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세월호 유가족 불법 사찰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투신해 사망했다. 그는 검찰의 별건수사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 뉴시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세월호 유가족 불법 사찰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투신해 사망했다. 그는 검찰의 별건수사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구속영장이 기각된 지 나흘째 되던 날이었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주변에선 아무도 그의 결심을 알아채지 못했다. 투신 직전 모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세종시로 출발하려던 참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변론을 맡고 있는 변호인에게도 ‘세종시에 내려가도 되느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세종시엔 교사를 하고 있는 부인이 있다. 이재수 전 사령관은 예편 후 지인이 빌려준 서울의 오피스텔에서 머물러오던 터였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행선지는 세종시가 아니었다.

◇ ‘절친’ 박지만 EG 회장에게 털어놓은 속마음

이재수 전 사령관은 지인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위치한 오피스텔을 찾았다. 그 오피스텔 13층에서 뛰어내렸다. 유서는 다음날 공개됐다. 이재수 전 사령관은 “세월호 사고 시 기무사와 기무부대원들은 헌신적으로 최선을 다했다. 5년이 다 돼가는 지금 그때의 일을 사찰로 단죄한다니 정말 안타깝다”는 심경과 함께 군 검찰 및 재판부를 향해 “내가 모든 것을 안고 가는 것으로 하고 모두에게 관대한 처분을 바란다”고 부탁했다. 검찰 수사에 대한 억울함이었고, 이미 구속 재판을 받고 있는 부하 직원들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실제 군 안팎에선 이재수 전 사령관을 옹호하는 분위기다. 세월호 사고 발생 시 구조와 수색을 위해 동원된 병력이 36만명, 투입된 군장비가 1만2,000대로 알려졌다. 사실상 대규모 군사작전이었고, 여기서 기무사는 군의 대민 지원과 관련된 여론 및 동향을 파악해 상부에 보고하는 것이 직무였다. 따라서 이재수 전 사령관은 주변에 “이것을 어떻게 민간 사찰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유서에서 “지금까지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투신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재수 전 사령관의 변론을 맡았던 임천영 변호사가 유서를 공개했다. 유서에는 “지금까지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는 이재수 전 사령관의 억울함이 담겨 있었다. / 뉴시스
이재수 전 사령관의 변론을 맡았던 임천영 변호사가 유서를 공개했다. 유서에는 “지금까지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는 이재수 전 사령관의 억울함이 담겨 있었다. / 뉴시스

야권에선 현 정권의 적폐청산이 표적수사, 과잉수사로 이어지면서 비극으로 몰고 간 게 아니냐는 비판을 내놨다. 특히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이재수 전 사령관에 대해 “훌륭하고 반듯한 분이었다”고 평가하며 “문재인 정권이 더 이상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검찰을 악용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야권과 달리 여권에선 아직까지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검찰 수사와 관련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재수 전 사령관이 검찰 수사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다는 점이다. 구속영장이 기각됐어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변론을 맡았던 석동현 변호사는 “앞으로 검찰이 먼지떨이식 수사를 벌일지 모른다는 압박감이 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후문엔 그가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관련된 사건으로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결국 검찰이 세월호 유가족 불법 사찰 외 다른 혐의로 영장을 재청구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지난 8일 이재수 전 사령관의 빈소를 다녀간 김관진 전 장관은 검찰의 적폐 수사에 대해 말을 아꼈다.

이재수 전 사령관은 “검찰 조사 때 윗선을 말하라는 요구”가 가장 힘들었다. 이 같은 속내는 박지만 EG 회장을 통해서 전해졌다. 두 사람은 서울 중앙고 동창이자 육군사관학교 37기 동기생이다. 이재수 전 사령관이 박지만 회장의 누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누나’라고 부를 만큼 가까운 사이다. 하지만 박지만 회장 또한 이재수 전 사령관과 영장실질심사 전날(2일), 그리고 심사 다음날(4일) 함께 식사를 했으나 “그 자리가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때문에 일각에선 우발적 사고가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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