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이 불식간 ‘저런 거’가 됐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저런 거 놔두면 안 돼”라고 성낸 발언이 낳은 표현이다. ‘저런 거’는 최근 보수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게 한 발언을 지적한 것일 수도 있고, “(당을) 옮겨 다니는 걸 자랑스럽게 말하면 안 된다”는 충고일 수도 있다. 발언이든 행위이든 이언주 의원을 겨냥한 화살이다. 여권에선 다소 과격한 표현이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도 있지만, ‘속이 시원하다’는 평가가 많다. 그만큼 이언주 의원이 밉상으로 찍혔다는 얘기다.

실제 이언주 의원은 소속 정당에서도 옐로카드를 받았다. 지난 12일 자유한국당 청년특별위원회에서 주최한 포럼에 참석한 게 문제가 됐다. 당과 상의 없이 강연자로 나섰고, 이 자리에서 쇄신 성공을 전제조건으로 한국당 입당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후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이언주 의원에게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이언주 의원이 “나는 반문”이라고 맞받아쳤다. 한발 나아가 “손 대표야말로 정체성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역공을 폈다. 당 내부에선 “(이언주 의원의) 마음이 떠났다”는데 이견이 없다.

이언주 의원의 발언만 보자면, 그의 마음은 이미 한국당으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언론 인터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역대 대통령 중 천재”로 평가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역사가 평가할 문제”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친정인 민주당에 칼을 꽂았다. 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고, “운동권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늘 괴로웠다”고 설명했다. 자칭 ‘신보수’로 변신한 이유다. 이언주 의원은 21대 총선이 “운동권 세력을 심판하는 선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언주 의원은 민주당 내부의 운동권을 겨냥했다. '운동권의 민주당 장악'을 오늘에 이르게 한 원인으로 꼽았다. 그래서 찾아봤다. 민주당 의원 129명 가운데 운동권 출신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기자가 확인한 결과 모두 61명이었다. 당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7%에 이른다. 여기엔 운동권에 가담한 사실을 스스로 밝힌 사람들도 포함됐다. 반대로 운동권으로 언론에 소개됐으나 사실 확인이 불분명한 사람,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또는 산업 현장 등에서 투쟁을 시작한 사람은 제외했다. 운동권에 몸담은 상당수가 여성·노동·시민 운동으로 전개해 나간 것은 맞지만, 일부 언론에선 범운동권 이름하에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을 섞어 놓기도 했다. 이들까지 포함하면 민주당 절반 이상이 사회 부조리에 맞선 사람들이다.

이언주 의원의 말처럼 적은 수는 아니다. 운동권의 폐해가 도마 위에 오른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민주당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안철수 전 대표가 탈당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 운동권 출신 친노계에 대한 패권정치였고,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20대 총선 공천에서 강조한 것도 운동권 청산이었다. 하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운동권의 승리가 아니었다. 주동 세력의 ‘정치적 의도’가 의심을 사면서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했다. 이를 테면, 안철수 전 대표는 민주당에서 차기 대선 후보가 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탈당의 명분이 필요했다는 뒷말이 많았다.

이언주 의원도 마찬가지다. 우상호 의원은 이언주 의원의 변신에 대해 “다음 총선에서 지역구인 경기 광명 당선이 어려우니 당과 지역을 옮기려는 정략적 의도”라고 풀이했다. 현재 이언주 의원은 부산 영도 출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차기 총선 불출마 의사를 밝힌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의 지역구다. 이를 두고 우상호 의원은 “부산 영도는 바닷가지만 철새도래지는 아니”라고 꼬집었다. 그는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1기 부의장을 지낸 당내 대표적 운동권 인사다.

다시 말해 운동권은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것과 달리 선거 때마다 빌미가 됐다. 그만큼 당 안팎의 견제를 받아왔다는 얘기다. 김영춘 의원이 과거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저도 운동권 출신이지만, 운동권 출신이 무슨 천형의 낙인처럼 욕을 먹어야 하나. 과거 독재 시절에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싸웠던 사람들이다. 왜 그 사람들 명예를 짓밟는가. 운동권 정치인이 잘못된 정치를 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평가해야 한다. 왜 운동권, 비운동권을 구분해서 이야기하나. 운동권 출신 중에서 정치를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언주 의원은 운동권 출신이 아니다. 과거 신세대로 불린 ‘X세대’다. 기자와 단독으로 만난 자리에서도 “아버지 사업이 탄탄해 어려운 줄 모르고 대학을 졸업한 날라리”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그다. 이후 반전이 있긴 했다. IMF 여파로 부친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모친이 보험외판원과 부업으로 가정을 책임졌던 것이다. 이언주 의원은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울컥하기도 했다. 간염을 앓던 모친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탓에 작고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어머니 같은 사람이 더 이상 안 생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출마 결심으로까지 이어진 것 같다”고 기자에게 설명했었다. 그래서 이언주 의원의 변신은 다소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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