유한 러시아는 감산에 더 큰 부담을 느낀다. 러시아는 작년 11월에도 자국 석유기업들의 반대에 부딪혀 감산 합의에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바 있다.

미국과의 경쟁도 신경 쓰인다. 러시아는 올해 1월 기준 일평균 원유생산량 1,055만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1,046만배럴)를 제치고 제1 산유국의 위치에 올라섰다. 반면 올해 6월 발표된 미국 에너지정보국의 순위에서는 미국이 1위 석유생산국으로 등재돼있다. 셰일오일을 앞세워 원유 생산량을 폭발적으로 늘려온 미국과 시장 점유율 경쟁을 벌이는 러시아로선 석유 생산량을 줄이는 것이 부담스럽다.

OPEC 회원국들과 비 OPEC 산유국들은 다음 달 중 오스트리아 빈에서 향후 석유정책을 결정하기 위한 회의를 연다. 감산 여부는 이 회의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 “OPEC, 유가 안정에 실패해” 불만도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8일(현지시각) 사우디아라비아가 ‘포스트 OPEC’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싱크탱크 ‘압둘라 국왕 석유연구조사센터’가 OPEC의 붕괴가 석유시장에 미칠 영향을 연구하는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탈 OPEC’ 시나리오를 부추기는 것은 크게 세 가지, ▲OPEC 산유국 내부의 분열과 ▲OPEC을 국제유가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트럼프 대통령, 그리고 ▲언론인 피살사태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등을 돌린 투자자들이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 뿐”이라는 해명을 밝혔다.

높아진 유가 변동성은 OPEC 체제에 대한 비 OPEC 산유국들의 불만도 야기했다. CNBC는 12일(현지시각) OPEC이 국제유가 안정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는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의 비판을 보도했다. 기자회견 중 OPEC이 유가 회복을 위해 추가적인 행동을 취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은 마하티르 총리는 “(OPEC은) 언제나 자기들끼리 물어뜯느라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비판하며 “유가가 OPEC 합의보다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말레이시아는 OPEC의 유가조절 실패로 피해를 입은 사례에 속한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5일(현지시각) 말레이시아의 2019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3.7%에서 3.4%로 낮추며 “저유가 기조가 막대한 국가부채를 해소하려는 말레이시아 정부의 노력을 방해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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