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전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우전 국방홍보원장
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전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우
전 국방홍보원장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사찰 혐의로 수사를 받아오던 이재수(60) 전 기무사령관의 투신 자살 사건을 놓고 뒷얘기가 무성하다. 현 정부가 그를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다며 검찰에 비난의 화살을 쏴 대고 있는 가운데, 16일에는 ‘이재수의 미공개 수첩’이라는 출처불명의 글이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급속도로 유포되고 있다. 

이재수 전 사령관을 주어로 작성된 이 글에는 자신에게 수갑을 채운 천 모 검사가 ‘상부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적혀 있다. 또 수사를 받는 동안 그 검사는 자신에게 ‘김관진 장관의 지시’라고 한 마디만 하면 될 걸 왜 이 고생을 하느냐는 투로 말했다고도 기록돼 있다.

A4 용지 1.5매 정도 분량의 이 글에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시작으로 ▲문재인 대통령 ▲임종석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 ▲이해찬 더불어 민주당 대표 등의 이름이 올라 있다. 여기에는 놀라운 내용도 들어 있다. “윤석열을 제거하자.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도 죽자”고 한 대목이다. 

그러면서 “문제는 총기 구입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전역할 때 그냥 한 자루쯤 가져오는 거였는데 후회스럽다”고 적고 있다. 끔찍하다 못해 살의가 느껴진다. 그러나 이 글은 절대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쓴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글 솜씨 좋은 반정부 진영의 인사가 이재수 사령관이 되어 대필한 흔적이 도처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글의 작성자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실정법상 살인 예비음모 혐의에 해당되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 보수 매체들도 그의 죽음을 현 정권의 무리한 수사 탓으로 돌리는가 하면, 그를 영웅시하며 동정론을 펴기도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포토라인에 선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였을 때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그때 보수언론들은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어떻게 무책임하게 자살을 할 수가 있느냐”며 그의 죽음을 평가절하하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었다.
 
같은 군인이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도 보수 언론들은 동정론 같은 걸 말하진 않았다. 공관병 갑질 논란을 일으킨 현역 야전군 사령관이나 공금횡령 혐의로 역시 군의 수사 끝에 불명예 전역한 연합사 부사령관 등은 모두 육군 대장 신분이었지만 언론의 동정을 받지는 않았다. 

일부에서는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기각되지 않고 받아들여졌더라면 적어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한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고개를 들고 있다. 흔히 검찰의 구속영장은 피의자의 신체를 구속함으로써 자유를 박탈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는데, 구속된 상태에서는 피의자가 자해(自害)나 자살 같은 최악의 선택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예방적인 측면도 있다고 한다.

통상 검찰은 피의자에게 증거인멸이나 도망 갈 우려가 없더라도 그가 특별한 상황에서 돌발적인 행위를 택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 서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병을 구속하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피의자가 자살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경우 그 책임은 고스란히 검찰의 몫이 돼 버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국정원 댓글수사 방해 혐의로 수사를 받던 도중 영장실질 심사를 코앞에 두고 목숨을 끊은 서울고검의 변창훈 검사, 지난 여름 드루킹 김동원 씨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던 중 아파트 고층에서 투신해 자살한 노회찬 전 정의당 원내대표 등의 경우만 봐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이들을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들처럼 처음부터 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했더라면 결코 자살 같은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탄핵 소추안을 인용하던 날 항간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비상상황에서 자결(自決) 할지도 모르니 만반의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소문이 확 퍼져 있었다. 
 
이재수 전 사령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2013년 제41대 국군기무사령관에 발탁됐다. 그는 박지만 EG그룹 회장과 중앙고·육사 37기 동기로 죽마고우(竹馬故友)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7년 그를 육사에 보내면서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특명을 내려 동기생 중 누구로 하여금 박지만을 곁에서 잘 도와주도록 했다고 한다. 이 때 엄선된 사람이 바로 이재수 생도였다. 그의 사령관 보임은 일찍부터 예견된 터였고, 머지않아 대장 진급도 무난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뒤에서 조종하는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의 집요한 견제를 이기지 못해 1년 만에 기무사령관 자리에서 한직인 제2작전사 부사령관으로 밀려나야 했다. 알고 보면 그를 기무사령관 자리에 올려놓은 것은 박근혜 대통령보다는 청와대와 군 수뇌부 핵심 참모들의 추천에 의해서였다는 게 군내 중론이다. 그렇다고 추천을 받아 올라 온 후보를 대통령이 굳이 반대할 이유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재수 기무사령관은 재임 중 박근혜 대통령과 공식적인 독대는 물론 비공식적인 면담 기회조차도 갖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와 이재수는 고교시절부터 형제자매 같은 사이였지만 막상 군 최고 통수권자가 된 박근혜 대통령은 이재수 기무사령관을 가까이 부르지 않았다. 소문과는 달리 냉랭한 관계였다는 것이다.

그 배경엔 비선 실세 최순실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되는 대목이다. 최순실은 박지만의 절친인 이재수 장군 보다는 사관학교 1년 후배로 자신과 가까운 조현천(육사38기) 장군을 후임으로 앉히려고 갖은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탄핵을 전후로 기무사가 유사시 계엄을 선포하는 등 일련의 비상 대비계획을 수립하면서 조현천 사령관은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까지 했던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두 사람의 관계라면 누가 봐도 박근혜-조현천 보다 박근혜-이재수의 인연이 훨씬 오래됐고 돈독할 것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비극의 씨앗은 바로 이런 데서 싹트고 있었는지 모른다. 지난해 기무사 계엄문건 수사가 본격 시작되자 재빠르게 미국으로 출국, 도피중인 조현천 전 사령관은 현재 여권도 말소된 상태에서 인터폴의 수배를 받으며 해외를 떠도는 신세가 됐다. 

만약 조현천 전 사령관이 인천공항에 모습을 나타낸다면 검찰은 그를 현장에서 체포할 것이기 때문에 그는 마음 편히 귀국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기무사는 42대 사령관인 그를 끝으로 27년의 역사를 뒤로 한 채 사라졌고, 지난 9월부터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라는 전혀 새로운 보안 및 방첩기관으로 재탄생했다. 

중앙고 시절 때부터 박근혜를 자연스럽게 ‘누나’라고 불렀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대통령의 가족과 일찍부터 너무 가까웠던 것이 오히려 재앙을 불러왔다. 육사 37기 동기생 중에서도 인사를 주특기로 선두를 달리던 그였다. 육본 인사참모부장과 인사사령관을 거처 41대 기무사령관에 오를 때만 해도 대장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지만, 대장 진급은커녕 한직에 밀려나 있던 중 끝내 옷을 벗어야 했다. 

그 후 3년 만에 그는 세월호 관련 민간인 사찰의혹으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지난 12월 7일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 두 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포토라인에 섰을 때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것을 안고 가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그는 과연 안일한 불의의 길 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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