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부친 고(故) 조양호 회장의 뒤를 이어 한진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뉴시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부친 고(故) 조양호 회장의 뒤를 이어 한진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한진그룹 3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부친을 떠나보낸 지 일주일 만에 한진그룹 회장으로 정식 선임됐다. 리더십 공백을 최소화하고, 산적한 현안 처리를 서두르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부친을 잃은 슬픔을 채 달래기도 전에 어깨가 한층 무거워진 조원태 회장의 당면과제를 짚어본다.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은 지난 24일 이사회를 통해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을 신임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했다. 지난 8일 미국에서 사망한 고(故) 조양호 회장의 빈자리를 장남인 조원태 회장이 이어받게 된 것이다.

속전속결이다. 조원태 회장은 부친의 장례식을 마친 지 8일 만에 그룹 회장 직함을 달게 됐다. 고 조양호 회장이 다소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슬픔을 달랠 시간도 없이 회장에 취임하게 된 모습이다. 이에 대해 한진칼 이사회는 “리더십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그룹 경영을 지속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고 조양호 회장을 떠나보낸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만큼, 별도의 취임 행사는 갖지 않는다.

조원태 회장은 1975년생으로 올해 나이 45세다. 가뜩이나 한진그룹이 여러 현안을 마주하고 있는 긴박한 시점에 예상보다 일찍 그룹 수장을 맡게 됐다.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최대 당면과제는 역시 고 조양호 회장의 말년을 괴롭게 만들었던 ‘경영권 지키기’다. 한진그룹은 지난해부터 행동주의펀드 KCGI의 거센 공세를 마주하고 있다. 여기에 국민연금도 경영관리체계 개선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경영권에 심각한 위협을 받았다. 이에 한진그룹은 대대적인 쇄신안을 내놓았지만,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지난달 열린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고 조양호 회장의 연임이 무산되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KCGI는 한진그룹이 고 조양호 회장의 사망이란 비극을 겪는 와중에도 공격적으로 지분을 늘렸다. KCGI의 투자목적회사인 그레이스홀딩스는 지난 24일 한진칼 지분이 12.80%에서 14.98%로 증가했다고 공시했다.

이처럼 KCGI가 지분을 늘린 한진칼은 향후 한진그룹 경영권 다툼의 뇌관이 될 전망이다. 올해 주총에서는 오너일가 측근인 석태수 대표의 연임안이 통과되며 방어에 성공했지만, 더 큰 문제가 다가오고 있다.

KCGI는 이번 한진칼 주총에서 주주제안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주주제안권 행사를 위한 주식 보유 기간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만간 이 요건을 충족하게 될 뿐 아니라, 지분도 확대됐다. 이런 가운데, 조원태 회장의 한진칼 사내이사 임기는 내년 3월로 만료된다. 자칫 고 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 사내이사에서 물러난 것처럼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석태수 대표에게 찬성표를 던졌던 국민연금도 조원태 회장에 대해서는 입장을 바꿀 가능성이 상당하다. 고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했듯 말이다.

치열한 경영권 방어와 동시에 상속세 재원마련도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3세 승계가 정리되기 전에 고 조양호 회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상속세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경영권 방어로 인해 상속세 재원마련에 지분을 활용하기 어렵다는 점이 고민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부친 고(故) 조양호 회장의 영정을 들고 슬픔에 잠겨 있다. /뉴시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부친 고(故) 조양호 회장의 영정을 들고 슬픔에 잠겨 있다. /뉴시스

실질적 현안인 경영권 방어 및 상속세 마련 문제와 함께 여전히 싸늘한 국민여론을 회복하는 것도 반드시 풀어야할 숙제다. 그동안 대다수 국민들이 한진그룹하면 ‘재벌 갑질’을 떠올릴 정도로 많은 사건과 논란이 있었다. 오너일가의 이 같은 논란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해결이 더욱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원태 회장 본인 역시 ‘땅콩 회항 사건’보다 한참 앞서 논란을 남긴 바 있다. 2000년엔 차선 위반으로 적발된 뒤 교통경찰을 치고 달아났으며, 2005년엔 도로에서 시비가 붙어 폭행사건에 휩싸이기도 했다. 2012년엔 인하대학교 관련 문제를 제기하며 시위를 하던 시민단체를 향해 욕설과 막말을 퍼부어 논란을 일으켰다.

인하대 부정 편입학 관련 의혹도 빼놓을 수 없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해 7월 조원태 회장의 인하대 편입학 과정에 부정이 발견됐다며 입학 및 학사학위를 취소하라고 통보했다. 이에 대해 인하대 재단인 정석인하학원 측은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하지만 인하대 총동창회가 그를 제명 조치하는 등 여론은 좋지 않다. 소송 결과에 따라 조원태 회장에게 큰 타격을 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 조양호 회장의 사망으로 재판 및 수사가 중단됐지만, 도덕성 논란을 해소하지 못한 점 역시 부담이다. 고 조양호 회장은 생전 배임·횡령, 약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었으며, 검찰은 조세포탈 혐의를 추가로 수사 중이었다. 그러나 고 조양호 회장이 사망하면서 그에 대한 재판은 공소기각, 검찰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됐다. 하지만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특히 조원태 회장은 고 조양호 회장의 배임·횡령 혐의의 수혜 대상으로 지목된 바 있어 이 같은 논란이 꼬리표처럼 이어질 수 있다.

한진그룹의 특수한 과제 해결 뿐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경영능력의 발휘 또한 중요하다. 마침 국내 항공업계는 대대적인 재편을 앞두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이 추진되고 있고, 새로운 항공사 3곳이 새로 발을 들여놓게 됐다. 더욱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해진 만큼 수장의 판단력과 리더십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재계 관계자는 “당장 중요한 현안이 산적해있어 조원태 회장은 수장으로서 곧장 거친 실전을 마주하게 될 전망”이라며 “다만, 위기를 잘 넘길 경우 리더십을 공고히 다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급변사태 속에 수장으로 올라선 조원태 회장이 한진그룹의 비상을 이끌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