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06 12:11
‘맷값폭행’ 피해자 기소한 검사에 윤리경영 맡긴 SK케미칼의 자충수
‘맷값폭행’ 피해자 기소한 검사에 윤리경영 맡긴 SK케미칼의 자충수
  • 정소현 기자
  • 승인 2019.03.19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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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좌측 하단 박스) SK케미칼 부사장(윤리경영부문장)이 지난 14일 구속됐다. 가습기살균제의 인체 유해성에 대한 실험결과 보고서를 은폐한 혐의다.  박철 부사장에 대한 구속으로 "유해성 유무에 대해 알지 못했다"던 SK케미칼이 주장은 거짓말일 커졌다. 사진은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회원들이 가습기살균제 원료공급사인 SK케미칼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박철(좌측 하단 박스) SK케미칼 부사장(윤리경영부문장)이 지난 14일 구속됐다. 가습기살균제의 인체 유해성에 대한 실험결과 보고서를 은폐한 혐의다. 사진은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회원들이 가습기살균제 원료공급사인 SK케미칼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박철 SK케미칼 부사장(윤리경영부문장)이 지난 14일 구속됐다. 증거인멸 및 은닉교사 혐의다. 검찰은 박철 부사장을 포함한 SK케미칼 임직원들이 가습기살균제의 인체 유해성에 대한 실험결과 보고서를 감추기 위해 조직적으로 은폐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박철 부사장은 SK에 발을 들여놓을 때부터 잡음이 많았던 인사다. 영화 ‘베테랑’으로도 재연된 2010년 최철원(SK 오너일가) 전 M&M 대표의 ‘맷값폭행’ 사건 당시, 오히려 피해자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면서 비난 여론을 받았던 인물이어서다.

당시 박철 부사장은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 부장검사로, 최철원 전 대표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기 직전 폭행 피해자 유모 씨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그리고 최철원 전 대표가 집행유예로 풀려나자 돌연 사표를 냈고, 3개월 뒤 SK건설에 임원(전무)으로 입사했다. ‘법조인의 신념’ 정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박철 부사장의 ‘맷값폭행 피해자 기소 사건’은 그 의도를 의심 받았고, 진정성은 빛이 바랬다.

이후 박철 부사장은 2012년 2월 SK케미칼 법무실장 겸 SK가스 윤리법무담당으로 선임됐고, 2016년에는 SK케미칼(현 SK디스커버리) 윤리경영부문장 겸 SK가스 윤리경영부문장(부사장)으로 승진하며 승승장구 했다.

회사 측은 “윤리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이라고 설명했지만, 외부에서는 ‘보은인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시민단체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윤리경영’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조소까지 나왔다.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은 듯 하다. 검찰 수사결과대로라면, 윤리경영을 이끌어야 할 당사자가 수많은 사람을 사망케 한 사건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조직적 증거인멸의 선봉에 섰던 셈이이서다. 애초부터 SK케미칼이 박철 부사장에게 윤리경영총괄을 맡긴 것 자체가 코미디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SK케미칼 윤리경영의 민낯은 부끄러울 정도다. SK케미칼은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터진 2011년부터 줄곧 유해성 유무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주장해왔다. 지난 2016년 국정조사 특위 당시에도 “문서(유해성 여부 실험보고서)를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박철 부사장에 대한 구속으로 이 같은 주장은 사실상 거짓말일 가능성이 커졌다.

‘옥시싹싹’의 주성분인 PHMG를 독점 생산한 것도, 살균 물질을 흡입 용도로 사용하게끔 한 것도 SK케미칼이었다. 최초의 가습기살균제도 SK케미칼(당시 ‘유공’)의 ‘가습기메이트’다. 지난해 말 기준 환경부에 신청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6,246명이며 이 중 사망자는 1,375명이다. SK케미칼이 제조한 원료물질인 CMIT·MIT 성분이 든 가습기살균제만 사용한 피해자는 360여명으로 집계된다.

애초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다. 당시만 해도 박철 부사장의 ‘증거인멸 전략’에 쾌재를 불렀을지 모를 SK케미칼은 엄청난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고, 폭행 피해자를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사회적 비난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성공가도를 선택한 법조인은 결국 수의(囚衣)를 입게 됐다.

SK케미칼의 자충수는 엄청난 파문을 불러 올 것으로 보인다. SK케미칼의 윤리경영은 회복불가능한 심각한 생채기를 입게 됐다. 거짓말과 신뢰추락, 이에 따른 국민적 공분과 반감도 불가피해 보인다. 파문의 대가는 오롯이 SK케미칼이 치러야 할 몫이다. 과연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이 사건을 국민 모두가 끝까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