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구시장 상인들, 현대화건물 입주 놓고 ‘수협과 갈등 4년째’
120여명 상인들 “사람대접이 먼저” vs 수협 “법과 원칙”

[시사위크=주용현 기자]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 건물에 입주를 거부한 구시장 상인과 수협의 갈등이 4년차를 맞았다. 작년 11월 전기와 물이 끊기고, 올해 2월에는 시장 입구 패쇄 작업을 강행되며 많은 상인들이 현대화 시장으로 옮겨갔다. 그럼에도 120명의 상인들은 여전히 구시장에 남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구시장 가지말라’는 현수막 넘어 구시장으로

노량진역을 통해 수산시장을 가는 길은 지하통로가 철도길을 대체했다. 9호선 7번 출구를 통해 직진하면 수산시장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사진은 노량진역에서 수산시장으로 가는 길 모습이다./주용현 기자
노량진역을 통해 수산시장을 가는 길은 지하통로가 철도길을 대체했다. 9호선 7번 출구를 통해 직진하면 수산시장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사진은 노량진역에서 수산시장으로 가는 길 모습이다./주용현 기자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가는 길을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철도길’을 떠올린다. 아직 철도길은 노량진 역과 붙어있다. 예전에는 건어물이나 채소 등을 파는 잡상인들이 즐비한 다리를 건너면 수산시장으로 가는 통로가 나왔다. 아래로 한 층 내려가면 줄지어 있는 초장집(상차림비를 지불하고 이용하는 식당), 한 층 더 내려가면 북적한 수산시장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제 노량진역에서 수산시장을 가는 길은 지하통로가 철도길을 대체했다. 신시장의 위치가 노량진 역에서 조금 더 멀어져 9호선 7번 출구에서 나와 조금 걸어야 수산시장 가는 통로를 이용할 수 있다. 

노량진 신시장은 2016년 3월 문을 열었다. 수협은 2009년 구 수산시장 상인 대표 측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2012년부터 현대화 시설 공사를 시작했으며, 건물은 2015년 완공됐다. 하지만 구 시장 상인들이 완전히 이전한 상태는 아니다. 구상인들은 신 시장 이전에 반대하면서 수년째 수협과 갈등을 빚고 있다. 상인들은 임대료와 매장 면적을 두고 수협과 이견을 보였다. 수협 측은 이미 합의된 사항이라며 구시장에 대한 명도 소송을 제기했다. 첨예한 갈등 속에서 폭력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달 8일에도 수협이 구시장 진입로 4곳을 콘크리트 차단벽과 트럭으로 막으면서 상인들과 수협 측 용역직원들 간의 충돌이 빚어졌다. 

지하통로에는 채소 등을 파는 상인들이 줄지어 서있다. 통로 초입에는 신시장 영업개시 알림말이 있다. 알림말 하단에 '구 수산시장은 폐쇄된 무허가 시장으로 안전사고 위험'이라는 설명이 있다. 통로를 지나면 신시장이 정면에 보이고, '구시장 회는 신시장에서 반입하지 말라'는 현수막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다./주용현 기자
지하통로에는 채소 등을 파는 상인들이 줄지어 서있다. 통로 초입에는 신시장 영업개시 알림말이 있다. 알림말 하단에 '구 수산시장은 폐쇄된 무허가 시장으로 안전사고 위험'이라는 설명이 있다. 통로를 지나면 신시장이 정면에 보이고, '구시장 회는 신시장에서 반입하지 말라'는 현수막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다./주용현 기자

여전히 양측의 갈등이 팽팽한 가운데, 지난 19일 기자는 지하통로를 거쳐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아갔다. 지하통로 초입에 도착하면 철도길 위에서 본 풍경을 느껴볼 수 있다. 지하통로의 한쪽에는 잡상인들이 줄지어 있었고 사람들은 횟감 등을 들고 그 옆을 드나들었다. 

하지만 통로 위 ‘신축 현대화 시장 영업 개시’ 안내판이 나타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알림판 하단에는 ‘구 수산시장은 (2016년) 3월 16일 부로 폐쇄된 무허가 시장으로 안전사고에 위험하다’는 경고문이 함께 적혀있었다. 

지하통로를 따라 걸으니 신시장의 긴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른편에 구시장이 바로 붙어있었다. 주변에는 ‘구시장 가지 말라’는 현수막들이 펼쳐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구시장으로 가는 길에 검은 마스크를 쓴 한 수협 직원을 만났다. 이 직원은 취재를 하고 있다는 기자의 말에 “(수협은) 시설물 퇴거 명령을 구시장 상인들이 이행하지 않으니 사유재산(구시장)에 대해 관리를 하고 있을 뿐”이라며 더 이상의 언급을 꺼렸다. 

지난해 8월 대법원의 “점유하고 있는 각 점포를 소유자인 수협에 인도할 의무가 있다”는 판결이 있었다. 이에 탄력 받은 수협 측의 구시장 철거 계획은 강도가 높아졌다. 네 차례 명도 집행, 지난해 11월 단전‧단수 조치, 지난 2월 차량 출입구 통제 등을 거쳤다. 

이같은 갈등 속에서도 여전히 구시장을 찾는 손님은 있었다. 이날 구시장 초입에선 양손에 검은 봉투를 한가득 들고 나오는 한 노인(여성)과 마주쳤다. 이 노인은 “수십 년 된 단골집이라서 구시장을 이용한다”고 말한 뒤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외국인 남성 두 명도 눈에 띄었다. 이 남성들은 “신시장에 들렀다가 옆에 시장이 보여서 구경했다”고 말했다. 현수막들의 의미를 아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왼쪽 사진)구시장 입구에는 대법원 판결 등 갈등 상황이 요약된 통보문이 있다. 공지 하단에 '강제명도 집행 후 폐쇄 및 철거가 불가피하다고 적혀있다. (오른쪽 상단) 입구에는 '허가없는 무단 출입을 금지'하고 '출입시 형사 고소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수협의 현수막에서는 구시장 손님에게도 이용을 하지말라는 강한 메세지가 담겨있다. (오른쪽 하단) 입구에는 바퀴가 모두 펑크난 자동차에 '폐쇄 및 철거 중인 주차구역에서 불법 주차 차량을 이동하라'는 딱지가 붙어있다./주용현 기자
(왼쪽 사진)구시장 입구에는 대법원 판결 등 갈등 상황이 요약된 통보문이 있다. 공지 하단에 '강제명도 집행 후 폐쇄 및 철거가 불가피하다고 적혀있다. (오른쪽 상단) 입구에는 '허가없는 무단 출입을 금지'하고 '출입시 형사 고소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수협의 현수막에서는 구시장 손님에게도 출입 하지말라는 강한 메세지가 담겨있다. (오른쪽 하단) 입구에는 바퀴가 모두 펑크난 자동차에 '폐쇄 및 철거 중인 주차구역에서 불법 주차 차량을 이동하라'는 딱지가 붙어있다./주용현 기자

구시장 초입에는 현수막들 외에 수협 측의 통보글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간의 대법원 판결 등을 소개하며 자진 퇴거하라는 공지였다. “조만간 강제명도 집행 후 패쇄 및 철거가 불가피”하다는 마지막 문구에서는 전운이 감돌았다.

또 지난 2월에 수협측의 조치로 차량 통행로가 막힌 입구에는 ‘차량 출입통제’ 딱지가 붙은 펑크난 자동차도 서 있어 극심한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울리는 구시장

오후 5시가 좀 넘은 시각, 구시장 안은 휑했다. 지난해 11월 수협의 단전‧단수 조치를 기점으로 많은 가게들이 나간 탓이다. 다만 몇 걸음을 더 걸어 시장 중심 쪽으로 이동하니 생각보다 많은 가게들이 모여 장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손님은 많지 않았지만 수산물 진열은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었다.

(위) 수협 측의 단전 조치로 발전기 소리가 적막한 수산시장을 메우고 있었다. (아래) 신시장으로 입주한 상인들이 남기고 간 집기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빈 가게들 중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빈 곳이 많은 모습이다./주용현 기자
(위) 수협 측의 단전 조치로 발전기 소리가 적막한 수산시장을 메우고 있었다. (아래) 신시장으로 입주한 상인들이 남기고 간 집기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빈 가게들 중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빈 곳이 많은 모습이다./주용현 기자

아무것도 없이 텅 빈 매장들도 눈에 띄었다. 남기고 간 화로와 장사 물품들은 자리에 모여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썰렁한 풍경 사이로 발전기가 탈탈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구시장 상인은 “상인들이 쓰레기 처리 비용을 지불하고 신시장으로 간 자리를 수협 직원들이 와서 통로 등에 엎어놓고 간다. (보기 흉하기 때문에) 우리(구시장 상인)들이 정리해 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까지 오니 생선이 진열된 매대들이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 앉아있는 상인들의 모습과 텅 빈 통로에서 이전의 활기를 느끼기 어려웠다.

(사진 우) 각 가게의 전등 주위에는 '단결 투쟁'이라 적힌 작은 현수막들이 걸려있었다. (사진 좌) 상인들이 장사를 하고 있는 모습. 텅빈 구시장 초입에 비해 많은 상인들이 모여서 장사를 지속하고 있었다./주용현 기자
(왼쪽 사진) 각 가게의 전등 주위에는 '단결 투쟁'이라 적힌 작은 현수막들이 걸려있었다. (오른쪽 사진) 상인들이 장사를 하고 있는 모습. 텅빈 구시장 초입에 비해 많은 상인들이 모여서 장사를 지속하고 있었다./주용현 기자

상인들 가게의 전구 위에는 ‘단결투쟁’이란 작은 깃발이 달려있었다. 그러나 오래된 갈등 탓인지 상인 개개인에게서 결연한 의지를 단번에 읽어내긴 어려웠다. 상인들에게 다가가 기자라고 밝히니 “집행부로 가서 얘기해보라”며 다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후 시장 통로에서 집행부로 보이는 조끼를 입은 상인들이 만났다. 그들은 “오늘도 한잔 해야겠다”며 한숨을 내쉬곤 ‘매점’이라 불리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 그들이 말하는 ‘생존권’... “임대료 문제가 아니다”

자리에 앉은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 비상대책 총연합회 윤헌주 공동위원장은 “임대료 비싸서 못 들어간다는 (단순한) 이기심 문제가 아니다”며 말문을 열었다. 구시장 상인들은 비싼 임대료 등을 이유로 신시장 입주를 거부하고 있다고 알려져왔다.

윤 위원장은 “포화된 신(新)시장에 들어가라는 것은 (신시장 상인들과) 공멸하라는 얘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신시장으로 옮긴 상인들 중에 장사가 어려워서 도산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주장도 제기했다. 

실제 올해 1월 구시장에서 신시장으로 옮겼다가 열흘 만에 장사를 접은 한 상인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막상 신시장으로 입주했는데 수족관과 도마 등을 놓을 장소도 협소하고 적자에 장사를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해 신시장도 떠났다”고 전한 바 있다. 

신시장에는 '시장정상화를 방해하는 외부세력을 규탄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현수막 아래 '노량진 수산시장 전체 종사자'에 구시장 상인도 포함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주용현 기자
신시장에는 '시장정상화를 방해하는 외부세력을 규탄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현수막 아래 '노량진 수산시장 전체 종사자'에 구시장 상인도 포함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주용현 기자

윤 위원장은 신시장이 공영시장의 공공기능이나 수산물 수송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해 수산물 값이 높아지는 등 피해가 서울시민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영시장의 목적은 값싼 수산물을 공급하는 것인데, 임대료가 비싸지고 신시장의 협소한 공간으로 소비가 불편하지고 물류 유통이 원활하게 안 돼 물가가 비싸진다”고 지적했다.  

신시장으로 입주할 수 없다는 의견도 분명히 했다. 윤 위원장은 “수산시장 현대화 사업이 잘 못된 것은 수협에서도 안다. 2017년 12월 수협 회장과 면담에서도 적자가 나는 신시장을 서울시에 넘기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다”며 “잘못된 사업이라면 원점 재검토해서 구시장 건물을 보수해서 사용하는 방안이 있다. 또는 구시장과 신시장이 공존하는 방안을 통해서 신시장 상인들도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구시장 “사람대접 해 달라” vs 수협 “법과 원칙”

윤 위원장은 수협과의 깊은 감정의 골을 드러냈다. 그는 “솔직히 사람대접 안 해주는 수협하고는 협상을 하기가 어렵다”며 “우리가 이렇게 오랜 기간 문제제기하고 싸우는데 (수협 측의 조치에 승복한다면) 산다는 가치가 없는거지”라고 말했다. 수년간 반복된 감정 싸움이 깊은 앙금으로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발전기를 자체적으로 돌리며 장사하는 비용도 막대한데, 이렇게 싸우는 이유가 보상을 바라는 것만도 아니다. 서울시와 정부는 중재가 아닌 적극적 조정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수협과의 협상 전망에 대해선 “신임 수협 회장의 취임식 후 대화를 이어갈 것이라니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구시장 상인들은 수협과의 극심한 갈등 속에서도 영업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주용현 기자
구시장 상인들은 수협과의 극심한 갈등 속에서도 영업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주용현 기자

인터뷰를 마치고 수산시장 통로로 나오니, 퇴근시간 무렵이 돼 횟감 등을 찾는 시민들도 늘어났다. 상인들도 일어서서 영업을 하는 모습이 해가 지기 전보다는 활기차 보였다. 구시장을 빠져나오기 전 앞서 인터뷰를 한 차례 거절했던 한 상인을 다시 한 번 찾았다. 

작년 11월 수협의 단수조치로 상인들은 물을 길어다 수조에 저장해 사용하며 장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주용현 기자
작년 11월 수협의 단수조치로 상인들은 물을 길어다 사용하며 장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주용현 기자

15년 넘게 장사를 이어오고 있다는 여성 상인은 “아침저녁으로 용역들이 괴롭혀서 힘들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1970년 노량진 수산시장이 만들어 진 후 허허벌판이었던 이곳을 일군 것은 30년에서 50년까지 있어온 (구시장에 남은) 연로한 저 분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자식뻘 보다 더 어린 사람들이 찾아와 짐승처럼 취급하고 욕하니 견디기 힘들다”며 떨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상인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건넸다.  

양측의 입장차는 현재로선 좁혀지기 어려운 모양새다. 수협 관계자는 구시장 상인들과 협의에 대해 “합의안 틀이 잡히면 (구시장 상인들이) 입장을 바꿔 무한 도돌이표”라며 “입주 기회를 안 준 것도 아니라 법과 원칙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구시장 상인들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어두워진 저녁, 구시장을 나왔다. 차후 예정된 임준택 신임 수협회장과 구시장 상인들의 대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다. 다만 구시장 상인과 수협 측을 비롯한 이해 당사자들의 고민이 깊어가는 밤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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