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소재·부품 국산화 실패를 놓고 그 책임에 대한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반도체 소재·부품 국산화 실패를 놓고 그 책임에 대한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시사위크=최수진 기자  반도체 소재·부품 국산화 실패를 놓고 그 책임에 대한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대기업의 무책임한 태도를 지적한 데 대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받아치며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모두 국산 제품을 채택하기 위해 라인에서 테스트 중에 있다.

◇ 박영선 장관 “대기업 탓”… 최태원 회장 “품질 탓”

사태가 발생한 것은 지난 18일이다. 이날 박영선 장관은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국내 중소기업에 불화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 가능하다고 하더라”며 “그런데 대기업이 안 사주는 게 문제라고 했다. 핵심 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박 장관의 발언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최근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반도체 소재 및 부품 국산화의 속도가 나지 않는 문제에 대한 책임이 대기업에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결국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나섰다. 최 회장은 이에 대해 “중국도 반도체를 생산한다”며 “품질의 문제다. 반도체 생산 공정마다 필요한 불화수소 분자의 크기 등 다 달라 공정에 맞는 불화수소가 나와야 하는데 우리 내부에선 그 정도까지 디테일은 못 들어가고 있다”고 반박했다. 

최 회장의 발언을 접한 박 장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며 “20년 전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연구개발(R&D) 투자를 하며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했다면 지금 상황은 어땠을까. 모든 것에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대응했다. 

◇ 국산화 실패, 누구 잘못인가

반도체 소재 및 부품 국산화 실패의 책임에 대한 갑론을박이 격화되고 있다. 박 장관은 대기업의 투자로 국내 기업과의 상생이 가능하다는 반면, 최 회장은 품질에 대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국내 소재를 사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서다.

그런데 이 같은 상황에서 LG디스플레이가 결단을 내렸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LG디스플레이가 대기업 중 처음으로 일본산 불화수소를 대체하기 위해 국내 기업의 불화수소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관련 제품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 시험 생산을 앞두고 있다고 알려졌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국내 기업의 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일본 규제 이후 관련 내용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국내에서 관련 회사를 찾아 테스트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아직 확정된 건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공정에 대한 테스트를 마쳐야 하고, 그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이 알려지자 대기업의 책임에 대한 지적이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사회적 책임이 있음에도 반도체 생태계 선순환에 앞장서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일본 정부의 규제 이후 더딘 국산화 속도가 논란이 되자 급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일본 정부의 규제 이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IT기업들은 국내산 제품뿐 아니라 중국, 대만 등의 다양한 대체 소재에 대한 테스트를 시행하고 있다. 이후 결과에 따라 전략을 수정할 계획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기업의 입장도 난처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국산 제품을 사용하는 공정도 있다”며 “무조건 해외 제품을 사용하는 건 아니다. 국산화도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이 시도가 성공하면 최고의 시나리오다. 일본 제품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고 국내 생태계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 반도체 시장은 글로벌 기업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며 “품질 문제를 일으킬 경우 여기서 오는 타격이 크다. 특정 소재나 부품에서 문제가 생기면 공정 자체가 멈춘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이 지체된다면 기업은 경쟁력을 잃게 된다. 다시 재가동을 하기까지 적게는 수억, 많게는 수십억의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모든 것을 국산화할 수는 없다”며 “기업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관련 공정에 맞는 부품과 소재를 생산하는 기업이 있다면 투자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지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부 부품이나 소재는 국내에서 생산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것도 많다. 결국 외국 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산화 실패의 잘잘못을 따지기 보다는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