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올해 지난 해 대비 건강보험료를 3.49% 인상했었습니다. 그런데 국민 대다수가 두루 어려운 현재의 여건 속에서 인상된 보험료에 적응하기도 전에, 최근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계획의 일환으로 제13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내년도 역시 건강보험료율을 조급하게 또 다시 3.49% 인상하려 하였으나, 노동계와 경영계 등 관련 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인상안이 무산됐다고 합니다. 필자의 견해로는 단지 좁은 안목으로 건강보험 재정 확충에만 초점을 맞추었지, 관련 부처 및 단체와의 인상 파급 효과에 관한 심도 있는 소통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사려 됩니다.

한편 한국 국민의 기질을 잘 드러내는 단어들 가운데 하나를 들라고 하면 아마 ‘빨리빨리’와 관련된 ‘조급성(躁急性)’도 포함될 것입니다. 그런데 필자의 견해로는 이런 조급성이 심해지면 ‘조현증(調絃症)’으로 발현되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한의사분들 가운데에는 ‘조급성’도 ‘조급증(躁急症)’이란 질병으로 보고 명상을 병행하며 한방요법에 의한 치료를 권장하는 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덧붙여 비단 의료 분야뿐만이 아니라 규모면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조직을 이끌어가는 책임자가 임기 내에 탁상공론(卓上空論)일 수도 있는 이상적인 계획을 심도 있는 검증절차도 없이 무리하게 실현하려는 조급증은 조직을 빠른 시일 내에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사례와 함께 ‘조급한 마음 다스림’에 관해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 신중한 두 개선 사례

비록 오래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필자가 1985년 여름 개인적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민관불이(民官不二) : 먼저 공적(公的)인 의료보험제도 개선 사례입니다. 의료보험 재정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관련 국가위원회에서 1983년부터 3년 간 50여 차례의 회의를 거치며 이해 당사자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경청하며 조율한 결과 의료보험료를 1% 인상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당시 접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것은 국민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 인상안을 1987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는 점으로 ‘민관불이(民官不二)’의 자세를 잘 엿볼 수 있었습니다.

노사불이(勞使不二) : 다음은 사적(私的)인, 한 대기업의 노사 임금 협상 사례입니다. 사측과 노조측이 다음 해 임금에 대해 협상을 가졌는데, 뉴스를 통해 들은 그 결과는 정말 필자의 귀를 의심하게 했습니다. 사측에서 먼저 5% 인상안을 제시하자 노조측에서 ‘우리가 철저히 분석 검토한 바에 따르면 2% 인상이 적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같은 대기업이 그 이상을 인상하면 다른 기업들에게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고, 결국 사회 전반에 걸쳐 파급되면서 이로 인해 물가 상승폭이 예상보다 높이 증가해 결국 실질 임금 상승폭이 2% 인상안 보다 낮게 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필자의 견해로는 노사가 서로 소통하며 틀린 견해가 아닌 이견(異見), 즉 서로 다른 견해의 장점들을 적극 수용하며 기업을 함께 발전시켜가는 ‘노사불이(勞使不二)’의 멋진 상생(相生) 문화 또한 잘 엿볼 수 있었습니다.

◇ 조급한 마음 다스림의 두 사례

한편 서로 소통하며 상생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상의 삶 속에서 조급성을 스스로 제어하며 배려하고 기다릴 줄 아는 마음공부가 선행(先行)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영적 스승들의 ‘조급한 마음 다스림’과 관련한 두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물유재아(物有在我) : 천주교의 ‘예수회’란 수도회에는 창립자인 이냐시오 성인이 체계화한, 명상의 일종인 ‘영성수련’이란 마음공부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회 소속 수도자들은 영성수련을 통해 보다 쉽게 느긋한 마음 자세를 확립하게 됩니다. 그 구체적인 사례로 동서양 문화의 가교 역활을 했던 예수회 소속의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 신부가 편찬한 저서 <이십오언(二十五言)> 가운데 맨 첫 번째에 나오는, ‘어떤 것은 나의 권한 범위 안에 있을 경우[물유재아(物有在我)]’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것은 나의 권한 범위 안에 있으나 어떤 것은 나의 권한 밖에 있다. 욕망이나 의지나 근면이나 회피 등과 같은 나의 행위의 대상은 모두 나의 권한 안에 있다. 그러나 재화나 벼슬이나 명예나 수명 등과 같이 나의 행위의 대상이 아닌 것은 모두 나의 권한 안에 있지 않다. 따라서 나의 권한 안에 있는 것은 유지하기 쉬우나 나의 권한 밖에 있는 것은 이루기가 어렵다.

가령 남의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려 하고, 나의 것을 남의 것으로 만들려 하면, 반드시 본성에 어긋나며 반드시 세상 사람들을 원망하게 되며 또한 그 원망이 하느님(불자의 경우 부처님으로 새기면 됨)에게까지 미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나의 것만을 나의 것으로 하고, 남의 것을 남의 것으로 있게 놔두면, 곧 마음은 평온하고 몸은 편안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거스름을 당할 것도 없으며 원통할 것도 없으며, 원망할 것도 없고, 자기에게 해가 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무릇 마음 가운데 망상의 싹이 돋아나면 그때 즉시 그것이 어떤 일인지를 통찰하여 만약 그것이 나의 권한 안에 있으면 가로되, ‘내가 잘되기를 바라면 잘되지 않을 일이 없을 것인데, 어찌 조급하게 서두를 것인가?’라고 하고, 만약 그것이 나의 권한 밖에 있으면 곧 가로되, ‘그것은 나와 무관하다.’라고 새기면 되는 것이다.”

향엄격죽(香嚴擊竹) : 두 번째로는 선종(禪宗) 가운데 첫 갈래인 위앙종(潙仰宗)을 창시한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 선사 문하에서 수행했던 향엄지한(香嚴智閑, ?-898) 선사에 관한 일화입니다. 어느 날 향엄은 스승께 ‘깨달음[오도(悟道)]’의 길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스승께서 향엄에게 ‘네가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의 본래면목이 무엇인가?[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란 화두(話頭)를 참구하라고 했습니다. 그후 경전과 조사어록에 정통했던 향엄은 열심히 그동안 독서를 통해 지식적으로 익힌 구절들을 인용해 틈날 때마다 ‘본래면목’에 대한 경계를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스승은 ‘지금 제시한 경계는 경전과 조사어록에 다 있는 남의 이야기지 너의 경계는 아니다!’라며 직접 체험한 네 것을 내놓으라고 다그쳤습니다. 결국 더 이상 제시할 것이 바닥나자 스스로 자질부족을 한탄하며 이번 생에는 깨닫기 어렵다고 생각해 다음 생을 기약하며 스승께 하직 인사를 드리고는, 귀향해 동네 뒷산의 암자에서 수행하는 스님들 뒷바라지 하며 복(福)을 짓는 일에 정성을 다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심(下心), 즉 마음을 철저히 비우며 깨달음에 대한 조급증을 완전히 버리고 지내던 어느 날, 마당을 비질하다가 쓸려나간 작은 돌 자갈이 마당을 둘러 싼 대나무 숲에 부딪쳐 낸 ‘딱’ 하는 소리를 듣고 문득 ‘본래면목’ 화두를 분명하게 타파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즉시 스승인 위산 선사 계신 곳을 향해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예를 정중히 올리고는, ‘아! 스승께서 나를 배려해 단 한 마디도 설해주지 않으셨기에 오늘이 있게 되었구나’하며 감격해 했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모두 무슨 일이든 내 뜻대로 모든 일을 조급하게 처리하려 한다고 빨리 처리될 일도 아니니 틈날 때마다 수식관(數息觀) 호흡을 익히며 마음을 느긋하게 먹는 태도를 기르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시절인연(時節因緣)을 기다리기를 간절히 염원해 봅니다. 아울러 이 지면을 빌어 가끔씩 늦어지는 필자의 원고를 재촉하지 않고 인내(忍耐)하며 늘 기다려주는 편집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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