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니스트
하도겸 칼럼니스트

요즘 주위를 돌아보면 행복해 하는 사람이 없다. 이런 시기에 행복하다고 하면 정말일까? 의심부터 간다. 행복한 척하는 연습에 젖어 있는 사람들의 연출된 만들어진 행복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소위 연예인들이 행복한 척하다 얼마 안가 이혼을 한다든가 등등.

우리는 불행하다고 느낄 때 또는 외로울 때가 점점 많아진다. 함께 있을 때 더 불행하고 더 외롭다. 그런 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그 시간과 장소를 벗어나서 밖에서 행복이나 행운을 열심히 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를 떠나서 밖에서 행복을 찾기란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려운 듯하다. 언제나 행복은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구체적으로 불행 속에 숨겨진 행복을 찾을 수 있을 때 정말 행복해질 수 있다고 왠지 믿고 싶어진다.

혹세무민 하듯이 스포츠, 스피드, 섹스를 넘어서 요즘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 등의 K-pop이나 네플릭스에 푹빠져 버린 우리는 실생활이라는 오프라인을 잊어가고 있다. 마치 외로움과 고통을 벗어나려는 듯이 말이다. 그런 우리들에게 행복은 오직 5G시대를 맞이하는 핸드폰에서만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사진은 보이차 다판에 놓인 차도구들이다.  / 하도겸
사진은 보이차 다판에 놓인 차도구들이다. / 하도겸

행복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실생활에서 오직 불행과 마주하는 것이 아닐까? 싫은 친구를 피하지 않고 만나 여럿이 만나든가, 우연을 빙자해서 몇 시간에 걸쳐 단둘이 식사를 하며 차를 마시며 정다운 이야기를 시도하는 것도 그 하나의 방법으로 충분할 듯 싶다. 그런 가운데 스스로가 상대를 왜 그렇게 피하고 싶었는지 그 이유를 찾고, 또 그 이유처럼 왜 그렇게 오해하고 싶었는지를 행복 찾듯이 찾으면 될 것 같다. 그렇게 스스로의 잘못은 스스로를 고치는 교훈으로 삼고, 상대의 장점은 물론 그에게 받은 고마움과 함께 좋은 추억만을 간직하도록 노력해 본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피하고 도망가는 악순환이 벌어지지 않게 가슴에 매뉴얼처럼 순서도를 새긴다.

행복이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다만 불행이라는 고통속에서 가끔 실마리를 드러내는 듯하다. 진흙 속에 묻힌 연꽃이 처음으로 싹을 내밀 듯이 말이다. 까닭에 고통이 다가왔을 때 그 너머에 행복이 함께 한다고 생각하고 싶다. 고진감래. 쓰디쓴 고통이 다할 때, 드기에 달콤한 행복이 다가온다는 말도 이런 말인 듯 싶다.

우리가 얼마안된 보이차(생차)를 우려서 마실 때 늘 쓴맛이 먼저 다가온다. 하지만 우리면 우릴수록 단맛이 나는데 이 역시 고진감래가 아닌가 싶다. 쓴 맛이 났을 때 버린다면 어떻게 단맛을 느낄 수 있을까? 오랜만에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오면서 든 생각이다. 그 안에는 만나고 싶지 않았던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서 추억을 만들면서 스스로의 잘못만을 보고, 그 추억속에서 행복을 새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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