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에 앞장섰던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 28일 별세했다. 사진은 제1304차 수요집회에서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고 있는 김복동 할머니 모습. /뉴시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 해결에 앞장섰던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 28일 별세했다. 사진은 제1304차 수요집회에서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고 있는 김복동 할머니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 28일 별세했다. 향년 93세다. 김 할머니는 지난해 9월 암 투병 중에도 서울 종로구 외교통상부 청사 앞에서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이어갔다.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는 김복동 할머니가 이날 오후 10시 41분 별세했다고 밝혔다.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고, 장례식은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시민장’으로 치른다.
 
윤미향 정의연 대표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일반 병실에 있던 김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아 마지막 곁을 지켰다.

김복동 할머니의 일대기. /시사위크
김복동 할머니의 일대기. /시사위크

1926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출생한 김 할머니는 만 14세이던 1940년 일본군 위안부로 연행됐다. 이후 중국과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에 끌려 다니며 성노예 피해를 당했다.

김 할머니는 1992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공개하고 본격적인 인권운동의 길을 걸었다. 같은 해 8월엔 제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에서 위안부 피해를 증언하기도 했다.

1993년 오스트리아 빈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해 같은 증언을 한 김 할머니는 본격적으로 세계 곳곳을 다니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고발했다.

2012년부터는 유엔인권이사회와 미국, 영국, 독일, 노르웨이, 일본 등을 방문하며 전쟁 없는 세상과 전시 성폭력 피해 재발을 막기 위한 해외 캠페인을 벌였다. 또 그해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과 전시 성폭력 피해를 지원하기 위한 ‘나비기금’을 설립했다.

김 할머니는 나비기금 설립 당시 기자회견에서 “일본대사관 앞에서 우리에게 명예와 인권을 회복시키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지금 세계 각지에서 우리처럼 전시 성폭력 피해를 당하는 여성들이 있다”면서 “그 여성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분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기부 활동도 활발히 했다. 2015년 6월 전쟁·무력분쟁지역 아이들 장학금으로 5천만원을 기부한 김 할머니는 2017년 7월 재일 조선 고등학교 학생 2명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같은해 8월에는 사후 남은 모든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약정을 맺고, 11월 포항지진 피해자를 돕기 위해 1,000만원 후원했다. 여성인권상금 5,000만원도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김복동 평화상’ 제정에 사용했다.

지난해에도 재일조선학교 지원을 위해 5,000만원을 기부하고, 올해 1월에는 ‘바른 의인상’ 상금 500만원을 재일조선학교에 후원했다.

2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가 마련됐다. /뉴시스
2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가 마련됐다. /뉴시스

정의연은 “김 할머니는 수많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징이었다”면서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제대로 된 배상을 요구해온 인권 평화 활동가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복동 할머니의 활동은 국제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면서 “나아가 국경을 넘어서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초국적인 연대를 통해 평화의 세상을 만들고, 전시 성폭력 피해의 재발을 막는 데 새로운 희망이 됐다”고 밝혔다.

김 할머니가 별세한 날 오전에도 또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 모 할머니가 향년 94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이 할머니는 17세가 되던 1942년 직장인 방직 공장에서 퇴근하던 길에 납치돼 일본으로 끌려갔다. 이후 만주로 끌려가 일본군에게 인권을 유린당했다. 이 할머니는 어느 날부터 일본군이 오지 않아 해방된 것을 알았고, 밀수선인 소금 배를 타고 가까스로 귀국했다.

한편 김 할머니와 이 할머니의 별세로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는 23명으로 줄었다. 김 할머니의 조문은 29일 오전 11시부터 가능하다. 발인은 2월 1일이다. 이 할머니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비공개 장례를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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