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에 김치·와인 강매… ‘신종 일감몰아주기’로 총수·계열사 줄고발
이호진, 대법 판결 앞두고 추가 검찰 수사 이어질지 주목
시사위크=서종규 기자 태광그룹의 일감몰아주기가 재차 수면 위로 올랐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태광그룹의 일감몰아주기에 대해 전방위 조사를 벌인 결과 이호진 전 회장을 비롯 19개 계열사를 무더기 검찰 고발한 것.
태광은 지난해 ‘횡령·배임 혐의’로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된 이 전 회장의 병보석 논란을 넘어 ‘휘슬링락CC’에서의 전방위 골프 접대 정황도 드러난 상황이다. 여기에 공정위의 조사 결과, 계열사를 동원해 총수일가 소유 회사에 일감을 몰아준 혐의까지 드러나면서 연일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공정위가 이 전 회장을 고발 대상에 포함시켜 이목이 쏠린다. 이 전 회장이 이미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검찰의 일감몰아주기 수사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 김치에 와인까지… 신종 일감몰아주기 ‘덜미’
17일 공정위는 태광그룹과 계열사에 과징금 21억8,000만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총수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가 생산한 김치와 와인 등을 전 계열사를 동원해 사들인 혐의다. 이와 함께 이호진 전 회장, 김기유 그룹 경영기획실장 등 경영진과 태광산업, 흥국생명, 티시스 등 19개 계열사를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는 김치와 와인 등을 계열사에 판매해 총수일가가 얻은 부당이익이 최소 3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호진 전 회장은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경영기획실을 통해 그룹 경영을 사실상 총괄하는 구조 하에서 총수일가 소유의 회사인 ‘휘슬링락CC‘가 생산한 95억원 가량의 김치를 전 계열사에 구매하도록 했다. 또한 총수 일가 소유회사인 ’메르뱅‘으로부터 46억원 가량의 와인을 합리적 고려나 비교과정 없이 구매하도록 했다.
공정위 조사 결과, 2011년 설립된 ‘휘슬링락CC’는 계열사 티시스와 합병한 뒤 실적이 악화되자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일감몰아주기를 계획했다. 티시스는 그룹 내 핵심 기업인 태광산업의 지분 11.22%를 보유하는 등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회사였다.
이에 다수의 총수 일가 회사에서 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김기유 경영기회실장은 이호진 전 회장의 지시 하에 2013년 12월 김치를 제조, 계열사에 고가로 판매하기로 계획했다.
김기유 실장은 2014년 5월 경영기획실이 설치되자 실장으로 재직하며 각 계열사의 김치 단가를 정하고 구매수량까지 할당해 구매를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2016년 9월 공정위의 현장조사가 시작되자 휘슬링락CC는 경영기획실의 지시에 따라 김치 생산을 중단했다.
메르뱅은 2008년 설립된 총수일가 100% 출자 회사로 와인 소매 유통업을 영위해왔다. 태광 경영기획실은 2014년 7월 ‘그룹 시너지’ 재고를 위해 내부거래 확대를 도모했고, 그 일환으로 계열사간 선물 제공시 메르뱅 와인을 적극 활용하도록 했다. 2014년 8월에는 메르뱅 와인을 임직원 명절 선물로 지급할 것을 각 계열사에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태광의 전 계열사들은 와인 유통시장에서 500여개 업체가 경쟁하고 있음에도 거래조건에 대한 합리적 고려나 타 사업자와 비교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경영기획실의 지시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에 태광은 “이호진 전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그룹 경영 개입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 검찰 수사 ‘또’ 받나… 파기환송 ‘승부수’ 무색
법조계에선 공정위의 이번 검찰 고발이 이호진 전 회장에게 상당한 치명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횡령과 배임 혐의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일감몰아주기 혐의로 검찰의 추가 조사 가능성이 점쳐지기 때문. 앞서 이호진 전 회장의 판결을 두고 두 차례 재파기환송심을 거친 만큼 대법원에서의 실형 확정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2심 재판부는 지난 2월 재파기환송심에서 이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고, 이 전 회장은 4월 대법원에 상고했다.
대법원에서의 최종 판결과 별도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다면 이호진 전 회장은 구속 상태로 별도의 수사를 받게 될 전망이다. 기존 횡령·배임 혐의와는 별개의 혐의다.
한편 재계 일각에서는 이호진 전 회장이 지난 4월 태광산업 등 차명주식을 실명전환한 것을 두고 대법원에서의 파기환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승부수’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번 일감몰아주기 혐의로 검찰의 수사가 예고되면서 이 전 회장의 차명주식 실명전환이라는 ‘승부수’는 무색해진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