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출발'이 중요하다. 새해 첫날이 되면 누구나 하나쯤은 한해동안 반드시 이뤄야 할 것들을 정리하고 계획을 세운 뒤 각오를 다진다. 대한민국 경제를 움직이는 재계 총수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세운 '신년 계획'에 따라 그룹의 명운이 갈릴 수도 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고심하고 신중한 결정을 내린다. 특히 올해는 박근혜 정부 탄생과 더불어 '경제민주화'의 바람이 거센 상황.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되는 가운데 재계 총수들의 '신년화두'는 무엇인지, 그들이 내건 ‘계사년(癸巳年) 경영’ 해법을 <시사위크>에서 살펴봤다.  
 

▲ 삼성은 2일 오전 신라호텔에서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회장단, 사장단, 임원진이 모여 2013년도 신라하례식을 개최했다.(왼쪽부터) 박근희 삼성생명 부회장, 정연주 삼성물산 부회장, 강호문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생명 회장, 이건희 회장, 최지성 미래전략실 부회장,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올해는 그 어느해보다 장기적 경제불황이 예상된다. 보통 불황이 장기화 될 경우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고 소극적인 경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올해 국내 대부분의 재벌 총수들은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전략으로 '직공법'을 택했다. 과감한 투자와 전략으로 경영난을 탈피하겠다는 것이다.

재계 서열 1위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그룹 신년하례식에서 ‘약육강식’ 논리를 경영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이날 “세계 경제는 올해에도 저성장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며 “(2013년도에) 삼성의 앞길도 순탄치 않으며 험난하고 버거운 싸움이 계속될 것이다. 불황기에는 기업 경쟁력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 강한 자만이 살아남아 시장을 지켜 가게 된다. 삼성의 앞날은 1등 제품과 서비스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에 그는 “이제는 단순한 품질 경쟁을 넘어 인재 확보와 기술 개발, 특허 분쟁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 걸쳐 전 세계 기업들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전개되고 있다”며 “지난 성공은 잊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도전하고 또 도전해 새로운 성장의 길을 개척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며 더 멀리 보면서 변화의 흐름을 앞서 읽고 삼성의 미래를 책임질 신사업을 찾아내야 한다”고 불황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다.

이 회장은 특히 위기 돌파를 위한 키워드로 ‘경영 현지화’와 ‘인재 육성’을 꼽았다. 각 나라별로 인재를 키우고 현지의 문화를 이해하며, 지역사회 발전에 적극 참여해 제 2, 제 3의 삼성을 건설하는 경영의 현지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우수한 인재를 뽑고 각자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도 시장 환경의 어려움을 질적인 성장과 경쟁력 확보로 극복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열린 2013년 현대차그룹 시무식에서 가진 신년사를 통해 “2013년은 유럽재정 위기와 글로벌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국내외 시장환경이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며 “올해 질적인 성장을 통해 내실을 더욱 강화하고 미래를 위한 경쟁력 확보에 집중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 그룹의 경영방침을 ‘품질을 통한 브랜드 혁신’으로 제시하고, 친환경차 및 전자제어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 확대와 우수 인재 집중 육성에 주력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올해 신체제로 ‘따로 또 같이 3.0’을 내세운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그룹의 지원자 역할에 머물면서 타 그룹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를 띌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을 대신해 SK그룹의 실질적 의사결정권을 가진 김창근 수펙스(SUPEX) 추구협의회 의장은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신년교례회에서 “따로 또 같이의 ‘따로(계열사)’의 수준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며 “매출・이익과 같은 경영성과를 개선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재양성도 해 궁극적으로 경영 역량이 발전하고 기업가치가 지속적으로 향상되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LG그룹은 2013년 화두로 ‘시장선도’와 ‘철저한 실행’을 꼽았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대강당에서 열린 2013년 새해인사모임에서 “창립이래 60여년 동안 시장선도와 맥을 같이한 LG의 경영철학, 글로벌시장에서 앞서 나간 경험과 무한한 잠재력, 그리고 반드시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와 자신감을 더해 시장선도를 철저하게 실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구본무 LG그룹 회장.

4대그룹 회장은 이와 더불어 새정부 출범에 따른 새로운 경제화두인 '경제민주화'에도 적극 동참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난해 신년하례식에 이어 올해에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으며, 정몽구 현대차 회장 또한 국민 행복과 국가 발전을 위해 ‘모범적인 기업’으로서의 역할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임직원에 주문했다.

최태원 SK 회장 역시 “양극화와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적인 방법은 바로 사회적기업”이라며 “경영자로서 그간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잘 활용해 사회적 기업이 지금의 영리기업처럼 시장을 만들어 평가 받고, 더 나은 사업모델을 찾아가는 건전한 생태계를 만드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구본무 LG 회장은 임직원에게 ‘솔선수범’을, 기업 정책에는 ‘동반성장’을 키워드로 꼽아 사회적 책무를 주문했다.

하지만 외부에서는 이 같은 재벌 총수들의 '일성'이 매년 반복되는 '단순 메시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내비치고 있다. '사회적 책임'과 '상생'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론 골목상권 침해 및 일감몰아주기 등을 통해 결국 "제 배만 불렸다"는 지적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계사년 새해 재벌총수의 메시지가 말처럼 실천에도 옮겨질 수 있을까. 이들의 향후 행보를 지켜보는 세간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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