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방지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 15일 공표됐다. 일명 '양진호법'으로 불리는 개정안은 6개월 후인 오는 7월 16일부터 시행된다. /뉴시스
직장 내 괴롭힘 방지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 15일 공표됐다. 일명 '양진호법'으로 불리는 개정안은 6개월 후인 오는 7월 16일부터 시행된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야당 의원들의 발목 잡기로 국회에 계류 중이던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 15일 공표됐다. 당초 해당 법안은 ‘양진호 사태’가 불거지기 전에 발의됐지만,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반대로 통과가 안됐다. 하지만 이를 두고 국민적 분노가 거세지면서 버티기로 일관하던 야당도 결국 꼬리를 내렸다. 개정안은 폭행 등의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 고통도 ‘괴롭힘’에 포함시킴으로써 실효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다.  

◇ 여야 정쟁 대상됐던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괴롭힘이 뭐에요? 매우 주관적인 거 아니에요?”

지난해 9월 법사위에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상정되자 자유한국당 이완영 의원과 장제원 의원이 제기한 지적이다. 두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이 알려지자 전형적인 ‘발목잡기’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개정안은 괴롭힘의 정의에 대해 비교적 명확히 명시했다. 오히려 해외의 유사 법안보다 더 구체적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특히 사내 괴롭힘 문제는 어제 오늘 일도, 간단히 치부할 문제도 아니었다. 따돌림, 차별, 폭언·폭행, 과로자살 등 다양한 사내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피해자들이 매년 속출했다. 특히 사내 성추행 및 성희롱 피해자 대부분이 따돌림까지 당하는 문제가 대두되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다.

봇물이 터진 것은 ‘양진호 사태’가 발생하고서다. 지난해 10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전직 직원 폭행 사건이 터지면서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라는 사실도 알려졌다.

당시 직장갑질119는 “개정안은 징계 대상 행위의 판단 근거가 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규정됐다”면서 “하루 빨리 ‘양진호 방지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오늘도 직장인들은 상사의 ‘갑질’로 만신창이가 되고 있는데 국회가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한 달간 신고 받은 직장 내 괴롭힘 사례는 225건이나 됐다. 이중 ‘양진호 갑질’로 불릴 만한 사례도 23건에 달했다.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가 지난해 11월 공개한 ‘2018 감정노동자 보호와 직장 괴롭힘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1,087명)의 27.8%(300명)은 ‘직장 괴롭힘 피해자’로 분류됐다. 피해자의 기준은 ‘주 1회 이상 빈도로 6개월 이상 경험’으로 설정됐다.

주된 직장 내 괴롭힘은 ▲나에 대한 가십과 루머 퍼뜨림 ▲인격·태도·사생활에 대해 모욕 ▲의견 무시당함(차별) ▲병가·휴가·여비교통비 등 신청 못하도록 압력 등이다.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는 “유럽 등 국제 연구에서 나타나는 피해율이 10% 초반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은 약 3배를 넘는 수치”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19일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직장내 갑질금지법 국회 조속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직장내에서 괴롭힘 피해자들이 그림을 그린 종이봉투를 쓰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10월 19일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직장내 갑질금지법 국회 조속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직장내에서 괴롭힘 피해자들이 그림을 그린 종이봉투를 쓰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 개정안 7월 16일부터 시행

양진호 회장의 엽기행각은 계속 드러났지만 정작 양 회장의 이 같은 행위를 신고한 직원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5년간 고용노동부에 양 회장의 각종 기행이 접수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는 당시만 해도 직장 내 괴롭힘 등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법안이 시행될 시 생닭을 화살로 쏴 죽이라거나 염색 강요, 회식 중 화장실을 못 가게 하는 등의 행위는 모두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와 관련한 내용은 6개월이 경과한 오는 7월 16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라며 “사업장이 개정법 시행을 준비하는 데 참고할 수 있도록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 및 표준 취업규칙을 이르면 이달 중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선 개정안은 직장 내 괴롭힘의 개념을 법률에 명시했다.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가 법률에서 정의한 직장 내 괴롭힘이다.

처벌 대상자를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를 포함시킴으로써 같은 근로자 간의 괴롭힘도 처벌할 수 있게 했다. 정신적 고통 또한 개정안의 핵심이다. 직원 간의 차별 등 학대 행위와 따돌림, 악성 소문 유포, 과중한 업무 부과 등도 신고할 수 있다.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 사항 등을 취업규칙에 기재하고, 사업장 관할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신고해야 한다. 또한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고, 사용자는 신고를 받을 시 지체 없는 조사와 행위자에 대한 징계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조사 기간 동안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도 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 한 근무 장소 변경 및 유급휴가 등의 조치를 지시할 수 있다. 아울러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불이익한 처우를 할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한편 제도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 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직장갑질119는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구체화해야 논란도 줄고 직장 내 괴롭힘도 사라질 수 있다”면서 “폭행, 폭언, 모욕, 협박, 무시, 따돌림, 소문, 반성 강요, 책임 전가, 차별, 사적 지시, 장기자랑, 태움, 감시 등으로 나열해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고용노동부 또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기 전에 지청마다 전담 부서를 두고  직장갑질 예방을 위한 근로감독을 집중적으로 벌여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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