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여성폭력근절특별위원회 주최로 열린 '미투1년 지금까지의 변화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 좌담회에 참석하여 발언하고 있다. / 뉴시스
서지현 검사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여성폭력근절특별위원회 주최로 열린 '미투1년 지금까지의 변화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 좌담회에 참석하여 발언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성폭력 피해자들의 입을 열 수 없게 만든 것이 그들의 두려움이나 나약함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들을 ‘꽃뱀’ ‘창녀’로 부르며 의심하고 손가락질 해온 이 공동체 때문이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전 성범죄는 결코 개인의 범죄가 아니라 집단의 범죄였고, 약자와 여성을 상대로 한 일종의 홀로코스트였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누군가 정의와 진실을 말하기 위해 모든 것을 불살라야 하는 이 비정상적인 시대는 끝나야 합니다. 공포와 수치로 피해자들의 입을 틀어막아온 이 잔인한 공동체는 이젠 바뀌어야 합니다.”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한 지 1년이 지났다. 서 검사는 지난해 1월 29일 자신이 겪었던 검찰 내부의 성추행과 이로 인한 인사보복을 고발해 국내에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을 촉발시켰다.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검사장은 징역 2년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다.

더불어민주당 여성폭력근절특별위원회(위원장 정춘숙)는 서 검사의 고발 이후 1년이 지난 29일 미투운동의 의미와 남은 과제를 돌아보는 좌담회를 기획했다. 예술·문화계 성폭력, ‘스쿨 미투’, 스포츠계 성폭력 등 미투 이후 다른 분야에서 성폭력 문제를 제기해온 직·간접적 당사자들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서 검사는 “전 개인적으로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었다. 그저 검사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 가해자는 처벌받고 피해자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을 말한 대가로 변호사도 검사도 하지 못하고 집 밖에 나오지 못하는 삶을 살더라도 후배들이 이런 일을 겪지 않을 수만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며 “진실을 밝히는 길은 멀고 험했고 생명을 위협하는 고통이었지만, 검사로서 피해자로서 진실은 밝혀지고 만다는 것을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서 검사는 “피해자를 괴롭히는 것은 피해자다움에 대한 요구였다. 이 사회는 지나치게 가해자, 범죄자에게 관대하고 피해자에겐 괴롭고 우울하고 죽을듯한 고통 속에 있는 모습만 강요해왔다”며 “‘피해자다움’따위는 없다. 피해자야말로 누구보다 행복해져야 하는 존재다. 제발 가해자, 범죄자들이야말로 ‘가해자다움’ ‘범죄자다움’을 장착했으면 한다”고도 덧붙였다.

◇ “사회·제도적 변화, 아직 멀었다”

검찰 내 성폭력 폭로 이후 각계 분야에서 미투운동은 계속되고 있지만, 1년 전 서 검사가 겪어야 했던 난관은 여전한 상황이다. 청소년들의 학내 성폭력 고발인 ‘스쿨미투’ 관련 ‘여학생에겐 학교가 없다’ 집회를 조직했던 양지혜 씨는 “고발자들이 (피해 사실을) 공론화했을 때 허위제보로 취급한다거나, 오히려 고발자의 사과를 요청하는 일이 빈번하다. 또 가해사실이 교육청이나 경찰수사로 이관되지 못하는 등의 과정에서 고발자 스스로가 무력감을 느껴 고발을 포기하는 일도 많았다. 용기를 내서 진행된 스쿨미투가 사회적으로나, 학교 내에서 지지를 받지 못해 유실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 역시 성폭력 피해자를 둘러싼 사회·제도적인 한계를 짚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피해자를 비난하고 의심하는 것을 넘어서 가해행위자들의 반격은 너무 심각한 상황이다. 상담소에 몇 백만원의 후원금이 들어오는데, 좋은 의미의 NGO 후원금이 아니다. 피해자와 합의가 안 되니까 상담소에 돈을 기부해서 기부금 영수증을 법원에 제출해서 (처벌) 감경 요인으로 작동하는 것을 보아왔다”며 “피해자들이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해자의 처벌이) 감경되는 것까지 조직적으로 수없이 많은 폐해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 소장은 “저는 피해자들이 ‘차라리 나 혼자 삭힐걸’ ‘괜히 고소해서 이런 고통을 받는구나’라는 말씀을 하는 게 가장 두렵다”며 “이것은 결국 우리 사회가 대답해야 될 문제다. 사법부에서는 객관성, 합리성이라는 게 지금껏 남성중심사회에서 가해자 중심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고 피해자 목소리가 반영된, 제대로 된 객관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이호중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투 이후 국회에서 봇물 터지듯 법안이 발의됐지만, 의미 있는 성과는 없었다는 점을 비판했다.

이 교수는 “성폭력과 관련해 미투 운동 여파로 발의된 입법은 145건 이상이라고 한다. 저는 이렇게 많은 게 결코 자랑거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슷한 내용들이 대부분이고, 그냥 대중에게 관심 받고 어필하기 위해 일부 국회의원들은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는 이상한 입법을 한 경우도 있었다”며 “무엇보다 이런 입법을 관철시키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의원 여러분께 묻고 싶다. 중요한 것은 실천을 성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것을 타파하고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낼 것인지 고민을 해주길 당부드린다”고 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 형량을 강화시키는 입법에 대해서는 “국회의원들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입법이 형량을 강화하는 것인데, 가장 효과를 담보하지 못하는 입법이 형량 강화다”라며 “그만큼 ‘보여주기’식 입법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형량 강화를 이유로 해서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우를 범할 가능성도 있어 굉장히 위험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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