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젠더 이슈’가 온라인을 점령했다. 아이돌이든 스포츠든 게임이든, 20대 남성이 가질 법한 취미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들에서는 어느새 젠더 이슈에 대한 글을 보지 않고선 어떤 이야기도 나눌 수 없게 됐다. 소란을 싫어하는 운영자들은 서둘러 관련 논의를 금지시켰고 그렇지 않은 곳은 정부 정책에 대한 성토장으로 변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작년 12월 17일 발표한 국정수행 지지도 조사(95% 신뢰수준, 표본오차±2.0%p)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29.4%로 모든 연령별 남녀 중 가장 낮았다. ‘청년층의 보수화’가 현실화된 것은 아니다. 20대 여성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63.5%로 모든 연령별 남녀 중 가장 높았으며 30대 인구의 지지율도 여전히 높았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유독 20대 남성의 국정지지율만 추락한 현상에 대해 4가지 설명을 내놨다. 젠더 이슈와 양심적 병역거부, 일자리 문제, 소통 부족이 그것이다. 소통 부족은 앞서 언급된 세 가지 이슈에 대해 20대 남성층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지 못했다는 의미며, 일자리 문제는 남녀 모두에게 해당하는 사항이다. 또한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병역제도 개편 이슈 역시 ‘남자만 군대를 간다’는 상대적 박탈감과 연결돼있다. 결국 표창원 의원이 말한 ‘20대 남성의 지지층 이탈의 4가지 원인’은 모두 젠더 이슈로 요약된다.

국정지지율 하락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은 어떨까. 10일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20대 남녀의 젠더 갈등을 ‘사회가 바뀌는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이라고 표현했으며, ‘그런 갈등을 겪으면서 사회가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 답변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성장통’이다. 또는 테제와 안티테제가 부딪히며 사회가 발전한다는 정‧반‧합 이론에 따른 답변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한편 논란의 중심에 선 “(젠더 갈등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아마도 역사 속에서 갈등을 통해 사회가 발전한 사례가 많았다는 취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 말처럼,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는 필연적으로 혼란이 따른다. 사회적 갈등은 대개 기득권이 독점했던 것을 사회 전체에 분배하기 시작하면서 촉발된다. 그렇다면 젠더 갈등에는 정말 사회를 성숙한 방향으로 이끌 힘이 있을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30년쯤 뒤에는 2010년대 후반을 한국 양성평등 논담의 이정표를 세운 시기로 평가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삶이 ‘희생’ 또는 ‘낀 세대’라는 이름으로 요약될 것이란 불안감은 보상받을 수 없다. 이것은 떨어진 지지율에 대한 반성이 “정부가 희망을 주냐 못 주냐의 관점 차이”에서 그치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한 가지 더 있다. 젠더 갈등을 난민‧소수자 문제에 빗댄 비유가 과연 적절한지 여부다. 정의가 불분명한 ‘소수자’ 대신 난민을 기준으로 삼아보자. 난민인권센터 자료에 따르면 1994년부터 2017년까지 한국에 접수된 난민 신청은 모두 3만2,733건이며 이 중 9,942건이 2017년 한 해 접수됐다. 2017년의 한국 인구가 5,177만명이니 한국에 발 디디길 원했던 난민 한 명이 필요로 했던 ‘양보’는 국민 5,207명이 나눌 수 있었던 셈이다. 한편 2018년 기준 20대 남성 인구는 320만명으로, 이들 한 명의 고통은 국민 15.2명이 나눠야 한다. 젠더 갈등이 난민 인정이나 양심적 병역거부, 성소수자 문제처럼 누군가의 양보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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