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11일 일본의 무역규제 조치를 WTO에 제소하기로 결정하고 본격적인 절차에 들어갔다. /뉴시스
한국 정부가 11일 일본의 무역규제 조치를 WTO에 제소하기로 결정하고 본격적인 절차에 들어갔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WTO에 제소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7월 초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에 대한 일본의 규제 조치가 시행된 지 두 달여 만의 전격적인 조치다. 정부는 그동안 법률검토를 끝마쳤으며, 이미 개별 기업들이 일본의 조치로 피해를 받고 있고 향후 유사한 사례를 막기 위해 제소를 지체할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11일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일본의 3개 품목 수출제한 조치는 일본 정부의 각료급 인사들이 수차례 언급한데서 드러난 것처럼 정치적인 동기로 이뤄진 것”이라며 “우리나라를 직접적으로 겨냥해 취해진 차별적 조치”라고 제소 배경을 밝혔다.

◇ 규제시행 두 달 만에 전격적인 제소

유 본부장은 “일본은 아무런 사전 예고나 통보 없이 조치를 발표한 후 3일 만에 전격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이웃나라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보여주지 않았음은 물론 절차적 정당성도 무시했다”며 “정치적 목적으로 교역을 악용하는 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일본의 조치를 WTO에 제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일본의 품목 수출규제는 ▲차별금지 및 최혜국대우 의무 위반 ▲수출제한 조치의 설정·유지금지 의무 위반 ▲무역규정의 일관적·합리적 운영 의무 위반에 해당된다는 게 우리 정부의 판단이다.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로 전환한 것이 최혜국대우 의무 위반이고, 이전까지 사실상 자유롭게 교역되던 품목에 대한 새로운 규제가 설정된 것은 수출제한 조치 금지의무 위반에 각각 해당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일본 수출규제의 근본 계기가 ‘정치적’ 이유에 있다는 점에서 WTO 근본원칙에 위배된다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다. 당초 일본정부는 수출규제 이유에 대해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들더니, 이후 전략물자 관리차원이라고 말을 바꾸는 등 오락가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치적 이유로 규제를 시행했다가 자유무역 질서를 훼손했다는 국제적 비난여론이 일자 ‘전략물자 관리’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근거를 내놓은 셈이다.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일본을 WTO에 제소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을 설명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일본을 WTO에 제소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을 설명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실제 미국의 공신력 있는 기관인 국제안보과학연구소(ISIS)의 전략물자 수출통제 체제 순위를 보면 대한민국(17위)이 일본(36위) 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확인된다. 일본이 수출규제 이유로 내세운 ‘한국의 허술한 전략물자 관리’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는 대목이다.

◇ 상소까지 3년 이상… 정부는 자신감

WTO 제소는 제소국이 WTO 사무국에 ‘양자협의’ 요청 서한을 보내면 공식 절차가 시작된다. 60일 동안 양당사국이 대표단을 꾸려 협의를 하게 되고, 만약 합의에 실패하면 ‘패널설치 요청’ 절차로 들어가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된다. 패널구성부터 판결문 격인 패널보고서 제출까지는 최대 6개월 이상 소요된다. 패널보고서에 이의가 있을 경우 상소도 가능하다.

상소까지 포함해 재판이 길어질 경우 결론까지 최대 소요기간은 3년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가 승소했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관련 소송이 결론까지 4년 가까이 소요된 바 있다. 근래 WTO에 제소된 분쟁사안이 많아지면서, 최종결론이 언제 날지는 정부도 쉽게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결과를 예단키는 어렵지만, 최근 WTO 한일 분쟁에서 승소한 전력이 있는 만큼 정부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국민적 관심사안 중 하나였던 후쿠시마산 수산물 분쟁에 더해 지난 10일 WTO는 일본산 공기압 밸브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반덤핑 조치 관련 소송에서도 한국의 손을 들어줬다. 정부가 WTO 제소에 자신감을 갖는 배경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일본이 우리의 사법적 판단(강제징용 판결)을 가지고 수출제한이라는 보복조치를 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WTO에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대응하겠다”면서도 “(결과는) 예단할 수 없지 않겠느냐. 최선의 준비를 해왔으니까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