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전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우전 국방홍보원장
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전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우
전 국방홍보원장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해를 넘기고도 타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초기부터 한국 같은 동맹국들에게 ‘안보무임승차론’을 들며 턱없이 높은 금액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측은 지난해 3월부터 2017년 기준치의 두 배 정도를 제시하다가 나중에 조금 양보해 준 것처럼 12억달러 선을 마지노선인양 제시했다. 12억달러면 우리 돈으로 1조3,554억원 정도의 엄청난 규모다. 이는 우리가 부담해 왔던 9,602억원(8억3,000만 달러, 2017년 기준) 보다 3,400억원이 인상된 금액으로, 지금까지 인상폭 중 최고치인 2,583억원 보다 837억원이나 많다.

한미 양국은 대략 5년 주기로 분담금을 결정해 왔는데, 평균 인상액은 1,200억원 정도였다. 가장 많이 인상한 것은 2001년 4,882억원에서 2004년 7,465억원으로 3년 동안 2,583억원이나 인상했을 때다. 반면, 인상폭이 가장 적었던 때는 2004년부터 2009년까지 5년간으로 인상액이 135억원에 불과했다. 

방위비 분담금은 1991년 채결된 한미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Special Measures Agreement)에 근거를 두고 있다. 주한미군 주둔경비 중 일부를 우리가 지원해 주는 것인데, 당시만 해도 1억5,000만달러 정도였던 것이 2018년에는 약 8억3,000만달러까지 늘어나게 됐다. 여기에는 주한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의 인건비, 미군기지내 각종 건설비용과 군수지원비 등이 포함돼 있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직접비 말고도 ▲토지임대료 면제 ▲제세·공공요금 감면 ▲도로·항만·공항 이용료 면제 등 간접비만도 9,589억원을 지원해 주고 있다. 일본이 지원하고 있는 금액(1만5,560억원)의 61%가 넘는 규모다. 특히 주일미군의 70% 이상이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데, 우리와 달리 미군은 점유하고 있는 기지에 대한 임대료를 토지 소유주에게 지불하고 있다. 

우리는 6.25 이후 지금까지 한국군에 대한 작전 지휘권은 물론 미군이 점유하고 있는 모든 기지를 무상으로 제공해 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주한미군은 한국 내 모든 사회간접자본 시설 이용료와 관련 세금까지도 자동으로 면제받는 특혜를 받아왔다. 세계에서 유일한 한국군지원단(일명 카투사, KATUSA)의 존재도 금액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막중한 역할과 임무를 띠고 있어 미군도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연간 9,300억원의 방위비 분담금 말고도 주한미군에 4조5,200억원의 직·간접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2015년 기준 우리 정부가 주한미군에 지원한 직·간접 비용은 총 5조4,564억원 규모로, 일본(6조7,758억원)의 80% 수준에 이른다. 

주한미군은 2만8,500여명인데 비해 주일미군은 6만2,000여명으로 2배 이상 많다. 이 점을 감안하면 우리가 훨씬 많은 지원금을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어디 그 뿐인가. 우리 정부는 용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10조원 이상의 건설비용(90% 이상)을 들여 세계최대 규모의 해외 미군 기지를 조성해줬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곳을 방문하고는 놀랐다고 한다.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요구하는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전략무기의 한반도 전개 비용과 ▲한미 연합훈련 시 미국 측의 소요비용 등이다. B1-B 같은 전략무기가 괌에서 이륙해 한반도까지 1회 전개하는 데만 수십억원, 항공모함 강습단은 수백억원이 각각 소요된다면서 그 비용을 이제는 한국이 부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타당성이 없다’며 증액보다는 오히려 ‘삭감’하는 편이 옳다고 주장한다.      

한국국방개혁연구소의 권영근 소장도 한미동맹을 통해 한국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줄어든 반면, 미국의 그것은 꾸준히 증대돼 왔으므로 방위비 분담금은 오히려 삭감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고 말한다.(동아시아재단발행, 정책논쟁 2018.11.20.) 

권영근 소장은 한미동맹을 통해 얻는 이득이 어디가 더 큰가를 따져 본 다음 방위비 분담금 규모를 결정해야 하며, 주한미군은 한국의 안보보다는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에서 추진돼 왔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한국을 ‘사활적 이익’(Vital Interest) 권역으로 평가해 왔다.

2017년 한반도 사드배치 문제가 한중 간 핫이슈로 등장했을 때도 메티스 당시 미 국방장관은 “사드는 한국을 위해 배치한 게 아니라 우리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배치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권 소장은 전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발사 시 한국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단, 중국의 핵미사일 발사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국내 의견도 다양한 편이다. 정통 외교관료 출신인 공노명 전 외무장관은 우리의 최대 우방인 미국과 그런 문제로 다툴 때가 아니며, 미국 측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체로 보수를 자처하는 정당이나 언론, 지식인 그룹에서 이에 동의하지만, 앞서 지적한 시민단체 등 진보 그룹에서는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제3의 견해도 없지 않다. 예컨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에 이어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종전선언 등을 눈앞에 둔 중차대한 시기에 분담금에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소탐대실하지 말고, 대승적인 차원에서 통 크게 미국 측의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이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반드시 챙겨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미국 측 요구액이 많기는 하지만 더 멀리, 더 큰 것을 내다보고 대국적인 관점에서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상 최대의 방위비 분담금을 건네주는 대신 우리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반대급부는 못지않게 다양할 것이다. 정치·외교 분야는 물론 군사·경제·문화·통상·역사 분야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한국을 도와줄 수 있는 영역은 실로 광범위하다.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국제사회에서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선택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그런 반대급부를 지금처럼 필요한 시점에 제시할 수 있도록 평소에 주도면밀하게 준비해 두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서든, 남북경협 활성화를 위해서든 어차피 내야 할 돈이라면 흔쾌히 지원해 주자. 그 대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그 대가로 챙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점이다. 우리가 통 크게 준만큼 통 크게 받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