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5년 만에 열린 대의원 선거로 절반에 가까운 인사들을 교체했다. 이번 선거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례적으로 불출마했다. / 뉴시스
북한이 5년 만에 열린 대의원 선거로 절반에 가까운 인사들을 교체했다. 이번 선거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례적으로 불출마했고, 그의 여동생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처음으로 대의원에 진입했다. /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북한 헌법상 최고 주권기관은 최고인민회의다. 우리나라 국회에 해당하는 입법기구다. 여기에 참여하는 대의원들은 국회의원과 같다. 하지만 대의원의 실권은 없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나 노동당의 결정을 추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는 북한의 최대 정치 이벤트다. 권력층 상당수가 대의원을 겸임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거 결과에 따라 북한의 권력 지형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선거는 5년에 한 번 열린다. 지난 10일이 바로 그날이었다.

◇ 대의원 물갈이 50%… 혈족·외교·교육 라인 부상

선거 결과는 이틀 뒤인 12일 북한의 관영매체를 통해 공개됐다. 조선중앙통신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대의원 선거에서 687명의 당선자를 호명했다. 당에서 결정한 단수 후보의 찬반 투표인만큼 높은 투표율(99.99%)과 찬성률(100%)을 기록했다. 주목할 부분은 교체율이다. 이번 선거에서 대의원 전체의 50%에 달하는 350여명이 교체됐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13일 정례브리핑에서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등이 선출되지 않은 점을 언급하며 “인사교체, 권력 구조에 변화가 있는지 계속 주목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김일성 주석의 친동생 김영주 전 조직지도부장과 북한 내 권력 2인자로 불렸던 황병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도 대의원 명단에서 제외됐다. 이외 조용원 조직지도부 부부장,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 김철규 호위사령부 부사령관 등이 선출되지 않았다. 앞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불출마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대의원을 맡지 않은 것은 1948년 첫 선거가 치러진 이후 처음이다. 체제 개편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의원 후보인 홍서헌 김책공업종합대학 총장에게 투표하면서 과학 교육에 역점을 두고 있음을 알렸다. / 노동신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의원 후보인 홍서헌 김책공업종합대학 총장에게 공개 투표해 과학 교육에 역점을 두고 있음을 알렸다. / 노동신문

대의원에 첫 진입한 신흥 세력의 대표적 인물은 김여정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동생이기도 한 그는 ‘그림자 수행’으로 표현될 만큼 지근거리에서 ‘최고 존엄’을 보좌해왔다.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뒤 권력에서 소외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형 김정철과는 달랐다.

다만 이번 선거에서 김정철이라는 이름이 선거구 두 곳에서 당선돼 귀추가 주목된다. 동명이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실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형일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여기에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겸 국제부장, 리용호 외무상, 김성남 노동당 국제부 제1부부장, 최선희 외무성 부상,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대의원 명단에 처음 올랐다. 이들 모두 대남·대미 협상을 주도해온 외교 라인이라는 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협상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경제 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방점을 찍은 것도 과학 교육이다. 선거 당일 김책공업종합대학 투표소를 찾아 대의원 후보인 홍서헌 총장에게 공개 투표했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날 홍서헌 총장에게 “대학이 과학교육사업, 경제의 활성화, 인민생활 향상의 돌파구를 열어 나가는 데에 맏아들, 기관차로서의 책임과 본분을 다해달라”고 말했다. 따라서 5년 만에 새로 구성된 대의원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실용적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이미 예고됐던 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8년 만에 소집된 당 초급선전 일꾼대회에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게 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신격화에 주력해온 북한의 선전·선동 방식에도 변화를 맞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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