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부산 형제복지원사건' 피해자들의 사연을 듣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뉴시스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부산 형제복지원사건' 피해자들의 사연을 듣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떠들썩한 사과였다. 지난 27일 문무일 검찰총장은 형제복지원 인권유린 생존자들과 만나 눈물의 사과를 했다. 문 총장은 이날 “당시 검찰이 진상규명을 명확히 했다면 인권 침해가 밝혀지고 후속 조치도 밝혀졌을 것”이라며 “인권이 유린되는 사태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본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 마음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문 총장은 몇 차례 눈물을 훔쳤다. 피해 생존자들은 문 총장의 진심을 받아들인다면서도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피해자들은 검찰총장의 사과 후에도 여전히 국회 앞 농성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던 이유 자체가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30년이 지나서 검찰은 사과했지만, 국회는 여전히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30년 만에 생존자들에게 사과한 검찰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분으로 내무부(현 행정안전부) 훈령 410호에 따라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죄 없는 사람들을 잡아들여 강제노역과 학대를 일삼은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검찰총장이 사과했다. 지난 27일 국회 건너편 한 건물에서 피해 생존자들과 마주한 문무일 검찰총장은 이날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이 검찰로부터 직접 사과를 받은 것은 사건 발생 이후 처음이다. 최근 검찰은 형제복지원 원장이었던 박인근(2016년 사망) 씨의 횡령 및 불법감금 사건을 재수사했다. 당시 수사를 진행했던 검사는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윗선의 압력을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박 원장은 1989년 7년 대법원에서 불법감금 혐의에 대해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정부 훈령에 따른 정당한 수용이었다는 게 당시 대법원의 판단이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흐른 뒤 피해 생존자들은 당시 아무런 이유도 없이 경찰에 의해 끌려가 형제복지원에서 모진 고초를 겪었다고 폭로했다. 이곳에서 사망한 피해자들도 500명이 넘는다. 일부는 시체조차 찾지 못했다.

결국 재수사를 벌이던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는 지난 10월 10일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당시 검찰 수사가 축소·은폐됐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아울러 피해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검찰총장의 사과를 권고했다. 문 총장의 사과 역시 이를 따른 것이다.

문 총장은 피해자들을 만나기 앞서 한종선 형제복지원피해생존자 모임 대표가 쓴 ‘살아남은 아이’라는 책을 읽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한 대표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저 역시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아마도 (문무일 총장이)그 책을 통해 사건의 실상을 좀 더 알게 됐고, 과거사위 권고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사과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 문제는 특별법 통과... “사과도 배상도 진상규명이 전제”

다만 이날 문 총장은 피해 생존자들과의 비공개 면담에서 특별법 제정은 국회의 권한이라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에 대한 검찰총장의 수사 의지에도 불구하고 실제 진상규명을 위해선 현재 계류 중인 특별법이 통과돼야 한다. 문 총장이 피해자들에게 사과한 것과 관련,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논평을 내고 특별법 통과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바른미래당 또한 지난 10월 검찰 과거사위원회 조사 결과 발표 후 진상규명을 약속하기도 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6년 4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가운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박순이 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6년 4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가운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박순이 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그러나 국회의 약속은 그 전에도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자, 결국 피해 생존자들은 국회 앞에서 노숙농성장을 차렸다. 지난 27일 문무일 총장과 만났던 한 피해자는 2012년부터 진상규명을 요구해오면서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도 말했다.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자유한국당이 협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우리들은 아직 사과를 받을 준비가 돼있기 않다. 당시 왜 그곳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는지 아직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역시 어떤 피해를 받았고, 국가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명백하게 밝혀진 후에야 사과도 배상도 이뤄지는 게 맞다. 그래야 국민들도 납득을 하고 피해자들에게 힘을 모아줄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아직도 국회가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고 있다”며 “2012년부터 안 해본 것 없이 싸웠다. 마지막으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될 때까지 농성장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