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니스트
하도겸 칼럼니스트

천상천하. 하늘아래 땅위가 이 지구를 말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사는 천하에 효자는 없다. 아니, 있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아무리 효도를 잘 한다고 해도, 우리에게 부모님께서 쏟아 부어 주신 사랑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될 정도로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식에게 하는 것에 1/100이라도 부모님께 정성을 다해도 우린 너무 쉽게 ‘효자’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어머니께서 임종 직전에 호흡이 거칠어 지셨다. 턱밑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복받쳐서 눈물이 하염없이 났다. 그런 경황 중에도 정신을 차려 다행스럽게 "그만 아퍼 하시고 편히 가세요. 다음에 꼭 또 뵈요"라며 간절하게 기도했다.

정작 임종을 하시니 눈앞이 막막해서 억장이 무너졌다. 하늘인지 무너지는 고통이라는 천붕지통(天崩之痛)이란 말이 실감된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10년이 다가오니 아픔 보다는 아쉬움과 그리움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효도할 수 있을 때는 안하거나 다음으로 미루고 나서는, 정작 효도할 기회나 시간도 안주시고 돌아가시니 원망스럽기까지 하니 스스로 돌아봐도 마음이 참으로 못됐다. 불효자가 맞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를 떠올리면 가끔 마음이 아파 눈물이 흐른다.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는 아들이 죽자 너무 상심하여 실명까지 했다고 한다. 자식이 먼저 죽었다면 부모님을 잃은 슬픔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아플 것 같다. 어머니도 생전에 막내딸을 여의셨다.

상냥한 누나여서 참 친하게 남매의 정을 돈독하게 하며 지냈는데 덧없이 세상을 버리니 동생으로서 안타깝기만 했다. 어머니는 울다가 지쳐 쓰러져 상족들 방으로 모셨는데도 소리없이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때는 그런 아픔을 전혀 알지도 못하고 실감을 못했으니 그저 죄송할 따름이다.

직장에 다니는 조카가 간밤에 엄마(내겐 누나)를 보는 꿈을 꾸고 일어나서 계속 눈물이 나서 멈추질 않는다고 어떻게 해야 하냐고 꼭두새벽에 전화가 온다. 꿈속에서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엄마한테 달려가 껴안았는데 바로 꿈에서 깼다고 한다.

사진제공=하도겸 칼럼니스트
사진제공=하도겸 칼럼니스트

감정은 소중하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감정 장애를 느낀다. 어떤 느낌인지 알고 편하게 울 수 있는 것은 참으로 건강한 마음이다. 울 수 있을 때 한 없이 울면서 그 감정을 행복하게 누리라고 했다. 그리고 울음이 그치면 돌아가신 어머니의 명복을 빌며 매일 한가지 이상 선행을 한번 해보라고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제 나이도 불혹도 한참 지나 5학년이 되었다. 어머니를 만날 날이 그리 멀지 않다.

See you again!

이 글을 얼마전 하염없이 울어준 사랑하는 조카에게 보낸다. 사진은 네팔 카투만두 한 사원에 계신 자비로운 부처님이다. 오늘 하루 돌아가신 어머니의 미소가 그리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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