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전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우전 국방홍보원장
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전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우
전 국방홍보원장

지난 11월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판결을 계기로 해마다 600명 안팎의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무조건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사태는 더 이상 없어졌다. 이와 함 정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복무제 안을 2019년까지 내 놓아야 한다.

공은 자연스레 군 당국으로 넘어갔고 머지않아 그 공은 다시 국회로 넘어갈 것이다. 어떤 방식이 됐든 결국은 의회가 입법을 통해 제도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확실한 법률로 정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오랜 논란은 이제 2라운드로 접어든 셈이다.

그런데 대체복무제의 몇 가지 핵심 쟁점을 놓고 예상했던 바 논란이 뜨겁다. 예컨대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어떻게 식별하고 인정할 것인가부터 복무기간과 복무 분야, 복무 형태 등을 놓고 견해가 크게 맞서고 있다. 국방부는 특히 양심을 빙자한 대체복무제 악용 가능성도 사전에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대 관심사는 역시 이들에게 적용할 복무기간이다. 현재 국방부가 적극 검토 중인 36개월 안과 민간 및 인권단체 등에서 제시하는 27개월 안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국방부는 거기에다 교도소 같은 교정시설에서 근무하고, 군대식 막사와 같은 합숙공간에서 단체로 생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의 36개월 방안은 문재인 정부가 임기 안에 병사들의 복무기간을 18개월로 줄인다는 가정 아래 그보다 2배 많게 부과해야 한다는 계산, 그리고 다른 대체복무자들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서 나온 것이다. 현재 군법무관과 군의관, 전문 연구요원 등 대체복무자들은 34~36개월을 복무하고 있다.
 
이에 반해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등 50여개 시민사회 단체 등에서는 36개월이 다분히 징벌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민변과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 참여연대 등에서는 ▲복무기간은 현역병의 1.5배 이내인 27개월로 하고 ▲복무분야는 의무소방과 치매노인 돌봄·장애인 활동 지원 등으로 하며 ▲심사기구는 국방부나 병무청으로부터 독립된 행정안전부나 보건복지부 등에 둘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복무기간과 관련, 당사자인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정작 복무기간을 얼마로 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다만 유엔인권위원회(UNCHR)의 “대체복무 징벌성격 금지”(1998) 결의와 유럽평의회(CE)의 “군복무의 1.5배 초과금지”(2008) 권고 등에 따른 사례 등이 적용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복무분야와 관련, 지방 교도소에서 14개월 복역한 적이 있다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 이 모(39)씨는 “특히 교도소에서 대체복무를 시키는 것은 당사자에게 이중, 삼중의 심적 고통을 주는 것”이라며 교정시설 근무 안에 적극 반론을 제기했다.

지난 19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 최영애 위원장이 직접 국방부로 정경두 장관을 예방, “대체복무 기간이 27개월을 넘겨서는 안 된다”며 36개월 안을 선택하지 말도록 권고했다. 최 위원장은 또 2015년 유엔 시민·정치적 권리위원회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면서 민간 성격의 대체복무제를 선택하도록 권고한 점을 근거로 내세우며 복무 영역을 교정시설에 한정하지 말고 다양화할 것도 요청했다.

하지만 민간단체가 선호하는 제3의 기관에 심사기구를 설치하는 문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사전에 국무총리실·법무부·행정안전부 등의 산하에 두는 방안을 타진해 봤지만 해당 부처들로부터 소관업무가 아니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무분야를 다양화하는 것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예컨대 소방시설의 경우 이미 현역병들이 ‘의무소방’이라는 이름으로 복무하고 있어 대체복무자에게 우선권을 주기는 어려운 실정이라는 것이다.

현재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59개국 가운데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는 20개국 정도로, 현역 복무기간의 1.5배가 대세다. ▲독일(9월) ▲대만(4월) ▲스웨덴(7.5월) 등은 현역과 같고 ▲프랑스(20월) ▲벨라루스(36월) ▲몽골(24월) ▲키르기스스탄(24월) 등은 현역의 두 배를 복무하고 있다. 이밖에 ▲아르메니아(36월) ▲리투아니아(18월) ▲우크라이나(18월) 등은 현역병의 1.5배를 복무하고 있다. <자료=서울지방변호사회 법제연구원>

그런데 대체복무제 도입을 놓고 요즘 우리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아르메니아 사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아시아 남서부, 터키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에 위치한 인구 3백 만도 안 되는 아르메니아공화국은 1991년 옛 소련이 해체되면서 독립한 나라다.

대체복무제 관련 연구자들이 아르메니아 케이스를 주목하는 것은 이 나라가 2003년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 다분히 징벌에 가까운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엄청난 후폭풍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르메니아 국방부가 대체복무자들을 민간시설인 고아원과 병원 등에 배치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들에게 의무적으로 군복을 입히고, 군형법을 적용하며, 소속 군을 명시하도록 강제함으로써 반발을 초래했다. 또한 아르메니아는 본래 현역병 복무기간이 24개월일 때 그 1.75배인 42개월을 대체복무제로 정했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강제규정이었다. 이들은 결국 대체복무제를 집단으로 거부하고 자진해서 감옥행을 택했다. 그곳에서 26개월가량 수감생활을 감수했는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2013년 10월 수형생활을 마친 이들은 급기야 유럽인권재판소(ECHR)에 제소하기에 이르렀다. 재판소는 “아르메니아 정부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권리를 침해했다”며 만장일치로 “피해자들에게 1만2천 유로씩을 손해배상금으로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소는 이어 “군 당국이 적극 관여하는 대체복무제는 진정한 의미의 대체복무제가 아니다”고 못 박고, “군이 대체복무에 대한 통제를 내려놓지 않는 한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국방부는 바로 이런 점을 치밀하게 점검하고 그에 따른 대비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부안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예컨대 ▲복무기간 ▲복무장소 ▲복무형태 ▲심사위원회 위치 등이 어느 것 하나 민감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국방부는 이를 모두 군 통제 하에 둘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어서 아르메니아와 유사성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물론 같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복무제라 하더라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한국과는 안보상황이나 국민 정서면에서 많이 달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는 어렵다. 아르메니아의 교훈에서 배워야 할 점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뒷북 행정이 돼서는 우리 모두가 불행해 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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