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성찰배경: 최근 점심 식사 후 무더위를 피하며 산책하기 좋은, 서강대 교정 안에 있는 노고산을 올랐습니다. 그런데 예년과 달리 한 나무에 유난히 허물 벗은 ‘매미껍데기[선태각(蟬蛻殼)]’들이 몰려 있어 신기해하며 그 풍광을 몇 장면 찍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매년 매미의 허물을 볼 때마다 필자의 허물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일화들을 되새김질하며 산책을 마쳤습니다. 한편 우리 모두 자신의 허물에 대해서는 늘 너그러우면서도 겸허한 반성은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다른 이들의 허물에 대해서는 매우 공격적인 것 같아 이번 글에서는 ‘매미의 허물’을 빌어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함께 갖고자 합니다.

◇ 허물의 의미

먼저 허물의 첫 번째 사전적 의미는 ‘살갗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꺼풀’ 또는 ‘파충류, 곤충류 따위가 자라면서 벗는 껍질’입니다. 한편 두 번째 사전적 의미는 잘못 저지른 ‘실수(失手)’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의 경우 인터넷을 통해 그 누구를 불문하고 과거의 행적(行蹟)이 낱낱이 들어나고 있는 요즈음, 특히 국내나 국외를 막론하고 언론매체의 관심의 대상인 각계각층을 선도하는 지도층 인사들의 경우에는 자신이 아닌 남을 향한 엄중한 꾸짖음이나 ‘막말 전력(前歷)’이 파문(波紋)을 일으키며 도마 위에 오르내리는 일이 빈번합니다. 따라서 이럴 때일수록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허물없는 사람은 없기에, 각자 미리 일이 커지기 전 매미의 허물과도 같은 자신들의 과거(過去)를 철저히 돌아보며 뼈저리게 참회(懺悔)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는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면서 미래(未來)에 실현 가능한 자기 능력에 맞는 목표를 세우고, 현재(現在)에 온몸을 던져 신바람 나는 세상을 함께 더불어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 드려 봅니다.

◇ 매미의 허물벗기 여정

사실 매미들은 6년에서 많게는 17년이란 긴 시간을 유충(幼蟲)으로 지냅니다. 그런 다음 나무위로 기어 올라가 허물벗기[탈각(脫殼)]를 합니다. 그리고는 대개 겨우 일주일에서 이주일, 길어야 한 달을 생존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 동안 온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다가 짝의 선택을 받으면 2세를 남기고 삶을 마감합니다. 참고로 이 모습을 허물을 벗고 금빛 날개를 가진 성충(成蟲)으로 화려하게 변신하게 된다고 해서 ‘금선탈각(金蟬脫殼)’이라고도 합니다. 물론 매미들이 가장 위험한 허물벗기 과정에서 자연의 섭리에 의해 생존을 위한 고양이, 직박구리 등 천적(天敵)들의 먹잇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언론기사에 따르면 여기에 자연의 섭리에도 없던 ‘관상용 물고기의 먹이용’ 등의 목적으로 매미를 잡는다는 사람들까지 새로운 천적으로 등장하기도 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인위적인 개입이 어디까지 가는 것인지 몹시 우려스럽기도 하네요.

한편 우리들 대부분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자신의 꿈(또는 부모님이 원하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일생의 대부분을 치열하게 노력해도, 세속의 잣대로 판단되는 성공 여부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각자 자기의 신앙이나 신념을 바탕으로 일상 속에서 온몸을 던져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틈날 때마다 자신을 돌아보며 세속의 잣대에서 초연하게 된다면 누구나 이원적 분별심이라는 껍데기에서 벗어난, 우열(優劣) 없는 대자유인(大自由人)으로서의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부모님이나 지인들의 지극한 보살핌(?) 속에서 성장한 우리들 가운데에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송세월(虛送歲月)하는 분들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정신차려’ 자기성찰을 하는 데에는 금수저이니 흙수저이니 하는 차이는 결코 없습니다. 다만 우리 모두 매미의 치열한 삶의 태도를 본받아, 온몸을 던져 목숨을 걸고 철저히 자신을 돌아보는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한 나무에 유난히 허물 벗은 ‘매미껍데기[선태각(蟬蛻殼)]’들이 몰려 있다. / 제공 = 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한 나무에 유난히 허물 벗은 ‘매미껍데기[선태각(蟬蛻殼)]’들이 몰려 있다. / 제공 = 박영재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 허물 벗은 매미의 오덕

이번에는 허물을 벗는데 성공한 매미의 자태에 대해 중국 진(晉) 나라 시인 육운(陸雲, 232-303)이 ‘한선부(寒蟬賦)’에서 다룬 오덕(五德)을 함께 새기고자 합니다.

“첫째, 매미의 머리가 관(冠)의 끈이 늘어진 모습과 흡사해 문인(文人)의 기품을 갖추었으니 곧 ‘배움’[문(文)]이 있네. 둘째, 오로지 수액과 이슬만 먹고 산다하니 곧 ‘깨끗함’[청(淸)]이 있네. 셋째, 사람이 먹는 곡식(穀食)을 먹지 않는 등 전혀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니 곧 ‘청렴함’[렴(廉)]이 있네. 넷째, 다른 곤충들처럼 집을 짓지 않고 나무에서 사니 곧 ‘검소함’[검(儉)]이 있네. 다섯째, 철따라 때맞추어 허물을 벗고 자신의 할 도리를 지켜 울어대니 곧 ‘믿음’[신(信)]이 있네.”

참고로 이 오덕은 임금과 신하들의 덕목(德目)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를 잊지 말자는 뜻으로 조정(朝廷)에서 정무(政務)를 볼 때 매미 날개 모습을 장식으로 붙인 ‘익선관(翼善冠)’을 썼다고 합니다. 덧붙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직을 포함해 전문직에 종사하는 재가(在家)의 선수행자들의 경우 몸가짐을 더욱 철저히 하기 위해 지켜야할 오계(五戒)가 있는데, 이 가운데 대중을 선도하는 지도층과 관련된 삼계(三戒)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높은 관직(官職)을 탐해 구하지 않는다.[불구사관(不求仕官)] 2. 욕심을 부리지 않고 함께 나누며 덕을 쌓는다.[과욕온덕(寡慾蘊德)] 3. 베풀 수 있도록 바르게 재산을 저축한다.[거재대부(居財大富)]”

한편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8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100점 만점에 57점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국가별 순위는 180개국 중 45위를 차지했는데,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가운데에서는 30위로 여전히 최하위권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는 각계각층을 구성하고 있는 분들의 청렴도(淸廉度) 향상(向上)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닐 겁니다.

◇ 성찰을 위한 매미 일화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매미의 오덕’을 단지 머리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고, 우리 모두 일상 속에서 날마다 이를 온몸으로 실천하기 위한 지속적인 자기성찰이 필수이겠지요.

한편 필자가 몸담아 온 자기성찰에 매우 효과적인 선수행의 세계에서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주고받는 문답들을 남송 시대 이후 공안(公案)이란 틀로 정형화해 수행자들로 하여금 이를 참구하게 다그칩니다. 그리고 수행자가 공안을 투과하여 참나를 온몸으로 체득하게 되면 매미의 오덕을 저절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참고로 뇌(腦) 과학에 따르면 오덕과 같은 덕목의 지적인 이해는 뇌의 후두엽 부분이 담당하고, 공안 가운데 ‘왜’라는 강한 의심을 일으키게 하는 화두(話頭)를 해결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포함해 명상은 전두엽을 활성화시킨다는 연구결과가 꾸준히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참나를 체득하기 위한 화두들 가운데 마침 매미의 계절을 맞이해 이에 얽힌 두 일화를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매미 일화 1: 먼저 당나라 투자대동(投子大同, 819-914) 선사의 제자인 투자감온(投子感溫) 선사께서 시자와 문답한 매미껍데기에 관한 공안이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다음과 같이 들어 있습니다.
‘감온 선사께서 산행을 하다가 매미가 껍데기를 벗어 놓은 것을 보았다. 이때 시자가 여쭙기를, “껍데기는 여기에 있는데 속에 있던 매미는 어디로 갔습니까?” 선사께서 매미 껍데기를 집어 들어 귓가에다 대고 서너 차례 흔든 다음에 요란하게 매미 울음소리를 내시자, 이때 시자가 깨쳤다.’
사실 매미 울음소리에는 깨칠만한 요인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감온 선사께서 짐짓 매미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순간 그동안 치열하게 수행해 오던 시자에게 시절인연이 무르익어 마음이 =열렸던 것입니다. 좀 더 부연 설명을 드리면, 시자가 스승과의 문답을 통해 자기 몸뚱이[껍데기]를 끌고 다니는 참나를 온몸으로 체득했던 것입니다. 자! 여러분들! ‘어째서 선사의 매매 울음소리에 시자가 깨쳤을까?’하고 간절히 의심해 보십시오.

매미 일화 2: 이번에는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한국선의 세계를 풍요롭게 했던 만공(滿空, 1871-1946) 선사 회상(會上)에서 벌어진, 위 공안에 대한 응용공안이라고 할 수 있는 일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가까운 나뭇가지에서 매미가 울고 있었다. 당시 조실이셨던 만공 선사께서 수박공양을 하시기 위해 대중을 둘러보시며, “저 매미 소리를 제일 먼저 잡아오는 사람에게는 수박 값을 받지 않을 것이니, 못 잡아오는 사람들에게는 동전 세 푼씩 받아야 하겠네”라고 이르셨다. 그때 대중 가운데 어떤 이는 매미 잡는 시늉을 하고, 어떤 이는 매미 우는 소리를 내는 등 두루 다양한 경계들을 제시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만공 선사로부터 한결같이, “자네도 세 푼을 내시게”라는 말씀을 들었다. 마침 수제자인 보월(寶月, 1884-1924) 스님이 뒤늦게 그 자리에 합류하자 선사께서, “지금 대중 스님들이 이러저러하게 응대했었는데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물으셨다. 그러자 보월 스님이 즉시 주머니에서 세 푼을 꺼내어 만공 선사께 드렸다. 이에 선사는 마침내 웃으시며 “자네가 바로 내 뜻을 알았네”라고 하셨다.’

자! 이제 필자가 보월 스님의 경계는 배제시키겠습니다. 이럴 경우 이 물음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떻게 응대하시겠습니까? 한동안 무더위도 잊을 정도로 ‘어떻게 하면 매미 소리를 잡아 만공 선사 앞에 제시할 수 있을까?’하며 간절히 의심을 이어가 보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사실 종교를 초월해 각자 있는 그 자리에서 코드가 맞는 자기성찰 방법을 따라 일상 속에서 날마다 성찰의 삶을 지속할 경우, 누구나 언젠가 반드시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중독된 중생의 허물을 벗어던지고 함께 더불어 제때 서로 돕는 ‘언행일치(言行一致)’의 그런 멋진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