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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총수 사퇴’, 국내 항공업계 ‘파란’
연이은 ‘총수 사퇴’, 국내 항공업계 ‘파란’
  • 권정두 기자
  • 승인 2019.03.2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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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각각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에서 물러났다. /뉴시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각각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에서 물러났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국내 FSC 항공업계가 연이은 총수 사퇴로 커다란 변곡점을 맞고 있다. 재벌 오너일가라는 이유만으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누렸던 시대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먼저 물러나게 된 것은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다. 조양호 회장은 지난 27일 열린 대한항공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하며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정관상 참석한 주주의 3분의 2 이상 찬성표를 받아야 했지만, 64.1%에 그치고 말았다. 약 11%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반대 의사를 표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국내 주요 재벌 총수가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에 의해 경영권을 박탈당한 것은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다.

조양호 회장의 경영권 박탈은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 강화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이 그 시발점이었다. 특히 행동주의 펀드 KCGI는 한진칼과 대한항공의 지분을 적극 매입한 뒤 지분 보유 상황을 밝히고 지배구조 개선 등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이에 한진그룹 측은 경영개선방안 등을 발표하며 대응했으나, 양측은 KCGI의 주주제안 자격 요건을 놓고 법적 분쟁을 벌이는 등 대립각을 세웠다. 결과적으로 KCGI는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저지하는데 성공하며 큰 성과를 거두게 됐다.

조양호 회장은 이어 29일 열린 지주사 한진칼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비극을 피했다. 측근인 석태수 대표이사가 연임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조양호 회장과 장남 조원태 사장의 사내이사 임기가 내년으로 다가오면서 향후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에서 벌어진 경영권 박탈이 한진칼에서 재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양호 회장이 뜻밖의 상황을 맞은 바로 다음날엔 동종업계의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퇴진 의사를 발표했다. 최근 아시아나항공이 감사 의견 ‘한정’을 받는 등 금융시장에 혼란을 일으킨 것과 관련해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었다.

사퇴 발표에 앞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을 만나 경영정상화 지원을 요구한 그는 29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 대표이사·등기임원에서 공식 물러났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산업은행이 경영정상화 지원 조건으로 퇴진을 내걸었다는 시각과 조양호 회장의 경영권 박탈을 지켜본 박삼구 회장이 최근 불거진 논란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란 시각 등이 교차하고 있다.

오랜 세월 국내 항공업계를 양분해온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연이어 총수 사퇴 사태를 겪자 항공업계는 물론 재계 전반이 적잖은 충격에 빠진 모습이다. 무엇보다 오로지 재벌 오너일가라는 이유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둘렀던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이란 평가가 나온다.

조양호 회장과 박삼구 회장은 동종업계에 몸담고 있다는 것 외에도 여러모로 닮은 구석이 많았다. 오너일가 2세이자 형제와 갈등을 겪었고, 각종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양호 회장은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을 비롯해 자녀와 아내의 갑질 논란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조양호 회장 본인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박삼구 회장 역시 형제와 법적 분쟁을 겪고 있고, 성추행 및 갑질 논란에도 휩싸였었다.

이러한 닮은꼴 행보는 결과적으로 같은 시기에 물러나는 결말을 낳았다. 방식과 구체적 이유엔 다소간 차이가 있으나, 근본적인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더 이상 경영능력이나 각종 논란과 무관하게 재벌 총수 자리를 지키는 일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과반이 넘지 않는 일부 지분만 보유한 재벌 오너일가가 회사의 주인이 아니라는 점 또한 확인시켜줬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마주한 커다란 변곡점은 항공업계를 넘어 국내 경제계 전반에 무거운 메시지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