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연구원
10일 한국경제연구원의 ‘일본 경제 제재의 영향 및 해법 긴급세미나’ 현장. / 한국경제연구원

시사위크=이가영 기자  한국과 일본의 무역분쟁이 본격화 될 양상을 띠면서 관련 중소기업의 시름이 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과 1분기 마이너스 성장, 이로 인한 생산성 악화가 맞물리면서 ‘줄도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10일 한국경제연구원의 ‘일본 경제 제재의 영향 및 해법 긴급세미나’에서 이주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생산량 감소가 현실화될 경우 중소기업들이 연쇄적으로 어려울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며 “국내 중소반도체 업체 약 240곳 중 이미 40% 정도가 지난해 적자를 냈고, 일부는 일본 수출 규제로 인해 1년 안에 도산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일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세 개 핵심소재에 대해 수출 심사를 건별로 받도록 하는 규제를 준비하고 있다. 

일본의 이번 조처는 앞서 한국 대법원이 내린 강제동원 대법원 배상판결에 대한 ‘경제 보복’으로 추측된다. 한국 경제가 반도체 산업 의존도가 높은 점을 노려, 가장 타격이 클만한 보복 조치를 내놓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일각에서는 국산화로 핵심소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과 함께 그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현실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번 규제가 반도체 관련 대표 기업들의 제품 생산에 차질을 가져올 것이라 예측하며 기업 신용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문제는 상황이 지금보다 더 나빠지는 경우다. 전문가들은 한일 양국 간 무역 분쟁 확전 가능성이 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안보상 우호국에게 수출절차를 간소화해 주는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대상에서 한국을 제외하고 추가 수출 규제에 나서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전문가들은 주요 반도체 대기업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외에도 아래 부품·소재 협력업체들로의 피해가 연쇄적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이주완 위원도 일본 정부의 조치가 단순 ‘승인 절차 강화’로 그치는 경우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봤다. 수출이 허가돼 승인에 필요한 약 90일 정도만 어려움이 있고, 큰 피해 없이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 실제 한국수출입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1분기 D램 재고는 반도체 회사 6주분, 수요기업 5주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 중소기업중앙회
중소기업중앙회의 ‘일본정부의 반도체소재 등 수출 제한에 대한 중소기업 의견조사’ 결과.  

문제는 일본이 3개월 후 ‘수출 불허’ 결정을 내리는 경우다. 규제가 단순 ‘승인 지연’이 아닌 ‘불허’를 노린 경우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 경우 반도체 생산이 축소뿐 아니라 생산과 연관된 국내 반도체 소재·장비 업체들도 연쇄적으로 실적 악화를 겪게 된다. 특히 협력 중소기업은 재정 구조가 약해 지금도 적자를 내는 기업이 상당수 있는 상황에서 소재를 확보하지 못하게 될 경우 줄도산 사태까지 발생하게 될 수도 있다. 

실제 10일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일본정부의 반도체소재 등 수출 제한에 대한 중소기업 의견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응답한 중소기업 10곳 가운데 6곳(59.9%)은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응답 업체의 46.8%가 ‘대응책이 없다’고 답해 사태의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아울러 소재 거래처 다변화를 꾀한다 해도 무역분쟁이 확산돼 한국수출제품에 대한 통관지연이 생길 수도 있는 점도 변수다. 

반도체 장비 설계 중소기업 관계자는 “내수부진, 통상, 임금 등 문제가 많은데 일본과의 문제까지 번지면서 막막하다”며 “재고가 남아있어 당장 눈앞의 피해는 없겠지만, 다른 업체로부터 소재를 공급 받는다 해도 제조 라인도 전부 다시 고쳐야 하는 등 문제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소재 국산화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게 단기간에 가능한 것도 아니고, 또 무역규제가 완화되면 품질이 우수한 일본 제품으로 다시 돌아 갈게 불 보듯 뻔한데, 누가 선뜻 (소재)생산을 늘리겠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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