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석학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학 교수는 '2020년 장기침체론'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인물이다. /뉴시스·AP
세계적인 석학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학 교수는 '2020년 장기침체론'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는 인물이다.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한 번 올라간 경기는 언젠가 내려오기 마련이다. 역사상 두 번째로 긴 경제성장기를 맞은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미국이 단순한 경기둔화를 넘어 긴 경기침체의 터널을 지나게 될 것이라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대개 그 시작점을 2020년경으로 내다보는 중이다.

◇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는 서머스 교수의 예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학 교수는 15일(현지시각) CNBC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2년 내 미국 경제가 불황을 맞을 확률을 50%로 본다는 의견을 밝혔다. 재무부 장관과 국가경제회의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28세의 나이로 하버드 대학의 정교수로 임명되는 기록을 세웠던 서머스 교수는 수 년 전부터 미국이 장기 경기침체를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해왔던 인물이다. “경기 둔화는 ‘거의 확실’하며, 미국 경제 앞에 놓인 위험이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이를 대비하기 위한 ‘진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서머스 교수가 제시한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미국의 불안정한 금융시장과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무역 갈등, 그리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긴축정책이 그것이다. 서머스 교수는 벤 버냉키 전전 연준의장 시절부터 ‘장기침체론’을 주장하며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함께 시행해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리포트에서 미국 경제에 대한 확신을 드러내며 금리인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현재 연준의 모습과는 정반대다.

이 위기론을 단순히 한 천재 경제학자의 별난 아이디어로 치부할 수는 없다. 포브스는 지난 8월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자체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이들이 다음 분기부터는 법인세 감면으로 인한 경기부양효과가 사라질 것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과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 즉 유로지역·영국·일본 및 기타 신흥국 다수가 경기 둔화로 인해 재정상의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블룸버그가 10월 1일(현지시각) 전미실물경제협회(NABE) 소속 경제학자 51명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도 대답은 같았다. 응답자의 3분의2가 2020년이 끝나기 전에 불황이 시작될 것(2019년 10%, 2020년 56%)이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41%는 무역정책을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뽑았으며 긴축적 통화정책과 높은 주가변동성을 든 학자들도 각각 14%에 달했다. 결국 서머스 교수가 언급한 세 가지 요인이 모두 제시된 셈이다.

◇ 국제경제·정치 영역까지 ‘나비효과’ 가능

물론 모든 연구자들이 ‘장기침체론’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9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장기침체를 예상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3년 내 미국에서 경기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은 약 36%로 추산된다. 불경기라는 단어가 가지는 위력에 비춰보면 위험성이 상당히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골드만삭스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은 지난 40여년의 장기 평균보다 낮은 수치다.

다만 골드만삭스는 미국의 경기침체가 현실화될 경우 그 영향은 미국 내에서만 한정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 나라의 불경기가 주변국으로 퍼져나가는 ‘전이효과’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내년 중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에서 경기침체가 일어날 확률은 20%를 갓 넘는 수준이지만, 미국에서 경기침체가 일어날 경우엔 70%까지 올라간다. 특히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시장이 약세를 보이고 있어 파급력은 더 커진다.

한편 2020년은 미국 대선이 열리는 해이기도 하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 9월 13일(현지시각) 발표한 기사에서 “미국의 경기침체를 막을 도구들이 없어지고 있다”며 그 근거로 3.5%까지 높아질 미국 기준금리와 100달러대에서 형성될 것으로 가정되는 국제유가,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된 정책들을 들었다. ▲반 이민정책이 노동자의 평균연령을 높여 경제계의 활력을 떨어트리고 ▲석탄·석유산업을 우대하고 친환경에너지 산업은 괄시해 차세대 에너지 시장을 축소시켰다는 점, 그리고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1조5,000억달러짜리 인프라투자사업은 적자재정 우려로 언제 시작될지 모른다는 것이 그 이유다. 선거일인 11월 3일 이전에 경기 둔화 조짐이 가시화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도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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