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도시가스 고객서비스센터 소속으로 가스안전 점검 업무를 하던 한 여성이 성폭력 위기를 겪은 뒤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해 파문이 일고 있다.
경동도시가스 고객서비스센터 소속으로 가스안전 점검 업무를 하던 한 여성이 성폭력 위기를 겪은 뒤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해 파문이 일고 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방문 점검 업무 도중 한 남성으로부터 1시간 동안 감금당하는 등 성폭력 위기를 겪은 여성점검원이 급기야 극단적인 선택까지 시도한 가운데,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경동도시가스 측이 개선 방안을 내놓았으나, 핵심인 2인1조 점검은 제외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가스안전 점검 나섰다 1시간 감금당한 여성점검원

민주노총 울산본부 공공운수노조 경동도시가스고객서비스센터분회와 여성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7일 경동도시가스 고객서비스센터 소속의 한 여성점검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동료의 기민한 대처로 최악의 상황은 면했으나,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여성점검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이유는 지난달 업무 도중 겪은 ‘사건’ 때문이다. 한 원룸에 방문해 안전점검을 마친 뒤 나가려는 순간, 이 집에 거주하는 남성이 앞을 막아선 채 1시간 동안 여성점검원을 감금했다. “진짜 점검만 하러왔느냐”며 나가지 못하게 하는 남성으로 인해 여성점검원은 성폭력 공포에 떨어야했다.

하지만 이 여성점검원은 이후에도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했다. 경찰은 실질적인 성적 추행이 없었다며 조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사측은 7일 정도의 휴무를 부여한 뒤 바로 업무에 투입시켰다. 결국 극심한 공포와 스트레스, 트라우마가 쌓인 여성점검원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노조에 따르면, 도시가스 여성점검원들이 겪은 성폭력 피해는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점검 도중 몸을 밀착하거나, 옷을 벗고 중요부위를 노출하는 행위부터 언어폭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폭력 피해를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점검원들은 ‘성과 달성’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한다. 매달 1,200여건의 점검 중 97%를 완료하지 못할 경우 임금이 삭감되기 때문에 위험을 느끼더라도 점검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노조는 이 같은 성폭력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2인1조 점검 등을 요구해왔음에도 사측이 이를 묵인해왔다고 강조했다. 호루라기를 지급하고, ‘고객이 음담패설을 할 경우 당황하지 말고 못들은 척 담담하게 업무적으로 말을 돌린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성희롱 대책 매뉴얼을 마련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특히 노조는 “예산을 이유로 2인1조 점검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경동도시가스는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23% 증가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의 7% 정도면 2인1조 운영이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실점검율 97% 성과체계 폐기, 성범죄자 및 특별관리 세대 고지, 상담치료 실시 등의 개선책을 함께 요구하며 지난 20일부터 파업에 돌입한 상태다.

◇ 대책 내놓은 경동도시가스 고객서비스센터, “단, ‘2인1조’만 빼고…”

이 같은 실태가 언론보도는 물론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자 경동도시가스의 5개 고객서비스센터 측은 27일 이에 대한 공식입장을 내놓았다. 이들 고객서비스센터는 경동도시가스로부터 위탁 받아 가스안전 점검 업무 등을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먼저 경동도시가스 고객서비스센터 측은 “가스안전 점검원의 성범죄 위험 노출 이슈와 관련해 최선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으며,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사회적 공감을 마련해 안전한 업무환경을 보장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노조의 요구 중 사회적 공감대가 담보돼야 하는 2인1조 요구와 나머지를 분리해 개선 방안을 마련했다”며 개선책을 제시했다.

경동도시가스 고객서비스센터는 우선 개인성과제를 폐지하는 한편 점검원의 실점검율을 97%에서 92%로 낮추고, 실적수당 20만원은 안전관리수당으로 명칭을 바꾸며, 매월이 아닌 6개월 누계기준으로 평가해 업무부담을 경감시키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점검원의 안전 확보를 위한 ‘가스안전점검 사전계약제’를 하반기 내에 실시하고, 성범죄자 및 특별관리 세대를 점검원에게 고지하며, 울산지역 점검원들의 근무실태를 전수조사해 특별관리세대를 도출하고 이를 점검원들에게 고지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감정노동자 보호매뉴얼도 조속한 시일 내에 제정해 심리상담 치료를 비롯한 적절한 지원이 이뤄지도록 할 예정이다.

또한 앞서 지급한 호루라기의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추가호신장비를 지급하는 한편 고객을 대상으로 한 홍보활동도 검토한다.

◇ “절대 다수의 선량한 고객을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할 수 없다”

다만, 경동도시가스 고객서비스센터 측은 노조의 핵심 요구사항인 2인1조 점검은 적용이 어렵다고 밝혔다. 경동도시가스는 “2인1조를 포함한 모든 옵션을 열고 치열하게 고민했지만, 2인1조 점검이 성범죄 위험에 대한 근본적이고 확실한 해결책이 될 수 없고 0.1% 미만의 블랙컨슈머를 일반화해 모든 고객세대를 잠재적 범죄세대로 가정하고 업무 프로세스를 재편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평균 성범죄율은 0.1% 미만인데, 모든 세대에 대해 범죄 가능성을 간주해 2인1조로 운영할 경우 절대 다수인 선량한 고객에게 불쾌한 감정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경동도시가스 고객서비스센터 측 설명이다.

아울러 사회적 비용 및 편익의 관점에서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며 “방문업무를 하는 타 점검원, 렌탈서비스직, 요양보호사 등으로 2인1조 조치가 확대될 경우 사회 전반의 비용·편익의 불균형이 매우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다만, 경동도시가스 고객서비스센터 측은 “이러한 논지가 점검원들이 겪은 사건의 경중을 재논의하거나 그 심각성을 훼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한다”며 “2인 1조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것이 점검원에 대한 위험의 방관이나 조장이라는 노조 측 주장은 이분법적 사고로 옳지 않다고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2인1조 적용 시 근무시간 및 휴게시간 운용이 자유로운 ‘간주근로시간제’의 자율적 관리가 침해받을 소지가 있어 부정적인 의견이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덧붙였다.

경동도시가스 고객서비스센터는 2인1조 점검에 대한 보완조치로 특별관리세대 선정 및 전담 점검원 추가채용 방안도 제시했다. 경동도시가스 고객서비스센터는 이날 발표한 방안을 바탕으로 노조 측과 협의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조의 핵심 요구사안인 2인1조 점검에 대해 사측이 전혀 다른 시각을 내놓으면서 갈등 및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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