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정계성 기자] 2001년 가을 서울 안국동에서 박원순 현 서울시장을 처음 만났다. 당시 참여연대 산하 사법감시센터에서는 서울대, 연대, 고대 법대생들과 연계해 감시의 일환으로 법조인 인명록 작성사업을 진행했다. 인명록 작성에 참여한 학생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목적에서 사법감시센터를 총괄했던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총장 주최로 식사자리가 마련됐었다.

식사자리가 무르익었을 무렵, 박 총장이 말을 시작했다. 민간에 의한 사법감시는 국내 최초이며, 비록 지금은 작은 움직임이지만 사법체계 개혁과 발전의 큰 원동력이 되도록 힘을 보태달라는 취지였다. 그런데 기자를 포함해 자리에 있던 20여 명의 학생들은 이미 거나하게 취한 상태였다. 고저차 없는 조곤조곤한 박 총장의 진지한 목소리에 하나 둘 꿈나라로 가고 있었다.

그 때 한 동료가 이런 질문을 했었다. “변호사님은 정치를 하실 생각이십니까.” 박 총장은 씨익 웃으며 몇 마디 말을 했다. 답변 속에 중간 “선택”이라는 단어가 들렸던 것은 기억이 난다. 그것이 ‘국민의 선택’이었는지 ‘본인의 선택’이었는지 전체 맥락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학생들은 ‘박 변호사가 언젠가는 정치를 할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박 시장을 현실정치에서 바로 볼 수는 없었다. 그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걸쳐 진행된 시민사회단체의 태동과 외연확대에 집중하는 선택을 했다. 시민사회단체가 운동권, 노동계, 호남과 함께 진보진영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된 것에는 박 시장의 공로가 크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그 사이 국회의원 낙천·낙선 운동을 전개하는 등 재야인사로서 정치활동은 계속했다.

다시 박 시장을 신문 1면에서 접한 것은 2011년 서울시장 재보선 때다. 결과론적이지만 이 때부터 박 시장은 선거에 있어 탁월한 정무적 감각과 선택을 보여줬다. 민주당의 입당 요구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등 중도세력 흡수를 위해 무소속을 고집했고, 2014년 지선에서는 반대로 안철수·김한길 지도부와 거리를 두고 개인기로 승부해 여권 대선주자였던 정몽준 후보를 꺾었다. 올해 지선에서는 2선에서 민주당 구청장 후보들을 후방지원하는 형태로 선거를 치러, 당 지지율보다 높은 득표율로 최초 3선 서울시장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백미는 지난 대선 당시 조기에 경선 불출마를 결정한 대목이다. 외부의 시선과 달리 지지층 사이 매몰돼 있는 정치인은 냉철한 상황판단과 선택이 힘들기 마련이다. 경선에서 쎄게 맞붙었던 이재명 경기지사의 현재 상황을 보면, 아마도 박 시장은 자신의 불출마 결정에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선택이다. ‘정책목표 달성’이 중요한 현재권력과 달리, 선거를 치러야 하는 미래권력은 유권자의 표심이 잣대다. 특정 지점에서는 필연적으로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역사적으로 전임 대통령과 각을 세우지 않았던 대통령은 없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이 과정에서 현재권력의 심기를 크게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유권자의 마음을 달래는 절묘한 균형감이 필요하다. 이론적으로는 쉽지만 타고난 ‘동물적’ 감각이 있지 않고서는 현실정치에 적용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박 시장은 한국노총의 탄력근로제 반대 집회 참석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몇 가지 사안으로 정부와 노동계가 으르렁대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 때처럼 양측이 서로를 완전히 배제하고 가진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따지고 보면 용산개발, 서울외곽 그린벨트 해제 등 박 시장이 문재인 정부 정책과 엇박자를 낸 것이 처음도 아니다.

하지만 반대진영은 “자기 정치를 한다”며 문 대통령과 박 시장의 틈을 벌리고 있다. 파급력이 큰 사안인 만큼, 민주당도 곤혹스러운 눈치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선택도 내외부의 시험대에 오를 것이며, 무수한 정치적 공세가 예상된다. 박 전 대통령과 김무성 전 대표의 관계가 딱 그랬다. 분명한 것은 순간의 선택이 ‘대선’을 좌우할 위치에 박 시장이 올라섰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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