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정숭호  ▲언론인 ▲전 한국신문윤리위원

1학년짜리 외손녀가 오랜만에 집에 왔다. 처음엔 신나하더니 곧 지루해져서 온몸을 비튼다. 친구도 없고, 장난감도 없고, 만화영화는 재미없는 것만 나오고…, 책은 몇 번씩 읽어서 다 외울 정도. 재미난 이야기 하나 해주겠다며 외손녀를 앞에 앉혔다.

“애들이 학교에서 장기자랑을 하는데, 딴 애들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췄어. 그런데 한 애는 자기 차례가 왔지만 장기가 없으니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했어. 선생님이 그래도 다른 친구는 다 했으니까 너도 하면 좋지 않겠니라고 말씀하니까 얘가 한참 생각하다가 네 선생님, 저도 하나 할게요, 그러고는 앞으로 나갔어. 그런데 얘가 반 친구들을 이렇게 보다가 갑자기 뒤로 돌아서서는 방귀를 뿡하고 뀌었어! 끝.”

외손녀는 “에이, 그게 뭐야?”라며 할아버지의 ‘동화’ 구연을 어이없어했지만 입을 크게 벌리고 웃으면서 제 어미에게 쫓아가 내가 해준 이야기를 옮기고 있었다. “엄마, 어떤 애가 반에서 장기자랑을 하는데 갑자기 뒤로 돌아서더니 방귀를 뿡 뀌었대!”그러고는 또 깔깔거렸다. 심심해하던 외손녀는 내 이야기를 듣고 활력을 되찾았다!

장기자랑에서 방귀 뀐 아이 이야기는 나의 순수한 창작물이다. 하지만 창작의 영감은 어린이를 상대로도 강연을 많이 하는 서울시립과학관장 이정모 박사에게서 얻었다. 이 박사는 ‘방귀를 트는 조건’이라는 글에서 “엄마에게 억지로 끌려온 아이들을 강연에 집중시키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 주제가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이든 뭐든 상관없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를 이용하여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똥과 방귀 그리고 엉덩이다. 이 단어는 아이들의 영혼을 사로잡는다. 이 세 단어를 들은 아이들은 자지러지면서 강연에 집중한다. 이유는 모른다”고 썼다. 이 글에서 1학년짜리 외손녀의 지루함을 끝장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TV예능프로그램에 똥과 방귀, 엉덩이가 넘친다. 화투나 낚시처럼 손으로 하는 걸 잘 못하는 사람에게는 “똥손을 가졌냐?”고 묻고, 머리를 높이 쌓아올린 여자에게는 “똥머리했구나!”, 아랫배가 좀 나온 사람에게는 “똥뱃살 좀 빼세요!”라고 한다. “촬영장에서 갑자기 방귀가 나오는 거예요. 그냥 방귀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몇 걸음 걸으니 엉덩이 아래가 척척한 거예요.”

토크쇼 출연자가 이렇게 말하니까 MC들은 출연자의 말을 막으며 “지렸어요? 방귀만 뀐 게 아니고?”라고 묻는다. ‘똥방귀 로맨스’, ‘똥줄타기’, ‘방귀작렬’ 같은 말이 출연자들의 입에서 나올 때는 반드시 똥과 방귀 그림을 화면에 띄워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뒤태’라며 몸매 좋은 여성 출연자들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건 엉덩이 그림보다는 실물을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것인가?

예능프로그램 제작자들은 나를 포함, 시청자들을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으로 보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똥, 방귀, 엉덩이라는 말을 저렇게 마구 쓰지는 않을 것이니까. 아니면 정말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거나.

예능프로만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뉴스와 시사프로에서도 시청자들의 수준을 낮춰보는 게 많다. 정파적, 이념적 편파성이 분명한 게 얼마나 많나. 상황에 따라 자기 말을 바꾸는 건 예사다. 국민적 관심을 받는 사건이어도 자기 정파, 자기 이념과 배치되면 아예 보도를 안 하거나 수박 겉핥기식으로 다룬다. 그들 머리에 똥이 든 것 같다. 바지 엉덩이 부분이 척척한 상태에서 방송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만 자꾸 보여주는 방송사 사람들에게 외쳐주고 싶다.

“계속 똥이나 싸라!”

초년 기자일 때 처음 배운 것 중 하나가 “기사에 똥은 물론 대변이라는 단어는 쓰지 말 것”이었다. 조간신문에 그런 글자가 들어가면 아침 밥상머리에 냄새를 올리는 것과 같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거의 40년 동안 입에 담지 않았던 똥, 방귀, 엉덩이를 실컷 말하고 나니 시원은 하다만 냄새가 밴 것 같아 개운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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