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범찬희 기자] 매년 3월 이 맘 때쯤이면 신문 경제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표현이 있으니, 바로 ‘슈퍼 주총데이’다. 이 표현이 언제부터 어떻게 언론과 자본시장에서 사용됐는지 기원은 알 수 없으나, 특정일에 수백개의 주주총회가 몰려 개최되는 현실을 함축하는데 이만한 단어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먼 훗날 언젠가는 이 단어를 더 이상 신문지상에서 못 봤으면 하는 게 기자의 개인적 바람이다. 어감에서 주는 느낌과는 다르게 슈퍼 주주총회는 현재 주총이 안고 있는 문제 중 하나를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주주총회는 ‘주식회사의 주주들이 모여 상법에 정해 놓은 회사의 중요한 사안을 정하는 최고 의사결정회’인 만큼 최대한 많은 주주들의 참석이 보장돼야 하는 게 옳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능한 많은 국민들이 투표에 참석할 수 있도록 투표권을 보장해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고 부재자 투표 제도가 존재하는 건 민주주의의 기본인 투표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한 날에만 수백개의 주총이 열리는 현재의 관행은 이 같은 정신에 어긋난다. 복수의 기업에 투자한 소액주주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주총에 참석할 재간이 없다. 장고를 거듭한 끝에 경중을 따져 하나의 기업을 취사선택해야 한다. 국가의 경제 엔진인 기업에 자신의 돈을 투자하고도 주주로서 정당한 권한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고약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자투표제를 택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건 두 팔 벌려 반길 일이다. 전자투표제는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최소화해 최대한 많은 주주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 꼽힌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전자투표 계약사는 2017년 1,200곳을 넘어 2018년 1,300곳 이상으로 늘었다. 올해에는 SK하이닉스, 포스코, CJ, 신세계그룹사 등 주요 대기업들이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는 등 갈수록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아이러니하게도 올해 주총이 가장 많이 몰린 사흘간을 기준으로 보면, 주총데이 집중도는 지난해 보다 심해져 69%에 이르렀다고 한다. 전자투표제를 선택하지 않은 기업들의 주총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대만이 선착순으로 하루에 100개까지만 주총 날짜를 접수 받는다는 사실은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있다고 자부하는 우리로서는 다소 뼈아픈 일이다.

또 전자투표가 주총 이전에 실시되고 있어 주주들이 의결사항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이에 주총의 생중계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혹자는 비현실적인 대안이라며 비판할 수도 있겠다. 준비 과정에서의 번거로움만 감내한다면 초등학생도 1인 방송을 하는 시대에 꼭 불가능하다고만 볼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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