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돌아왔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돌아왔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칸 국제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탄생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이 그 주인공이다.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는 기념비적인 해에 한국 영화의 가치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역사적 사건이자 영광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작 이 어마어마한 업적을 달성한 봉준호 감독에게 칸의 영광은 벌써 과거가 됐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다음 작품 시나리오를 썼단다. 아직은 더 즐겨도 될 법한데, 창작자의 발전에 지장을 줄 것 같아 빨리 잊으려고 노력 중이란다. 안주하지 않고 끝없이 나아가는 봉준호 감독. 그가 실패하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최우식 분)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 분)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기생충’은 지난 6일 관객수 500만명을 돌파하며 국내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이 선보이는 일곱 번째 장편 영화다. 봉 감독은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를 시작으로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옥자’(2017)까지 허를 찌르는 상상력과 새로운 이야기로 관객과 평단의 마음을 사로잡아왔다. 

‘기생충’도 ‘봉준호’다운 영화다. 여기에 한층 진화된 그의 세계관을 느낄 수 있다. 부자 가족과 가난한 가족을 통해 보편적 현상인 빈부격차, 계급사회 등 익숙한 소재를 활용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탄생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봉 감독 특유의 대담한 상상력으로 빚어낸 흥미로운 스토리와 새로운 캐릭터, 사회에 대한 풍자와 날 선 비판 등을 적절히 배합해 호평을 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일곱번째 장편 영화 ‘기생충’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봉준호 감독의 일곱번째 장편 영화 ‘기생충’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개봉 다음날 <시사위크>와 만난 봉준호 감독은 “정신건강을 위해 인터넷을 못 보고 있다”면서 긴장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칸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귀국 당시 인천공항이 취재진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뜨거운 환대를 받았는데, 어땠나.  
“되게 황당했다. 태연한 척했지만, 적응이 안 됐다. 살다 보니 이런 일이 다 있구나 싶었다. 올림픽에 갔다 온 것처럼 환영을 받았다. 영화인이 스포츠인을 흉내 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많은 분들이 기다려주셔서 감사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민망하기도 하고 적응이 잘 안됐다. 평생 그런 일이 또 있을까 싶다. 한 번인 거지 뭐. 하하.” 

-한국 영화 100년을 맞이하는 해에 엄청난 결실을 맺었다. 황금종려상 축하한다. 
“감사하다. 칸은 벌써 다 잊었다. 하하. 과거가 됐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시나리오를 썼다. 되도록 빨리 잊으려고 하고, 잊혔으면 좋겠다. 꼬리표가 되면 안 좋을 것 같다. 창작자의 발전에 지장을 줄 것 같다. 그래서 빨리 잊으려고 하고 있다.”

-드디어 국내에도 개봉을 했다.
“그래서 인터넷을 못보고 있다. 정신건강을 위해서 안 보는 게 낫더라. 주변 분들에게 일반 관객들 반응이 어떠냐고 물어보고 있다. 그런데 나한테 잘 필터링을 해서 얘기할 것 아닌가. 정신적 외상을 입지 않게 하기 위해 방어막을 한 번 치는 것 같다. 되게 두렵다.”

-관객들의 기대치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 공포감이 있는 거다. 청룡상이든 아카데미든 영화가 개봉을 하고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상을 주는 건데, 칸·베를린·베니스 영화제는 개봉하기 전에 상을 주지 않나. 상이라는 거대한 이미지가 이미 덮어씌워진 상태에서 영화를 접하게 되는 거다. 순기능도 있고, 역기능도 있을 텐데 어떻게 반응들이 전개돼 나갈지 궁금하면서도 두렵다. 상을 받았다고 해서 영화가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3월 말에 후반 작업을 다 끝냈고, 칸에서 초청을 했다. 상을 받고 나서 더 만진 것도 아니고, 영화는 영화 그 자체로 그대로 있다. 그런데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는 마크를 넣어야 한다. 시작할 때부터 그 마크가 등장하는 거다. 칸 규정이라 거부는 못하는데, 너무 부담스럽다. 영화는 그 자체로 오감을 열고 편안하게 봐야 하는데… 좋은 일인데, 약간 우려되기도 하고 그렇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배우들을 향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배우들을 향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자본주의·계급사회에 대해 다뤘다. 전작인 ‘설국열차’ ‘옥자’에 이어지는 시리즈 같기도 하다. ‘기생충’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더 담고 싶었나.
“누군가는 ‘자본 3부작’이라고 하더라. 굳이 묶자면 그럴 수도 있긴 하겠다. 하지만 ‘설국열차’ ‘옥자’는 SF 성향이 있는 영화고, ‘기생충’은 우리 주변의 이야기다. 격렬한 파국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을만한 사람들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 펼쳐지는 얘기라 사회·과학적인 단어를 붙이기가 왠지 꺼려진다. 학교 다닐 때 가난한 친구도 있고, 부자인 친구도 있고 그랬지 않나. 친척 중에도 그렇다. 실제 우리 옆에 존재하고, 피부에 와닿는 거다. 가난함 또는 부유함에 의해서 서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갔을 때 어떤 파국의 에너지가 폭발하는지에 대한 영화다. 이렇게 표현하는 게 우리 영화의 느낌과 더 잘 맞지 않나 싶다.”

-모든 캐릭터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물들 간의 균형을 잡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 같은데. 
“배우들의 덕이 크다. 연기를 잘해서 그렇게 된 거라 배우들한테 고맙다. 배치는 내가 한 거다. 축구 감독도 그렇지 않나. 그런데 직접 그들의 패스와 킥까지 조정하는 것은 아니다. 전술을 부여하고 배치를 주면, 그다음은 알아서 그들이 골을 넣고 패스를 하고 상대 선수를 제친다. 나와 배우들의 관계도 비슷한 것 같다. 내가 쓴 대본에 내가 쓴 대사를 갖고 그들이 카메라 앞으로 간다. 그리고 그들을 내가 배치한다. 내가 가장 세심하게 직접 만져주는 것은 배우와 카메라의 관계다. 영화란 것은 카메라라는 기계적 메커니즘을 능숙하게 다뤄야만 한다. 카메라도 배우와 같이 연기하는 느낌이 드는 미묘한 순간들이 있다. 그걸 내가 정리하고, 세밀하게 가이드 한다. 표정이나 대사를 내뱉는 등 연기적 부분에서는 메시가 상대 수비를 제칠 때처럼, 배우의 개인기와 감수성이 활짝 꽃이 피면서 마무리되는 거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컨트롤한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마음껏 드리블하고 슛을 날리게끔 편하게 해주는 게 중요한 부분이다.” 

-‘기생충’은 극과 극인 두 가족에서 출발을 한다. 어떻게 구상했나.
“말 그대로 극과 극인데, 또 너무 극과 극으로 가다 보면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모습이 나올 수 있지 않나. 서로 돕고 마음 착한 가난한 사람들과 기름기가 흐르고 탐욕스럽고 갑질을 하는 부자, 단순한 도식처럼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요즘 시대에 영화 속의 악당이나 정의의 사도처럼 쉽게 구분이 안 되잖나.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인물들의 미세한 레이어를 만들고 싶었다.

가난한 주인공인데, 마냥 천사는 아니다. 사실 사기를 치는 거다. 죄의식도 별로 없다. 합리화도 잘한다. 하지만 능력이 없진 않다. 영어도 잘하고, 재주도 있고, 사지육신이 멀쩡하다. 그런데 시대의 상황 때문에 이들이 놀고 있는 거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픈 거고…그러다 보니 그들이 귀여워 보이고, 마음을 열게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부자들도 뉴스에서 흔히 만나는 노골적인 갑질을 해대는 사람들은 아니다. 고급스러운 취향을 과시하면서도 세련된 매너를 가진 사람들이다. 연교(조여정 분)는 나름 맑아 보인다. 부잣집 캐릭터도 나름 귀여운 면이 있다. 뒤로 가면서 레이어가 하나씩 벗겨지지만… 선과 악을 쉽게 가르는 것이 만만치 않은 느낌을 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배우들이 미묘하게 잘 소화해준 것 같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뒤 기쁨을 나누고 있는 송강호(왼쪽)과 봉준호 감독./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뒤 기쁨을 나누고 있는 송강호(왼쪽)과 봉준호 감독./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송강호와 네 번째 만남이다. 봉준호에게 송강호란?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는 ‘살인의 추억’(2003)을 시작으로 ‘괴물’(2006), ‘설국열차’(2013), 그리고 ‘기생충’까지 함께 했다.)
“워낙 많이 얘기를 했던 부분이라, 오늘은 다르게 표현을 해보고 싶다. 감독이 가진 유치한 질투심에 관해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다. 나랑 네 편을 했지만, 그 사이 다른 감독과 작업을 하지 않나. 배우나 감독들이 다 가진 단순하고 유치한 그러나 귀여운 질투심 같은 게 있다. ‘저 배우의 최고작이 나랑 한 작품이었으면’ 하는….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저 감독의 최고작이 내가 주연한 영화였으면….

늘 모든 작품에서 명연기를 하고 위대한 연기를 하는데, 나의 관점이나 취향 등 여러 가지를 섞어서 봤을 때 송강호의 최고작은 항상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생각했었다. 신의 경지에 있는 느낌이랄까. 메시가 상대 수비 열 명을 제치고 가는 느낌, 드리블 자체를 하고 있지도 않은 것 같은 느낌, 전도연의 후방에서 슬며시 왔다 갔다 하면서 보이지 않게 작품의 공기를 만들어버리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송강호의 최고작은 ‘밀양’이 아닌가 생각을 하는데, 동시에 어린아이 같은 질투심도 든다. 송강호의 최고작이 내 영화라면 얼마나 좋을까. ‘기생충’? 아직 모르겠다. 관객들이 판단할 부분이고 시간이 지나서 따져야 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송강호라는 배우를 국한시켜놓고 봤을 때 ‘기생충’에서 보이는 위대한 모멘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이기에 가능한 순간들…”

-그렇다면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최고작인가.
“그게 무서워서 인터넷을 못 보고 있다. 하하. 내 나름의 순서? 그런 것은 언제든 정할 수 있겠지만, 정해봤자 헛헛한 거다. 관객들이 어떻게 여기냐가 궁금하다.”

-‘상을 받은 영화는 어려울 거다’라는 선입견도 있다. ‘기생충’은 그렇지 않다는 평이 많다. 봉준호 감독의 다른 영화들도 작품성을 인정받으면서도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를 만들 때 예술성이나 상업성 등 어떻게 균형을 맞추고 있나.
“균형을 맞춘다는 건 결국 저울질한다는 건데, 그렇게 접근을 못한다. 홍보를 하는 분이 보기엔 무책임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런 저울질을 못하겠더라. 예술성이나 대중성, 이렇게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덩어리로 생각한다. 그냥 나 자신이 재밌어 하고 있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다. 가장 무책임한 얘기지만,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찍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명쾌하지만 위험한 논리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은 사실이다. 내가 재미있는지, 나 자신에 충실하려고 한다. 감독이기 전에 영화광이었기 때문에, ‘덕후’인 나를 재밌게 해줄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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