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한국에 대한 무역규제 조치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AP-뉴시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한국에 대한 무역규제 조치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AP-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한국 무역규제 조치를 시작으로 한일 간 갈등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미 지난 12일 한국을 안보상 우호국가인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시키겠다고 밝혔다. 현재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3개 품목에 적용되는 규제를 최대 1,100여 품목까지 확대될 수 있다. 법 절차상 이르면 8월 하순 경에는 시행될 전망이다.

정부는 자유무역 질서와 국제규범에 의지해 대응전략을 세웠다. 청와대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가 정부 명의로 이번 규제조치의 부당성을 골자로 한 공식의견을 일본에 전달했다. 일본의 조치가 큰 틀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정신과 협약에 위반된다는 내용도 담았다. 현재 WTO는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를 안건으로 지정하고 논의할 예정이다.

◇ 사내유보금과 국가부채 세계 최악

국제적인 여론은 한국 측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다. 패권다툼이 본질인 미중 무역갈등과 달리, 아베 총리의 규제는 자유무역 기조의 산물인 ‘국가별 분업적 상품 공급 사슬’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블룸버그 통신은 “한국을 상대로 한 아베 신조의 가망 없는 무역전쟁”이라며 “지금까지 글로벌 무역질서를 강화한다는 이유로 존중의 갈채를 받은 지도자로서 위선적 형태”라고 꼬집었다. 나아가 상당수 외신들이 규제강화 조치가 일본에 더 많은 피해를 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베 총리가 출혈까지 감수하며 규제를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이른바 ‘아베노믹스’의 실패가 꼽힌다. 2012년 96대 일본총리에 선출된 아베 총리는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하기 위해 재정확장 정책을 실시했다. 도로와 항만, 항공 등 사회 인프라에 국가의 투자를 크게 늘렸으며,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무제한적으로 돈을 찍어내는 양적완화 정책을 병행했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세를 보였고, 낮아진 엔화 가치로 기업들은 수출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화살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 재정건전성 확보’ 측면에서는 기대했던 성과를 얻지 못했다.

결정적인 원인은 기대했던 낙수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데 있었다. 기업이 살아나면 국민소득이 증대하고 다시 소비와 생산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속에서 세수증가를 예상했지만, 대부분의 수익이 기업에 귀속돼 움직이지 않는 현상이 벌어졌다. 2018년 기준 일본 재무성 통계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은 6년 연속 최대치를 갱신해 4,474조원에 달했다. 이는 GDP 대비로 따졌을 때 미국, 독일은 물론이고 사내유보금 문제로 논란이 됐던 한국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 한국 보다 낮은 국제 신용등급

국내 시민사회단체들이 아베 총리의 무역규제를 규탄하며 촛불집회를 진행했다. /뉴시스
국내 시민사회단체들이 아베 총리의 무역규제를 규탄하며 촛불집회를 진행했다. /뉴시스

아베 총리는 5%에서 8%, 다시 10%까지 소비세율 인상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복지지출로 인해 날로 증가하는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의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은 238%로 여타 국가와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많다. 40% 정도인 한국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지난 7월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는 한국의 신용등급을 Aa2로 평가했는데, 일본 보다 두 단계 높은 결과다.  

물론 OECD 기준 고용률이 76.6%에 달하고, 특히 청년층에서는 완전고용에 가까운 수준을 보이는 등 고용측면에서는 좋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일본의 급격한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결과일 뿐 일본경제 상황과는 관련이 없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실제 일본의 16~64세 기준 고용률은 77%로 매우 높지만, 전체 고용률은 59% 수준이다. 이는 일하지 않는 노인인구의 비율이 많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고용률은 61.4%이며 16~64세 기준으로는 67% 정도다.

따라서 전략물자 관리 등은 명분일 뿐 정책실패를 감추기 위한 방편 등 정치적 필요에 따라 무역규제에 나섰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날 취재진과 만난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이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부분을 근거로 들었다가 대북 수출 규제 위반에 대한 부분으로 또 입장을 얘기했다가 다시 수출 관리로 이유를 들고 있는데 일관성이 없다”며 “스스로 명분이 없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비슷한 인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가 한국 경제의 핵심 경쟁력인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제한으로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높은 성장을 도모하는 시기에 우리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고 나선 것”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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