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범. 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전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우 전 국방홍보원장
김준범.
80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
전 중앙일보 정치부 부장대우
전 국방홍보원장

지난달 속초항으로 몰래 들어온 북한 목선 한 척이 군과 정치권에 예상 밖의 파문을 불러왔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물론 여당조차 경계실패와 허위보고 등 군의 기강해이를 지적했고, 국방부 장관은 전례 없이 몇 번이나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를 해야 했다.

4일 발생한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 허위 자수 사건의 경우, 진실을 축소·은폐하려다 사건 전모가 드러남으로써 군에 대한 불신 사태로까지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거짓말로 사태를 잠재우려다 역효과를 내는 화(禍)를 자초하고 말았다. 군의 오랜 거짓말 관행이 빚은 참사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의원 134명이 공동으로 국방장관 해임건의안을 낸 것은 지나친 정치공세라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군 당국이 처음 북한 목선의 속초항 입항사건을 보고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미숙한 점이 드러나 국민을 실망시킨 점은 몹시 안타깝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군에서 발생하는 소소한 사건·사고 책임까지도 국방장관에게 짊어지게 한다는 것은 신상필벌의 원칙에서도 맞지 않다고 본다. 과거의 사례를 보더라도 제1연평해전이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사건 등 군사적 긴장상황 속에 당시 정부는 국방장관을 경질하지 않고 유임시켰음을 알 수 있다.

장관 취임 6개월 만인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을 겪은 김태영 전 장관의 경우 사건발생 9개월이 지난 2010년 12월에야 김관진 전 장관으로 교체됐다. 이명박 정부 당시 야당인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국방장관 해임건의안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김태영 장관은 사건의 뒤처리와 수습에 치중할 수 있었다.

이번 사태와 관련, 자유한국당은 정경두 장관이 천안함 폭침 사건의 성격을 묻는 야당의원의 질문에 ‘불미스런 충돌’이라고 답변하는 등 북한에 대해 유화적이고 저자세로 임했다는 점 등을 해임건의안 제출의 근거로 들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과거 ‘꼿꼿장수’로 알려진 김장수 전 장관이나 북한군의 도발에 대해 ‘원점타격’ 발언으로 유명해진 김관진 전 장관 등을 정경두 장관과 비교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국방장관과 청와대 안보실장의 지위까지 올랐던 이들 육군 대장 출신 장관들도 소문과는 달리 외화내빈(外華內貧)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찌됐건 이번 일련의 사건은 경계실패 및 허위보고라는 일종의 군내 기강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인식이다. 경계실패와 거짓말 보고는 모두 군의 기강에 해당하는 문제로 장관에게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다. 그런 일로 국방장관을 경질한다면 1년에 열두 번은 장관을 바꿔야 할 것이다.  

군 조직은 장관을 정점으로 그 밑에 수많은 위계별 지휘체계를 갖추고 있다. 각 지휘관들은 직급에 상응하는 책임과 권한이 주어져 있다. 가벼운 경계책임이나 거짓말 보고 같은 관행적인 기강문제는 하급 제대 지휘관에게 그 책임을 물으면 된다.

군사·안보 전문가인 정의당의 김종대 수석대변인(국방위원)은 16일 국방장관 해임안 제출 건에 대해 “기강의 문제는 기강의 문제로 풀어야 한다”고 말하고 “(그것은) 안보논쟁을 과도하게 정치로 끌어들이겠다는 잘못된 의도”라고 지적했다. (YTN 라디오 인터뷰)

그는 이어 “만약 정경두 장관의 책임이 있다면 북한 목선침투 사건에 한해 진상을 정확하게 정리해서 국민들에게 신속하게 알리지 않았다는 데서 일부 실수가 있었던 것”이라며 “그런데 이것이 마치 안보정책이 실패한 것이고 장관이 그동안 북한에 대해서 저자세로 임한 대표적인 실패사례로 몰고 가는 것은 보통 과장한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종대 의원은 또 “군이 지난 한 달 동안 NLL 선상에서 북한 어선을 260척이나 퇴거시키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는데도 동해 목선 하나 뚫린 것으로 정치문제화가 되니까 1조 원짜리가 넘는 군함 3척이 동해에 추가로 투입됐다”며 “안보낭비도 보통 낭비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도 국방장관 해임 건의안 제출 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박지원 의원은 “지금 일본과 사실상 경제전쟁을 하고 있는 마당에 장수를 바꿔서는 안 된다”며 국방장관 경질 불가론을 주장했다. 

그는 “지금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등 여러 가지 경제문제가 있는데 이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일치단결해서 정경두 국방과 강경화 외교장관 등에게도 힘을 실어주고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7/22, KBS 라디오)

그런 가운데 23일에는 동해상에서 사상초유의 사태로 기록될 일촉즉발의 안보위기가 발생했다.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 5대가 우리 영공을 침범해 우리 공군이 360여 발의 경고사격을 한 돌발사태였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미국 백안관의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이 한국을 방문한 날이었다. 

이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왔다. 미·중이 무역전쟁을 하고 있고, 일본이 한국에 경제전쟁을 선포한 가운데 나타난 이번 군용기 영공침범 사건은 다분히 러시아와 중국의 의도적이고 계산된, 그리고 훈련을 가장한 사실상의 도발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웃나라 일본과 전례 없는 경제전을 치르고 있는 와중에 동해상에서 예기치 못한 군사적 긴장 국면이 조성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됐다. 피아(彼我) 구별이 분명한 전쟁 국면에서 지나친 내부갈등은 자칫 자살행위에 가까울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을 건널 때는 타고 가던 말도 바꾸지 않는 법이다. 

이런 마당에 안보 관련 장관(외교·국방)을 해임하라는 요구는 지나친 정치공세를 넘어 제 살을 깎는 어리석은 행위일 수도 있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은 제발 소아(小我)에만 집착하지 말고 대국(大局)을 살피는 큰 안목을 가져보기를 권하고 싶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