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좌)과 김혁철 대미 특별대표(중)가 하노이 회담 실패로 숙청을 당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김여정 정치국 후보위원(우)은 근신처분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뉴시스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좌)과 김혁철 대미 특별대표(중)가 하노이 회담 실패로 숙청을 당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김여정 정치국 후보위원(우)은 근신처분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한반도의 봄’을 주도했던 북한 김영철 라인이 대대적으로 숙청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여정 정치국 후보위원은 근신 중이라고 한다. 심지어 스티브 비건 특별대표와 비핵화 협상을 전담했던 김혁철 대미 특별대표는 이미 지난 3월 총살을 당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사실이라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후 김정은 위원장의 상실감과 분노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31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김영철 부위원장은 혁명화 조치를 당해 강제 노역에 처해졌으며, 김혁철 대미특별대표는 지난 3월 외무성 간부 4명과 함께 미림비행장에서 처형당했다고 북한 소식통이 밝혔다. 뿐만 아니라 김영철 부위원장의 참모로 미국 방문에도 동행했던 김성혜 통전부 통일책략실장은 정치범 수용소행 처분을 받았다. 김 위원장이 하노이 회담 결렬의 책임을 물어 대대적인 숙청에 나선 것이라고 해석했다.

◇ ‘한반도 봄’ 주도한 김영철 라인 실각

실제 노동신문은 30일 “앞에서는 수령을 받드는 척하고 뒤에 돌아앉아서는 딴 꿈을 꾸는 동상이몽은 수령에 대한 도덕·의리는 저버린 반당적, 반혁명적 행위”라며 “이런 자들은 혁명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된다”고 보도했다. 특히 “충실성은 결코 투쟁 연한이나 경력에 기인되는 것이 아니다”며 상당한 고위직에 대한 처벌을 암시했다. 특정인이나 처벌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아니었지만, 이른바 ‘김영철 라인’에 대한 숙청을 의미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

사실 하노이 회담 결렬 후 김영철 부위원장 등의 정치적 입지는 상당부분 축소될 것이 충분히 예상됐다. 통일전선부장으로서 대남협상을 주도했고, 나아가 외무성 관할인 대미협상까지 총괄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이다. ‘수령 무오류론’이 지배하는 북한 체제에서 문책은 피할 수 없다는 게 공통된 전망이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을 두 차례나 접견했던 김 부위원장을 심하게 문책하진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보도내용이 사실이라면, 하노이 협상 실패에 대한 김 위원장의 충격은 예상 이상으로 클 수 있다. 김 위원장이 북미협상 국면에서 완전히 이탈할 우려도 적지 않다. 대남협상 전면에 나서며 우리에게도 익숙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의 모습은 이미 공식석상에서 없어진 지 꽤 오래됐다.

◇ 숙청이냐 세대교체냐 해석분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무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노동신문 캡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무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노동신문 캡쳐

청와대와 통일부는 숙청설과 관련해 신중한 모습이다. 31일 취재진과 만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관련한 모든 동향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해당 기사가 얼마나 확인된 사안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 부분에 대한 섣부른 판단이나 언급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유진 통일부 대변인도 사실 여부를 묻는 질문에 “확인해줄 수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청와대 안팎에서는 최근 남북교류 및 대화가 잘 진척되지 않는 원인이 김영철 라인의 몰락에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4월 11일 한미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추진할 시점”이라고 했지만, 북한 측으로부터 이렇다할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인도적 식량지원 의사에도 뜨뜨미지근 하다. 통일부는 개성공단 기업들의 방북 문제를 북측과 논의 중이나 좀처럼 진전이 어려운 것으로 전해진다.

개성공단기업협회 관계자는 이날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통일부에서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여부를 북한 측과 협의 중이라고 들었다”며 “하루라도 빨리 됐으면 하는 게 우리 심정이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남북미 간 협상기조의 문제인지 아니면 북한의 인사개편이 마무리가 안 됐기 때문에 늦어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숙청으로 결론짓기에는 섣부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은 시대 2기에 맞춘 세대교체일 수 있다는 얘기다. 권혁기 전 춘추관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김 부위원장이 통일전선부장에서 내려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숙청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물러나는 등 최고인민회의에서 세대교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조금 더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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