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식이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으로 돌아왔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최우식이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으로 돌아왔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2016년 영화 ‘옥자’ 촬영이 끝난 어느 날 봉준호 감독은 극중 김군 역을 소화한 최우식에게 차기작 계획에 대해 물었다. 영화 ‘마녀’(2018)를 준비 중이던 그는 몸을 키울 예정이라고 답했고, 봉준호 감독은 ‘마른 몸’을 유지하길 당부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여전히 마른 몸을 유지하고 있던 최우식에게 영화 ‘기생충’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었고, ‘대선배’ 송강호가 이미 캐스팅된 상태였다. 분량도 어마어마했다. ‘옥자’에서 거의 단역에 가까운 분량을 소화했던 그는 ‘기생충’에서 스토리의 시작점에 위치하는 큰 역할을 부여받았다.

최우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려’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 ‘무려’ 송강호의 아들 역이었다. 송강호보다 근소한 차이로 분량도 많았다. 부담감에 어깨는 무거웠고, 긴장을 떨칠 수 없었다. 하지만 최우식은 기어코 해내고야 말았다. 그것도 흠잡을 데 없이 아주 완벽하게… 최우식은 그렇게 또 한 뼘 성장했다.

‘기생충’에서 전원 백수 가족의 장남 기우로 분한 최우식 캐릭터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생충’에서 전원 백수 가족의 장남 기우로 분한 최우식 캐릭터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최우식 분)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 분)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기생충’은 개봉 4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국내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극중 최우식은 전원 백수 가족의 장남 기우 역을 맡아 우리 시대 청년의 얼굴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그려내며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스토리의 시작과 끝에 위치하며 유독 많은 분량을 소화하는데, 극의 중심을 이끌며 제 몫 그 이상을 해냈다는 평이다.

최우식은 ‘거인’(2014)에서 불안하고 위악적인 10대 영재를 연기하며 신인남우상을 휩쓸었다. 봉준호 감독과의 첫 만남인 ‘옥자’에서는 ‘4대 보험도 없는 비정규직’ 김군으로 분해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지난해 개봉한 ‘마녀’를 통해서는 속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인물 귀공자 역으로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선보여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매 작품 성장을 거듭하는 최우식은 ‘기생충’에서도 다시 한 번 진화한 모습으로 관객과 봉준호 감독의 믿음에 제대로 화답했다. 5월의 마지막 날 <시사위크>와 만난 최우식은 “‘기생충’으로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황금종려상도 받고 국내 관객 반응도 좋다. 기분이 어떤가.
“이 작품에 한 일원으로서 함께할 수 있었던 것도 너무 행복하고 영광이었다. 그런데 너무 감사하게 칸에 초청받고, 생각하지 못한 큰 상도 받고, 국내에서 너무 많은 기대와 관심을 받았다. 기쁨의 연속인 것 같다. 사실 한국 반응이 더 궁금했다.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했는데, 다행히 개봉 후 반응이 좋아서 너무 좋다. 배우들한테는 정말 둘도 없는 응원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극을 끌고 가는 역할인데, 부담은 되지 않았나.
“어깨가 많이 무거웠다. 그런데 내가 끌고 가야 한다고는 생각 안 했다. 우리 가족뿐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다 같이 끌고 가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내가 무슨 역할인지도 몰랐고, (영화가) 무슨 장르인지도 몰랐다. 내가 기우라는 것을 알고 시나리오를 보는데 계속 기우만 나오는 거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이었고,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이 들었다. 게다가 아버지는 무려 송강호 선배고, 봉준호 감독님의 작품이지 않나. 그래서 사실 칸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즐길 수도 있는 분위기지만 지금도 부담감이 크고 긴장도 많이 하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치만큼 ‘내가 잘했나’라는 생각도 들고… 묘한 상태다.”

최우식이 ‘기생충’을 소화한 소감을 밝혔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최우식이 ‘기생충’을 소화한 소감을 밝혔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난해한 영화는 아니지만,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와 연기를 했을 때 또 완성된 영화를 봤을 때 느낌이 다 달랐을 것 같다.
“맞다. 연기를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기우의 입장에서 모든 걸 바라보기 때문에 놓친 것도 많고, 완전히 다르게 해석해서 연기했던 것도 있었다. (봉준호) 감독님이 따로 답을 주진 않았다. 그래서 내가 해석한 대로 연기를 했다. 칸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조여정(연교 역) 선배와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상징적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눴다. 그러고 나서 (영화를) 다시 봤는데 또 다르게 다가오더라. 관객들도 서로 토론하고 얘기하면서 계속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

-장르가 정해져있지 않은 영화였는데, 연기하기 어렵진 않았나.
“관객 입장에서 봤을 때는 신기하고 어려울 수도 있고, 생소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배우로서는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너무 매력적이었다. 장르 하나하나를 넘어가면서도 정말 다양한 표정들과 얼굴이 나오기 때문에 연기하면서 정말 즐거웠다. 여러 편의 영화를 한 번에 축소해서 연기한 느낌이었다. 그 과정이 너무 즐거웠다.”

-봉준호 감독이 시나리오 쓰기 전부터 최우식을 염두에 뒀다고 들었다. 처음 제안을 받고 어땠나.
“‘옥자’ 김군 이후에 제안을 받았다. 그때는 (봉준호 감독이) 다음 작품을 같이 하자가 아니라 ‘다음에 뭐 해? 계획이 뭐야?’라고 흘리듯 이야기했다. ‘마녀’ 때문에 운동하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감독님이 ‘운동하지 말고 그대로 유지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하셔서 ‘아 뭔가가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운이 좋다고도 생각했고, 정말 감사했다. 봉준호 감독님이 ‘거인’ 속 영재와 ‘옥자’ 속 김군의 모습,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느낌을 조합해서 캐스팅하셨다고 하더라. 엄청 많은 양의 작품과 수많은 배우들을 보셨을 텐데 그중 한명으로 (나를) 선택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이 영화를 한다는 것도 비밀이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혼자 속으로 되게 좋은데 누구한테 얘기할 수도 없고 엄청 떨렸다.”

최우식이 ‘기생충’ 캐스팅 비하인드스토리를 공개했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최우식이 ‘기생충’ 캐스팅 비하인드스토리를 공개했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극중 기우가 범죄를 저지르긴 하지만, 악하게 느껴지는 인물은 아니었다.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나.
“사기를 치는 건 팩트인데, 과정이나 이유, 노력 등은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어서 밉지 않았던 것 같았다. 기우가 본인을 위해서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 애써서 노력을 하는데 단지 그 과정이 올바른 길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우리 영화의 매력이 악한 사람이 없는 것이지 않나. 그만큼 기우가 하는 행동들이 더 절실해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표현하고자 했다.” 

-기택이 가장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데, 기우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기는커녕 살뜰히 챙긴다. 기택과 기우의 부자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하고 접근했나.
“기택뿐 아니라 기우와 기정(박소담 분)도 현실 남매보다 더 사랑하고 서로 돕는다. 힘든 환경이 우리 가족을 더 똘똘 뭉치게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전원 백수 가족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부족한 가족이라고 생각하는데, 남부럽지 않게 서로 사랑하는 식구다. 충숙(기택 아내, 장혜진 분)과 기택이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을 보고 기우도 많이 배운 게 아닌가 싶다. ‘우리 가족은 반지하에 살고, 박사장 가족은 좋은 집에 살아서 더 행복하다’는 아니지 않나. 어디에 살고 있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았다.”

-기택은 계획이 없는 가장인데, 기우는 계획을 세운다. 어떤 쪽에 더 공감이 됐나.
“크면서는 계획을 세웠던 것 같다. 큰 계획들. 고등학교 졸업하면 대학교에 무조건 들어가야 하고, 사회에 가서 결혼하면 애 낳고 그런 계획들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 그 계획들이 다 없어졌다. 워낙 불규칙하지 않나.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더라.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잘 되는 경우도 있고, 기대를 했는데 잘 안되는 경우도 많다. 기택처럼 무계획으로 사는 건 아니지만 내가 상처를 덜 받기 위한 자기방어가 생긴 것 같다. 기우도 기택에게 공감하지 못했을 거다. 아직 못 겪어봤기 때문에… 그런데 기택은 다 겪었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살지 않았을까 싶다.”

매 작품 성장해서 돌아오는 최우식.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매 작품 성장해서 돌아오는 최우식.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기생충’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부터 개봉까지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자면.
“여러 가지 장면들이 막 떠오른다. 처음 감독님이 같이 하자고 했을 때, 처음 대본을 봤을 때, 또 우리끼리 뒹굴면서 엉켜있던 장면을 찍었을 때, 최근 칸 초청까지 정말 많은 순간들이 기억에 남는다. 새벽 네시에 함께 그런 순간(황금종려상 수상)을 맞았을 때도 기억에 남는다. 특히 처음 봉준호 감독님이 같이 하자고 했을 때가 상 받았을 때만큼 너무 좋았다.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마녀’를 통해서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고, ‘기생충’을 통해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연이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기대를 했던 것보다 안 나올 때도 있고 기대를 안 했던 것들이 갑자기 될 때도 있고 그래서 기택 아버지의 무계획이 맞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앞으로 나 자신에 대한 기대는 해야 할 것 같다. 작품에 대한 기대도 있지만, 나 자신에 대한 기대. 자신감도 그렇고… 그런 게 있어야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자신감이) 너무 부족해서 가끔은 해가 될 때도 있다.

‘거인’ 때도 자신감이 없었다. 그런데 상을 받고 나니 전에는 확실하지 않았던 길이었는데 ‘그래도 내가 잘 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신감이 올라갔다. ‘기생충’도 큰 상을 받고, 모든 사람들이 주목해주는데 그런 영화의 일원으로 나오지 않았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좋은 궤도에 올라온 것 같다. 자신감이 많이 필요한 시기인데, ‘기생충’을 통해 자신감을 찾게 된 것 같다.”

-더 많은 작품과 만나겠지만, ‘기생충’은 특히 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  
“영화 속 사건이 기우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것처럼 나에게도 ‘기생충’과 함께 한 타임라인이 엄청나게 큰 영향을 줄 것 같다. 정말 기억에 많이 남고, 더 성장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정말 즐겁게 마음 잘 맞는 사람들과 함께 했다. 여운이 엄청 많이 남을 것도 같다. 다음 작품, 더 좋은 작품을 위해서도 ‘기생충’은 좋은 경험으로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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