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지난 대선 현장유세 때마다 청중을 향해 “이게 나라냐”고 물었다. 최순실 비선실세 논란으로 무너진 국가기강과 불공정한 시스템을 꼬집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그 청사진은 “정의로운 나라 대한민국”이었다. ‘정의로운 대한민국’은 박근혜 정부를 탄핵했던 촛불혁명의 염원이기도 했다.

취임 후 문재인 대통령은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기치 아래 많은 일을 단행했다. 전정권에 대한 적폐수사를 시작으로 경제적 측면에서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공정경제 등이다. 공공기관 채용비리 전수조사 조치와 사법기관 개혁에도 착수했다. 외교적 갈등을 우려해 대법원이 차일피일 미뤄왔던 일본기업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을 마무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의로운 대한민국’에 대해 가장 먼저 청구서를 들이민 곳이 일본이다. 일본은 언제까지나 전략물자 수출관리 측면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역사 문제와 일본 내부의 정략적 목적이라는 것을 우리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기만하는 것과 다름없다. 신중한 성격의 문 대통령도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명백한 무역보복”이라고 못 박을 정도다.

일본과의 관계악화는 어느 정도 예정된 수순이긴 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맺은 한일 위안부 협의를 ‘사실상 파기’했던 것이 시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역사문제와 외교관계는 별개로 취급해야 한다는 투트랙 접근법을 내놨지만, 아베 총리의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더구나 아베 총리는 일본 극우진영을 이끄는 대표 정치인이다. 그럼에도 일본 측이 실질적인 경제보복 단계까지 나아갈 것이라고는 쉽게 예상치 못했다.

이번 경제보복 조치로 더욱 확실해진 것은 일본 극우진영의 인식이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역사 문제가 끝났으며, 그 대가로 한국에 ‘특혜’를 베풀고 있다는 생각이다. 무역 흑자국가가 적자국가를 상대로 무역규제를 하는 조치가 나온 배경일 것이다. 명시적이진 않았지만 우리 역대 정부들도 한미일 안보 공조와 경제적 이익을 이유로 과거사 문제를 덮어온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도 여기에서 자유롭진 않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선제공격을 취하면서,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던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과거사를 일부 양보하고 경제적·안보적 이익을 취하느냐, 아니면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받기 위해 경제적 고통을 감내할 것이냐의 고민이다. 일본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의지가 단호하고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이제는 우리 정부가 분명한 기준과 방향성을 정해야할 시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느 정도 결심을 굳힌 듯하다. 2일 임시국무회의를 주재한 문 대통령은 “우리는 올해 특별히 3.1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새로운 미래 100년을 다짐했다”며 “우리는 충분히 일본을 이겨낼 수 있다”고 했다.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적대국가에게 할 법한 수준의 강도 높은 발언이었다. 경제적 어려움이 있더라도 과거사 문제에서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무엇이 정의인지는 알 수 없다. ‘정의론’의 저자 마이클 샌델이 가장 기준이 명확하다고 평가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정의라면, 문 대통령의 판단은 정의롭지 않다. 반대로 최대다수의 최대이익보다 그 동안 외면해왔던 피해자의 고통을 우선시 하는 것이 정의라면 문 대통령의 판단이 ‘정의로운 대한민국’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그 대가가 무엇이든 간에 국민들이 치러야 할 몫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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