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정계성 기자  김상조 정책실장을 실제로 처음 본 것은 대선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2017년 4월이다. 경제개혁연대 소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이다. 박범계 의원의 주선으로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을 통해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의 안렙 BW발행 의혹을 제기했었다. 이른바 ‘백브리핑’에서 기자의 질문에 원인부터 결과까지 차분히 설명했는데, 경제학자의 날카로움과 교수 특유의 까칠함이 묻어나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약 2년 뒤 청와대에서 다시 만난 김상조 실장의 아우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여유에서 나오는 완급조절, 그리고 부드러움이 돋보였다. 아마도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재직하며 우호적 언론뿐만 아니라 비우호적인 언론을 상대하면서 쌓인 관록이 아닐까 싶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기자들과 우호적으로 지냈는데, 어공이 된 이후 제가 생각했던 대언론 관계가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초반부에 느낄 기회가 있었다”고 그는 공정거래위원장 시절을 회고했다.

그래서였을까.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만난 첫 상견례 자리에서 김 실장은 유독 소통과 유연함을 강조했다. ‘시민단체출신’ ‘케인즈 학파’ ‘재벌저격수’ 등 자신을 규정하는 강경한 이미지나 프레임을 희석하고 앞으로의 정책 방향에 ‘유연성’을 가미하겠다는 의지였다. “폰 하이에크의 책에서 깊은 감명을 느꼈다”며 “선험적 정답이 있다고 하는 것은 경제학자의 태도가 아니다”라는 상징적인 말도 했다. 폰 하이에크는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자유주의 경제학자다. 몇몇 기자들은 이 대목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이임사를 하고 있는 김상조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 /뉴시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이임사를 하고 있는 김상조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 /뉴시스

여전히 ‘투머치토커’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장 이임식을 마치고 잠깐 기자실에 들렀다가 1시간이 넘도록 질의응답과 토론을 했다고 한다. 발언을 노트북에 기록하는 기자의 손가락이 마비될 정도로 김 실장은 말이 길고 자세하다. 청와대 기자들과의 상견례도 예정된 시각을 충분히 넘겼다. 옆에서 “짧게! 짧게!” “마지막 질문으로 받겠습니다”를 연거푸 외치는 유송화 춘추관장을 향해, 김 실장은 “공정위 대변인도 저랬는데...”라며 겸연쩍게 웃는다.

‘투머치토커’의 사전적 의미는 “필요 외의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전적 의미와 다르게 친숙함의 드러내는 유머코드로 사용된다. ‘투머치토커’의 대표주자로는 박찬호 선수가 있다. ‘투머치토커’ 이미지를 살려 광고에 출연하는 것을 보면 박찬호 선수는 애칭을 반기는 것 같다. 소통이 부재하다는 시대에 ‘투머치토커’는 오히려 미덕이 아닐까.

청와대 출입기자라고 하지만, 청와대 내 일을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청와대 경내 출입이 제한되고, 하루 1~2회 진행되는 정례브리핑만이 거의 유일한 취재 창구이기 때문이다. 브리핑 제도의 한계다. 대변인이 전하는 정제된 발언만으로는 소통이 쉽지 않고, 감시와 견제라는 언론의 역할도 다하기 어렵다.

그 간극을 메워주는 것은 실무책임자들의 더 많은 브리핑과 자세한 질의응답이다. 실장과 수석 등 핵심 참모들은 자주 춘추관을 찾겠다는 약속을 하지만 실제로 지켜진 적은 거의 없다. 김수현 전 정책실장이나 장하성 전 정책실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정책 방향이나 정부의 고민을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는 김상조 신임 정책실장의 말은 가뭄의 단비처럼 느껴진다. ‘투머치토커’ 박찬호 선수처럼, 친숙함과 유연함을 무장한 김 실장의 활약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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