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오른쪽) 검사가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태근 전 검사장의 징역 2년 선고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미투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오른쪽) 검사가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태근 전 검사장의 징역 2년 선고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가해자도 놀라고 피해자도 놀랐다. 서지현 검사에게 인사보복을 한 혐의(직권남용)로 기소된 안태근 전 검사장이 실형을 선고 받았다. 검찰의 구형도 2년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재판부가 상당히 엄중한 책임을 물었다는 평이다.

안 전 검사 측은 구속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서지현 검사도 마찬가지였다. 서 검사는 “원했던 것은 진실과 정의였다. 그 당연한 일이 이렇게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면서 “이 판결이 향후에 있을 혹은 지금도 고통 받고 있을 피해자분들에게 위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재판부 “자신의 비위 덮으려고 인사보복”

지난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이상주 부장판사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안 전 검사장에 대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검찰국장의 업무를 남용해 인사담당검사로 하여금 원칙과 기준에 반해 서 검사를 통영지청으로 전보하는 인사를 작성하게 했다”면서 “검사의 임용 전보 규칙에 관한 사항은 검찰국장과 검찰과장, 검사 인사담당 검사가 준수해야할 기준이므로 이를 작성함에 있어서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서 검사가 통영지청으로 배치된 부분 역시 관련 인사 기준이 생긴 2010년 이래 서 검사처럼 배치된 사례가 없었다”면서 “실제로 검찰과 근무 경험이 있는 검사가 이례적인 인사라고 진술한 점을 고려해 부당인사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안태근 전 검사장이 지난 23일 서지현 검사에 대한 인사보복(직권남용)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뉴시스
안태근 전 검사장이 지난 23일 서지현 검사에 대한 인사보복(직권남용)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뉴시스

안 전 검사장은 직권남용 혐의만 적용됐지만 재판부는 성추행 관련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당시 피고인이 장관을 수행해 저녁식사를 마친 후 문상이 예정된 상황에서 기억이 잃을 정도로 만취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장관 수행비서도 안 전 검사장이 몸을 가누지 못하는 걸 볼 수 없었다고 진술한 점 등 피고인이 장례식장에서 서 검사를 강제추행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봤다.

이어 “자신의 성추행 비위를 덮으려고 인사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자리에서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줬고, 이로 인해 피해자는 치유하기 어려운 정신적 상처를 받았다”면서 “공정한 검찰권 행사 토대가 되는 국민과 검찰 구성원의 기대를 저버려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검찰도 지난 결심공판에서 “검찰조직 내 성범죄 피해 검사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공고히 하고자 인사권을 남용한 것은 중대한 사건”이라며 징역 2년을 구형한 바 있다.

◇ 안태근도 서지현도 “판결 결과 의외”

안 전 검사장은 선고 직후 재판부를 향해 당혹스럽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제가 알지도 못하는 검사가 인사 보복을 당했다는데, 당시 담당 검사에게 그런 검사가 있었고 인사 대상이 되는지 물어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며 “그동안 재판에서 고생 많이 하셨는데 저로서는 너무 의외고 뜻밖이다”라고 말했다.

재판 결과가 의외라는 반응은 서지현 검사 측도 마찬가지였다. 검찰의 수사 기록에 너무나 많은 거짓말들이 기록돼 있었다는 게 그 이유다. 서 검사는 “검사와 수사관들의 허위진술을 보고 굉장히 처참한 기분이었다”면서 “오히려 그렇게 편향되고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이 재판부로 하여금 유죄심증을 갖게 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24일 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회를 밝히고 있는 서지현 검사. /뉴시스
24일 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회를 밝히고 있는 서지현 검사. /뉴시스

24일 서지현 검사는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이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서 검사의 법률대리를 맡았던 서기호 변호사도 참석했다.

서 검사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검사로서, 피해자로서 반드시 진실은 밝혀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안도감을 느낀다”면서 “이 판결이 앞으로 가해자들에게 엄중한 경고가 되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용기와 위안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재판에서 선서를 하고 증언을 하는 것과 달리, 검찰 조사에서 허위진술을 하는 것은 법적으로 처벌 대상이 아니다. 서 검사 측은 검찰 수사 기록을 열람한 뒤 동료 검찰들의 허위진술을 반박하는 피해자 진술서를 따로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서 검사는 “다른 피해자들도 형사소송법에 규정돼 있는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받고, 범죄의 진실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현재 휴직 상태인 서 검사는 건강을 회복한 뒤 조만간 검찰에 복귀할 계획을 밝혔다.

한편 안 전 검사장은 2010년 10월 한 장례식장에서 서 검사를 강제추행하고 이를 문제 삼는 서 검사를 제압하기 위해 인사보복을 단행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안 전 검사장은 이외에도 ‘돈봉투 만찬’ 논란이 불거지면서 면직처분을 당했지만 소송을 제기해 검찰에 복귀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서 검사 사건으로 법정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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