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67회 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뉴시스
1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367회 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냐’는 발언을 하는 것을 보고 정치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죄다. 대한민국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죄다. 당에서는 즉각 법률적인 검토를 해서 국회 윤리위원회에 (나 원내대표를) 회부해야 한다.”

12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 이후 더불어민주당이 발칵 뒤집혔다.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 직후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나 원내대표의 일부 발언에 대한 대응을 논의했다. 논란이 된 나 원내대표의 연설 내용은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해당 내용을 보도한 한 외신을 인용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한 것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국가원수 모독죄’를 거론하며 나 원내대표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주문했다.

‘국가원수 모독죄’는 ‘국가모독죄’로 존재했다가 1988년 폐지된 법이다. 국가모독죄는 1975년부터 형법 104조의 2에 명시돼 있었고 당시 형량은 ‘7년 이하 징역 또는 금고’였다. 이 조항은 세간에서 국가원수 모독죄로 불렸다. 모욕과 비방 금지 대상으로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해당된다고 보고 국민이 대통령을 비판할 수 없도록 옥죄는 수단으로 악용됐기 때문이다.

특히 전두환 정권에서 국가모독죄는 전·현직 국가원수를 모독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용도로 활발히 활용됐다. 독재정권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국가모독죄는 민주화 이후 1988년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사라졌다.

따라서 이 대표가 거론한 국가원수 모독죄는 성립되지 않는다. 국가모독죄가 남아있다 하더라도 국회의원이 국회 직무상 공식석상에서 한 발언은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에 처벌이 불가하다. 무엇보다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왔던 이 대표와 민주당이 앞장서서 독재의 상징인 국가원수 모독죄를 거론했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한때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한 풍자는 옹호했던 민주당이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풍자와 비판을 막겠다고 나서는 이유를 알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뿐만 아니라 그 지지자에 대한 비판마저도 틀어막겠다는 것이니만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의 발언 내용은 전체주의적 발상이고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발상”이라고 비판하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있지도 않은 국가원수 모독죄를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우리도 우리대로 부당한 조치가 있다면 정말 단호하게 조치하겠다”고 반박했다.

일단 민주당은 의총을 통해 국회법 146조를 적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국회법 146조에 의거해서 오늘 발언을 윤리위원회에 제소하도록 하겠다. 이후에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논의해 강력하게 대처하겠다”고 했다. 해당 조항은 징계대상자를 국회의 의결로 징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민주당은 국회법 139조 ‘모욕 금지’를 적용해 징계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한정우 부대변인 명의로 입장문을 냈다. 한 부대변인은 “나 대표의 발언은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며 “나라를 위해 써야할 에너지를 국민과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으로 낭비하지 마십시오. 한국당과 나 원내대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번영을 염원하는 국민들께 머리 숙여 사과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나 원내대표의 ‘김정은 수석대변인’ 관련 발언이 외신을 인용한 것임을 강조했다. 한국당 측 관계자는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은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고 단정 지어 말 한 것이 아니고, ‘수석대변인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라며 “문구를 가지고 확대·과장·왜곡돼 기사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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